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니 총리, ‘탈미국 EU 준회원국 지향’ 대담한 도전 성공할까

기사등록 2026/09/14 08:59:30

회원국 자격에 엄격한 EU ‘준회원국’ 제안에는 긍정적

WSJ “카니, 美와의 결별 고통 상쇄 위해 EU와 속도위반 결혼 추진”

“캐나다, 북미 국가에서 대서양 횡단 국가로 전환하는 중”

[캘거리=AP/뉴시스] 마크 카니(오른쪽) 캐나다 총리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10일 캐나다 앨버타주 캘거리에서 협정서에 서명한 후 공동 기자회견하고 있다. 캐나다는 우크라이나의 방공 요격 미사일 확보를 위해 3억5000만 캐나다 달러(약 3400억 원) 규모의 지원 패키지에 합의했다. 2026.09.14.

[서울=뉴시스] 구자룡 기자 =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와 무역 갈등이 심화하고 있는 가운데 캐나다 마크 카니 총리는 탈(脫)미국, 유럽연합(EU)과의 협력 강화를 통해 돌파구를 마련하고 있다.

카니 총리는 17일 유럽의회에서 유럽과의 연계를 강화하기 위한 자신의 비전을 구체화할 예정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3일 카니 총리가 캐나다를 EU 준회원국으로 만들겠다는 대담한 도전앞에 놓인 기회와 도전들을 심층 분석했다.

◆ 카니, 17일 유럽의회에서 비전 구체화

카니 총리는 미국과 무역 전쟁이 벌어지는 수개월 동안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 스칸디나비아 국가 지도자나 유럽의 덜 알려진 왕족들과까지 거의 모든 주요 유럽 지도자들과 전화 및 비공개 회담을 가졌다.

주요 목표는 캐나다를 EU에 통합하는 방안을 찾기 위한 것이다.

WSJ은 카니의 노력을 두고 “미국과의 결별에서 오는 고통을 상쇄하기 위해 속도위반 결혼을 추진하고 있다”고 했다. 

카니 총리는 유럽 지도자들에게 캐나다가 ‘EU 준회원국’이어도 좋다는 제안을 했다.

회원국 자격 규정에 엄격한 EU도 이 아이디어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고 양측 관계자는 전했다.

수개월에 걸친 협상 결과, 유럽과 캐나다 관리들은 에너지, 인공지능, 배터리나 반도체에 필요한 핵심 광물, 그리고 가장 시급한 국방 분야 등에서 협력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어 EU의 경제적 경계가 모호해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카니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의 대화에서는 캐나다인들이 비자없이 유럽에서 거주하고 일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방안까지 논의됐다고 소식통들은 전했다.

양측은 해저 케이블 부설, 미국 거대 기술기업의 영향력에서 벗어난 데이터 센터, 클라우드 스토리지, 새로운 위성 네트워크 공동 구축 등도 논의하고 있다.

특히 러시아산을 일부 대체할 가스를 공급할 파이프라인 건설, 북극 항로를 통한 캐나다산 비료의 수송 방안도 있다.

양측 연구 기관들을 연계해 미국의 대학 시스템과 경쟁할 수 있는 네트워크 구축도 있다.

현재 캐나다는 수출품의 3분의 2를 육로를 통해 미국으로 보내고 있다. 이러한 상호 의존성이 캐나다를 협상 테이블로 다시 끌어들여 양보를 얻어낼 것이라고 트럼프 대통령은 기대하고 있으나 카니 총리의 시선은 유럽으로 향해 있다.

◆ 그린란드 장악과 이란 전쟁 등으로 돌아선 유럽

카니 총리는 지난해 10월 베테랑 외교관 존 해너포드를 캐나다의 유럽 특사로 임명했다.

하지만 우르줄라 폰 데어 라이엔 유럽연합 집행위원회 위원장이 그의 상대편으로 네덜란드 출신의 30년 경력 외교관 요스트 코르테를 임명하기까지는 두 달 이상이 걸렸다.

이탈리아의 보수당 총리인 조르지아 멜로니와 영국의 키어 스타머 총리를 비롯한 여러 유럽 지도자들은 미국과의 마찰을 우려했다고 유럽 및 캐나다 관리들은 전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그린란드 장악 시도와 이란과의 전쟁, 이 두 사건은 더 많은 유럽 지도자들이 카니 총재의 논리와 절박함에 공감하게 만드는 계기가 됐다.

유럽 지도자들은 초기에는 트럼프 대통령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려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이 5월 인공지능으로 생성한 자신의 교황 이미지를 게시하고, 멜로니 총리가 함께 사진을 찍어달라고 간청했다고 주장하자 멜로니도 태도를 바꿨다.

카니 총리는 은행가 시절부터 알고 지낸 독일 프리드리히 메르츠 총리와 자주 소통하며 캐나다의 250억 달러 규모 독일 잠수함 구매 협상을 마무리지었다.

◆ “저성장 유럽, 북미 시장 대체하기는 어려워”

카니 총리의 유럽행에 난관도 적지 않다. 

캐나다 국민들이 탈미국, EU 편입에 따른 역효과 등을 체감하게 되면 국내 입지는 약화될 수 있다.

앨버타와 퀘벡의 분리주의자들과 갈등을 겪고 있는 정부는 EU 가입을 위해 주권을 포기하는 것에 난색을 표할 수도 있다.

EU 단일 시장에 편입되는 기업은 EU 예산에 기여하고, EU 노동자를 받아들이며, EU 규정을 준수해야 하는 현실을 국민이 어떻게 받아들일지도 관심이다. 

유럽 경제 성장률이 미국의 절반 수준인 상황에서 유럽이 북미 시장을 대체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유럽 10개국은 10년 전 캐나다와 체결한 기존 무역 협정도 아직 비준하지 않았다.

EU 관리들 중에는 캐나다가 미국과의 협상에서 EU를 이용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을 갖고 있다.

캐나다 가입은 관료주의로 악명 높은 EU가 같은 생각을 가진 민주주의 국가들에게 더욱 유연한 포용 조건을 제시할 수 있는지 시험대가 될 전망이라고 WSJ은 분석했다.

◆ 캐나다 ‘백 투더 퓨터 유럽’

캐나다가 유럽으로 외교적 방향을 전환하는 것은 제2차 세계 대전 직전 미국보다 유럽과 더 많은 교역을 했던 과거로 돌아가는 듯한 순간이다.

캐나다는 영국 식민지배를 받았고, 영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스코틀랜드 출신 소설가이자 캐나다의 15대 총독이 된 존 뷰찬과 같은 영문학 작품을 읽으며 자랐다.

프랑스계 캐나다인들 역시 유럽과 특별한 인연을 맺어왔다.

캐나다는 2차 대전 후 미국의 경제 강국을 중심으로 재편된 새로운 세계 무역 질서 속으로 진입했다.

영국과 유럽이 파괴된 경제를 재건하는 동안 캐나다 기업들은 역동적인 소비문화와 달러의 매력에 이끌려 남쪽으로 눈을 돌렸다.

캐나다의 미국화는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모든 수입품에 10% 관세를 부과하면서 잠시 주춤했으나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이후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은 캐나다 사회를 변화시켰다.

유럽과의 관계는 약화되었고 북미 경제 통합이 가속화됐으며 아시아와 카리브해 지역에서 온 새로운 이민자들이 대거 유입되면서 탈유럽 색채는 더욱 짙어졌다.

◆ 카니의 유럽 배경도 한 요소

카니 총리의 유럽행은 트럼프 행정부와의 갈등이 기폭제가 됐으나 그의 유럽 배경도 한 요인이다.

그는 하버드대를 졸업하고 옥스퍼드대에서 영국인 아내를 만났으며, 두 사람 모두 그곳에서 아이스하키 선수로 활동했다.

그는 7년 동안 영란은행 총재를 지냈다. 그는 영란은행 총재로서 중소 국가들이 달러를 대체할 만한 수단을 찾거나 만들어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가 올해들어 주장하고 있는 중견국 단결론의 단초가 이미 오래전 있었다.

그가 영란은행 총재를 지낼 때 영국은 EU에서 탈퇴하고 있었는데 이제는 캐나다를 그 반대 방향으로 이끌고 있다.

WSJ은 “카니는 캐나다를  다시 유럽 대륙으로 되돌릴 수 있다는 역전승에 도전하고 있다”고 묘사했다.

카니 총리는 미국과의 긴장 상태를 “단절이지, 일시적인 변화가 아니다”며 트럼프가 촉발한 심각한 정치적 변화가 그의 임기 이후에도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고 현재 미국과의 갈등의 성격을 규정했다.

핀란드 대통령 알렉산더 스투브는 “캐나다가 미국의 51번째 주가 아니라 EU의 28번째 회원국이 되면 더 좋지 않은가”라고 카니 총리의 유럽행을 응원하고 있다. 

한 캐나다의 고위 관료는 “캐나다가 스스로를 북미 국가로 보는 시각에서 벗어나 대서양 횡단 국가로 바라보는 시각으로 전환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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