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구할 수가 없다"…제재·전쟁에 무너지는 이란 의료 현장

기사등록 2026/09/21 15:57:05 최종수정 2026/09/21 17:06:24

의약품 800종 부족…치솟는 약값에 복용량 줄여

보험금 4150억 미지급…약국 재고 확보에도 차질

공습에 제약시설 피해…제재·전쟁에 공급망 흔들려

[미나브=AP/뉴시스] 2일(현지 시간) 이란 미나브의 한 병원에서 한 남성이 결혼식이 열리던 쿠헤스타크 주택 공습으로 다친 어린이와 함께 치료받고 있다. 이란 당국은 이 공격이 미군의 공습이라고 주장하면서 4명이 숨지고 50명 이상이 다쳤다고 밝혔다. 2026.09.03.
[서울=뉴시스] 이재은 기자 = 미국의 대이란 제재와 전쟁으로 이란의 의약품 부족과 가격 상승이 심화하면서 만성질환과 중증질환 환자들이 생존에 필수적인 약을 구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일(현지 시간) CNN에 따르면 테헤란에 거주하는 35세 여성 시마는 신부전 진행을 막는 약을 구하기 위해 약국 7곳을 찾은 끝에 약을 확보했다. 하지만 약사가 가격이 또 올랐다고 알리면서 안도감은 사라졌고, 그는 어쩔 수 없이 복용량을 줄여야 했다.

시마는 CNN에 "의료진들은 말기 환자나 암이 상당히 진행된 환자들에게 더 이상 암 치료제를 사용하지 않는다"며 "아주 초기 단계 환자들에게만 사용한다"고 말했다.

이란에서는 항우울제와 인슐린, 임신 관련 약품 등 다양한 의약품이 부족한 것으로 전해졌다. 일부 약품은 아예 구할 수 없어 환자들이 비싼 약값을 부담하거나 현지에서 생산된 대체 의약품에 의존하고 있다.

이란 약사협회 회장 샤흐람 칼란타리는 지난달 기자회견에서 "의약품 부족으로 약 800종의 의약품이 영향을 받았다"며 "가격 상승으로 약국들이 대체품을 확보하기도 어려워졌다"고 밝혔다.

암 환자들이 치료비를 마련하기 위해 텔레비전과 냉장고 등 가전제품을 판매하는 사례도 나타났다. 테헤란에 거주하는 55세 암 환자는 해외에서 귀국하는 사람들에게 현지에서 구하기 어려운 약을 가져다 달라고 부탁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CNN에 "병도 있고 전쟁으로 인한 불확실성 때문에 어떻게 해야 할지 너무 힘들다"고 호소했다.

이란 정부는 의약품 생산량의 97% 이상을 국내에서 생산하고 있다고 밝혀왔다. 그러나 현지 생산 역시 수입 원료와 장비, 기술에 의존하고 있어 제재와 외화 부족의 영향을 피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미국의 대이란 제재로 국제 금융 거래와 의약품 수입이 어려워지고, 이란의 주요 외화 수입원인 석유 수출이 제한되면서 의약품 조달에 필요한 자금 확보에도 차질이 발생했다.

여기에 보험사들이 약국에 보험금을 제때 지급하지 않으면서 약국들이 재고를 보충하기 어려워졌다. 이란 약사협회 관계자들은 전국 약 1만8000곳의 민영 약국이 보험사로부터 보험금 지급을 기다리고 있으며, 미지급금 규모가 약 800조 리알(약 4150억원)에 달한다고 밝혔다.

[테헤란=신화/뉴시스] 지난달 28일(현지 시간) 이란 남부 호르모즈간주 미나브 여자 초등학교 폭격 현장에서 구조대와 주민들이 부상자를 구조하고 있다. 2026.03.02.
약국들이 자체 자금을 투입한 뒤 보험금을 받기까지 1년을 기다릴 여유가 없다는 지적도 나왔다.

게다가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습은 의약품 생산과 유통 시설에도 피해를 입혔다.

이란 식품의약품안전청 대변인 모하마드 하셰미는 지난 6월 이란 국영 언론에 40곳 이상의 제약회사와 장비 공급업체, 유통업체가 공습으로 피해를 입었다고 밝혔다.

이스라엘은 3월 말 항암제와 마취제 등에 사용되는 원료를 생산하는 이란 제약회사 토피그 다루의 공장을 공격했다. 이스라엘군은 해당 회사가 화학무기 연구개발과 관련된 이란 단체에 펜타닐을 공급했다고 주장했지만, 회사 측은 이를 부인했다.

100년 넘는 역사를 지닌 파스퇴르 연구소도 공습으로 피해를 입었다. 의학 저널 란셋은 유전체 감시와 광견병, HIV/AIDS 등을 연구하던 주요 실험실이 완전히 파괴됐다고 보도했다.

미국은 농산물과 식품, 의약품, 의료기기 등 인도적 물품의 대이란 거래를 허용하고 있지만, 복잡한 금융 규제와 거래 심사 절차가 국제 기업과 은행의 이란 거래를 위축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제재 대상이 아닌 의약품 거래도 은행과 기업들이 규제 위반 위험을 우려해 기피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테헤란의 한 암 환자는 "모두들 우리가 용감하다고 말한다"며 "하지만 죽어가는 순간에 용감하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는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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