추석 앞두고 뇌사…간 기증후 하늘로 떠난 엄마

기사등록 2026/09/22 11:06:48 최종수정 2026/09/22 12:34:24

지주막하출혈로 뇌사…간 기증

[서울=뉴시스] 기증자 강숙희씨와 남편 정상빈씨. (사진= 한국장기조직기증원 제공)
[서울=뉴시스] 류난영 기자 = 56년간 아내이자 4남매 어머니로 살아온 70대 여성이 갑자기 쓰러져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끝내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추석을 앞두고 간을 기증하고 떠났다.

한국장기조직기증원은 지난 7일 제주한라병원에서 강숙희(78)씨가 뇌사 장기기증으로 간을 기증해 소중한 생명을 살리고 하늘의 별이 됐다고 22일 밝혔다.
 
강씨는 지난달 19일 새벽 평소처럼 남편과 아침 운동을 준비하던 중 목이 뻣뻣하다고 호소한 뒤 쓰러졌다. 병원으로 이송된 강씨는 지주막하출혈로 치료를 받았지만 끝내 회복하지 못하고 뇌사 판정을 받았다.
 
남편 정상빈씨는 "누군가의 생명을 살릴 수 있다면 그 자체로 뜻깊은 일"이라며 "늘 베풀며 살아온 사람이기에 마지막 순간까지도 누군가에게 베풀고 가는 것이 아내의 뜻에도 맞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제주에서 평생 살아온 강씨는 초등학교 교사였던 남편과 결혼해 1남 3녀를 키웠다. 강씨는 가정을 돌보면서도 보험설계사로 20여 년간 일하며 가계에 힘을 보탰다.

아들 인태씨는 "유품을 정리하면서 보니 자식들이 사드린 것을 제외하면 흔한 금붙이나 명품 가방 하나 없이 사셨더라"며 자신을 위해 쓰기보다 가족을 위해 아끼며 살아온 어머니의 모습을 뒤늦게 알게 됐다고 했다. 강씨는 가족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게도 정이 많았다. 좋은 것이 생기면 혼자 갖기보다 이웃들과 나누는 것을 좋아했고, 40년 넘게 한 동네에서 이웃들과 가족처럼 지냈다.

강씨는 자녀들이 성장하고 남편이 퇴직한 뒤에는 꽃을 가꾸고 남편과 여행 다니는 것을 즐겼다. 특히 지난 5월 자녀·손주들과 함께 다녀온 여행을 주변 사람들에게 여러 차례 자랑할 만큼 좋아했다. 다음에도 함께 여행을 가자고 했지만, 그 바람은 이뤄지지 못했다.
 
장손 집안의 며느리로 50여 년간 명절과 집안 제사를 챙겨온 강씨는 음식 솜씨도 뛰어났다. 특히 추석이나 제사 등 가족들이 모이는 날이면 별미로 양념게장을 준비하곤 했다.

아들 인태 씨는 어머니 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음식으로 양념게장을 꼽았다. 그는 "올해부터는 추석 제사를 지내지 않고 가족들과 저녁 한 끼를 함께하자고 하셨는데, 이번 추석은 어머니 없이 보내게 됐다"며 아쉬움을 전했다.
 
남편 정상빈씨는 아내에게 쓴 편지에서 "결혼 생활 56년, 당신과 함께한 시간이 너무 행복했어요. 당신은 최고의 아내이자 최고의 어머니였어요"라며 "마지막 떠나는 순간까지 누군가에게 생명을 이어주고 새 삶을 살게 한 당신이 정말 자랑스러워요"라고 적었다.

아들 인태씨는 "걱정하지 말고, 하늘나라에서 좋아하던 꽃도 가꾸고 세계 여행도 다니면서 행복했으면 좋겠다. 사랑한다"며 마지막 인사를 전했다.
 
이삼열 한국장기조직기증원 원장은 "평생 베풀며 살아온 강숙희씨의 마지막 순간까지 나눔을 실천했다"며 "고인의 삶을 헤아려 생명나눔을 결정하신 유가족의 뜻에 깊은 존경을 표하며, 명절을 앞두고 더욱 그리움이 클 유가족께 위로의 마음을 전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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