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단체 "정호용 죽음이 역사적 책임까지 끝낼 순 없다"

기사등록 2026/09/14 13:58:04 최종수정 2026/09/14 14:48:24
[광주=뉴시스] 이영주 기자 = 국회광주특별위원회 및 청문회에서 증언을 하고 있는 정호용 5·18 당시 특전사령관. (사진 = 5·18기념재단 제공) 2023.08.20.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전남광주=뉴시스]이영주 기자 = 5·18민주화운동 당시 신군부 핵심 인사였던 정호용 전 육군특전사령관의 사망과 관련해 오월단체가 "죽음은 한 사람의 생을 끝낼 수 있지만, 역사의 책임까지 끝낼 수는 없다"고 밝혔다.

5·18공법3단체(유족회·부상자회·공로자회)와 5·18기념재단은 14일 공동 입장문을 내고 정씨의 사망에 대해 이같이 밝혔다.  

단체들은 "정씨는 12·12 군사반란과 5·18 당시 신군부의 핵심 인사로서 우리 현대사의 비극적 역사와 결코 무관하지 않은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정씨는 5·18과 관련해 내란목적살인죄 등으로 징역 7년형을 확정받았음에도 당시 국가권력이 광주시민들에게 저지른 참혹한 희생과 폭력에 대해 국민과 피해자들에게 사죄하지 않았다"며 "훗날 진행된 국가차원 진상조사 과정에서도 역사적 진실을 온전히 밝히는 점에 협조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또 "정씨의 죽음은 5·18로 가족을 잃고 신체적·정신적 피해를 입은 채 평생 고통 속에 살아온 피해자들에게 가해 책임자의 사망이라는 또 하나의 안타까운 역사적 단절로 남게 됐다"며, 정씨를 향해 "왜 피해자들에게 진심으로 사죄하지 않았는가, 왜 역사의 책임을 살아 있는 동안 온전히 감당하지 않았는가"라고 비판했다.

단체들은 정씨의 사망으로 진실 규명을 위한 직접적인 증언 기회가 사라진 데 대한 안타까움을 표하면서도, 역사적 진실을 밝히는 노력은 계속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단체들은 "개인의 증언을 통해 진실을 들을 기회는 사라졌지만 역사의 진실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며 "정씨의 사망을 계기로 오히려 5·18의 진상규명과 책임자들의 역사적 책임을 더욱 분명히 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앞으로도 남은 의혹과 미완의 진실을 끝까지 밝혀내고 다시는 국가권력이 국민을 향해 총부리를 겨누는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역사적 교훈을 후대에 온전히 물려줘야 한다"며 "정씨의 사망을 계기로 5·18의 완전한 진상규명과 역사적 정의의 실현을 다시 한번 촉구한다"고 밝혔다.

[서울=뉴시스] 박태홍 기자 = 공수부대 계엄군이 1980년 5월 27일 새벽 전남도청 시민군 진압 작전을 마치고 도청 앞에 집결하고 있다. 박태홍 뉴시스 편집위원이 1980년 당시 한국일보 사진기자로 재직 중 5·18 광주 참상을 취재하며 기록한 사진을 5·18광주민주화운동 40주년에 즈음해 최초로 공개한다.  (사진=한국일보 제공) 2020.05.17.  hipth@newsis.com
정씨는 50사단장 재임 중이던 1979년 전두환 신군부의 12·12 반란에 간접적으로 참여한 공로로 이튿날인 12월13일 육군특전사령관에 취임했다.

취임 이후 1980년 5월20일부터 같은 달 27일까지 총 3차례 광주를 찾아 예하 3·7·11공수부대를 지휘했다. 해당 공수부대들은 5·18 광주 유혈진압의 핵심 부대였다.

정씨는 그해 5월27일 계엄군이 벌인 광주재진입작전(상무충정작전)을 지휘하고 이 과정에서 시민들을 무력 진압·사살하도록 지시한 혐의(내란)로 기소돼 1997년 징역 7년을 선고받았다.

지병을 앓던 정씨는 전날 병원 치료 도중 숨졌다. 정씨까지 숨지면서 신군부 핵심 5인(전두환·노태우·이희성·황영시·정호용)은 모두 5·18에 대한 사과 입장 표명 없이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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