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라 랭글리, '빌보드 핫100 최장 1위 확실'…美는 왜 다시 '컨트리'에 응답했나

기사등록 2026/09/20 14:27:09 최종수정 2026/09/20 14:54:21

[트렌드 & 음악] 美서 재열풍 컨트리

랭글리 '추진 텍사스', 캐리 '올 아이…' 제치고 23주 1위 눈앞

컨트리, 1920년대 초반 美 남부 애팔래치아 산맥서 태동

지난 8월엔 '핫100' 1~5위가 모두 컨트리로 채워져

"美 관료주의에 맞서는 대안적 삶과 진정성의 상징"

척박한 국내 토양서도 '개화'…악뮤·컨트리공방 '컨트리' 주목

[LA=AP/뉴시스] 엘라 랭글리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미국 팝 음악 시장의 패권이 컨트리로 인해 다시 요동치고 있다.

20일 팝계에 따르면, 미국 컨트리 싱어송라이터 엘라 랭글리의 '추진 텍사스'('Choosin' Texas')가 오는 26일 자 빌보드 메인 싱글 차트 '핫 100'에서 통산 23주 1위를 차지하는 것이 확실시된다.

랭글리는 이로써 미국 팝스타 머라이어 캐리의 메가 히트 캐럴 '올 아이 원트 포 크리스마스 이즈 유'('All I Want for Christmas Is You)(22주)를 넘어서며, 68년 빌보드 '핫 100' 역사상 '최장기간 1위' 타이틀을 단독으로 거머쥐게 된다. 시즌마다 역주행하는 캐럴을 제외하면 실질적으로 현대 팝 역사상 가장 오랜 기간 정상을 지킨 단일 트랙으로 공인받는 셈이다.

컨트리의 원류는 1920년대 초반 미국 남부 애팔래치아 산맥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유럽과 아프리카의 민속음악 등 다양한 이주민의 음악적 유산이 뒤섞이며 태동한 '힐빌리(hillbilly)'가 모태다. 애팔래치아 산기슭에서 자생력을 키운 이 소박한 음악은 1920년대 라디오 등 미디어를 타고 장르 문법이 확립됐다. 행크 윌리엄스를 시작으로 최근 '미국의 임영웅'으로 불리는 모건 월런까지 컨트리 스타들의 계보는 이어졌다. 지난달 별세한 컨트리 싱어송라이터 돌리 파튼에 대한 미국의 예우는 컨트리의 남다른 위상을 확인케 했다. 그런데 현재 미국 대중문화계의 기류 전체가 100년이 된 컨트리로 기울었음을 보여주는 징후가 곳곳에서 포착된다.

지난 8월 첫째 주 빌보드 '핫 100'에서는 차트 역사상 최초로 1위부터 5위까지 최상위권이 전부 컨트리 싱글로 채워지는 이변이 일어났다. 1위 '추진 텍사스'에 이어 모건 월렌의 '빈 바이 나우'('Been By Now'), 테일러 스위프트의 '아이 뉴 잇, 아이 뉴 유'('I Knew It, I Knew You'), 월렌과 랭글리의 듀엣곡 '아이 캔트 러브 유 애니모어'('I Can't Love You Anymore'), 스텔라 레프티의 '보스턴'('Boston')이 줄줄이 이름을 올렸다.
[라스베이거스=AP/뉴시스] 엘라 랭글리
특히 2014년 팝으로 전향하며 컨트리 신을 떠났던 팝 슈퍼스타 스위프트의 행보는 상징적이다. 디즈니 픽사 애니메이션 영화 '토이 스토리 5' 삽입곡인 그의 신곡은 컨트리 장르로 분류돼 마케팅됐다. 이 곡을 통해 스위프트는 13년 만에 컨트리 라디오 차트 1위에 올랐고, 4년 만에 미국 컨트리 뮤직 어워드(CMA) 후보로 지명됐다. 글로벌 팝의 정점에 선 스위프트마저 다시금 컨트리의 우산 아래로 발을 들이는 것이 상업적으로나 음악적으로 유리하다고 판단한 방증이다.

이러한 현상의 사회문화적 이면을 두고 뉴욕타임스(NYT)에 기고한 문화비평가 매튜 슈미츠는 미국 사회의 역설을 짚어냈다. 그는 미국이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인종적으로 다양해졌음에도 보수적이고 백인 중심적인 농촌 문화가 주류를 장악한 배경에 주목하며 "오늘날 상업적 성공에도 불구하고 약자를 대변하는 것은 바로 컨트리 음악"이라고 짚었다. 세계화와 도시 지식 기반 경제로 인해 황폐해진 농촌 노동자 계급의 문화가, 현대인들을 옭아매는 "숨 막히고 모든 것을 통제하는 관료주의"에 맞서는 대안적 삶과 진정성의 상징이 됐다는 분석이다. 슈미츠는 이를 두고 "블루 아메리카(민주당)와 레드 아메리카(공화당)의 문화적 각축 속에서 수많은 대중이 텍사스를 선택하고 있다(choosing Texas)"고 진단했다.

음악 산업 안팎에서도 컨트리의 생명력을 바라보는 시선은 뜨겁다. 임희윤 대중음악 평론가는 "최근 몇 년 새 강하게 불고 있는 '젊은 컨트리' 열풍이 랭글리 열풍을 완벽하게 예열했다"고 짚었다. 그는 "소셜 미디어, 숏폼, 알고리즘 발달로 대중문화에 대한 취향과 소비의 파편화가 이뤄진 상황에서, 컨트리는 젊은 세대에게는 마치 한국의 신세대가 20세기 음악에 열광하듯 낯선 듯 익숙한 레트로 콘텐츠가 되고 중장년층에겐 트렌드가 뭔지 헷갈리는 시대에 안락한 향수 콘텐츠로 기능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미국 의류 브랜드 아메리칸 이글이 랭글리를 '데님 달링'으로 내세우며 전면에 기용한 것 역시 장르가 확보한 세대 초월적 흡인력을 보여준다. 임 평론가는 컨트리를 두고 "구수하면서도 거부할 수 없는 편안함과 훅(hook)을 갖춘, 검증된 대중성 공식 그 자체가 곧 장르의 문법이 된 음악"이라고 평했다.

이 같은 흐름은 주류 장르의 편중이 심하고 장르 음악의 토양이 척박한 국내 가요계에도 의미 있는 질문을 던진다. 국내 대중음악사에서 컨트리는 1970년대 서수남과 하청일의 번안 포크나 2000년대 인디 신의 바비빌, 김태춘 등 일부 아티스트의 실험으로만 명맥을 유지해 온 외딴 영역이었다.
[서울=뉴시스] 악뮤. (사진 = 영감의 샘터 제공) 2026.04.11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그러나 최근 국내 대중음악 신에서도 컨트리의 정취가 새롭게 호명되는 분위기다. 대중성과 음악성을 동시에 쥐고 있는 남매 듀오 '악뮤(AKMU)'가 올해 발매한 정규 4집 '개화(開花)'에서 컨트리 요소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며 리스너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간 것이 대표적이다.

정통 아메리칸 루트 뮤직의 맥을 잇는 국내 밴드 '컨트리공방'의 약진도 궤를 같이한다. 밴조와 만돌린, 피들 등 정통 악기를 능숙하게 다루는 이들은 2023년 미국 국제블루그래스음악협회(IBMA)로부터 인터내셔널 밴드 퍼포먼스 보조금 공식 수여자로 선정되며 종주국에서 먼저 완성도를 공인받았다. 최근에는 국립극장 여우락페스티벌 무대에서 젊은 소리꾼 정윤형과 호흡을 맞추며 국악과 블루그래스의 결합이라는 독창적인 미학을 증명해 냈다.

임희윤 평론가는 "악뮤가 새 앨범에 컨트리 요소를 대폭 수용했는데 약간 낯선 데 편안하고 익숙한 맛"이라며 "컨트리공방'도 최근 국립극장 여우락페스티벌에서 소리꾼 정윤형과 한 무대도 꾸미면서 주목받은 대단한 그룹"이라고 특기했다.

정교하게 다듬어진 디지털 신시사이저와 알고리즘의 틈바구니 속에서, 기타 중심으로 투박한 목소리가 길어 올리는 이야기의 힘은 국경을 불문하고 다시금 유효해지고 있다. 랭글리가 쏘아 올릴 23주 1위라는 기록은 단순한 복고풍 유행가가 아니라, 덜 가공된 온기와 진솔한 서사를 갈망하는 시대적 피로감이 빚어낸 거대한 응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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