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움미술관서 개인전…30여 년 작업 세계 35점 한자리
각설탕·샤프심부터 6톤 스테인리스 구조물까지
M2 넘어 로비·고미술관 M1까지 전시…9월5일 개막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연약함도, 귀함도, 보임도 고정된 성질이 아니다.
각설탕과 샤프심에서 향과 자석, 야광 스케이트파크, 6톤에 달하는 스테인리스 스틸 구조물까지. 구정아의 작업은 30여 년간 재료도 크기도 끊임없이 달라졌다. 그러나 그가 바라보는 곳은 한결같다. 우리가 익숙해서 지나쳐버린 것, 눈앞에 있어도 미처 보지 못했던 세계다.
31일 서울 용산구 리움미술관에서 만난 구정아는 ‘본다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본다는 것은 이해한다는 것”이라며 “본다는 것은 앎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2024년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대표작가로 참여한 구정아는 1967년 서울에서 태어나 파리 국립고등미술학교에서 수학했다. 특정 도시에 정착하지 않고 세계를 오가며 드로잉과 조각, 설치, 영상, 건축을 넘나든다. 빛과 향, 소리, 온도 등 눈에 잡히지 않는 요소도 작품의 재료다.
리움미술관은 오는 9월 5일 개막하는 구정아 개인전 ‘우스모스(OUSSSMOS)’를 이날 언론에 공개했다. 1990년대 초기작부터 리움 커미션 신작까지 작품 35점으로 30여 년의 작업 세계를 펼쳐 보이는 국내 최대 규모 미술관 개인전이다.
전시는 한 공간에 머물지 않는다. M2 전시장과 로비를 넘어 미술관 밖과 고미술 상설전이 열리는 M1까지 파고들었다. 관객은 작품을 찾아 걷고, 고개를 들고, 허리를 숙이고, 때로는 작품 위를 밟는다. 모르고 지나치면 끝내 만나지 못하는 작품도 있다.
전시장 높은 벽과 천장이 만나는 곳에는 커다란 바위가 덩그러니 놓였다. 또 다른 작품에서는 거친 바위 아래 작은 크리스탈이 깔린 듯 빛난다. 거대하고 거친 것과 작고 영롱한 것이 뜻밖의 관계를 맺는다.
미술관 밖에도 작품은 숨어 있다. 창 너머 돌망태 옹벽 틈에는 〈리얼리티 업그레이드 & 엔드 얼론〉(2003/2026)의 크리스탈 50개가 박혀 있다. 구정아가 직접 검은 돌 사이를 찾아 하나씩 설치했다.
비가 내린 이날 유리창에 빗방울까지 맺히자 크리스탈은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가까이 다가가 시선을 바꾸자 검은 돌 사이에서 무엇인가 반짝이며 비로소 존재를 드러냈다.
전시는 M2의 경계를 넘어 미술관 곳곳으로 이어진다. M1 고미술 상설전시실에서는 수백 년의 시간을 간직한 유물 사이로 구정아의 작품들이 예고 없이 모습을 드러낸다.
백자 사이에 놓인 '덴시티, GITD'(2025)의 작은 돌은 자기장에 의해 공중에 떠 희미한 빛을 발한다. 2005년 드로잉에서 시작해 증강현실 작업으로 이어진 ‘부유하는 돌’의 이미지가 이번에는 실제 공간 안에 물리적으로 출현했다.
초기작 '떠도는 집'(1992)도 고미술의 시간 속으로 들어왔다. 과거와 현재를 나란히 놓는 대신 서로 다른 시간이 한 장소에서 잠시 겹친다. '떠도는 집'은 완성된 형태를 그대로 옮기는 작품도 아니다. 전시장 주변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를 모아 그 장소에서 다시 구성해온 작업이다.
구정아는 M1에서 특정 청자나 백자와 자신의 작품을 일대일로 대응시키려 한 것은 아니라고 했다. 오히려 그가 주목한 것은 유물과 유물 ‘사이’였다.
“청자, 백자 뭐 그런 것보다 그 사이에 있다는 것. ‘아, 이거 안 해본 거다’ 했어요.”
김성원 리움미술관 부관장은 이처럼 작품을 발견하거나 미처 발견하지 못하는 경험을 ‘놓칠 수 있는 권리’라고 설명했다. 그는 “놓치는 것도 보는 것과 같은 가치를 가진다”며 무엇을 놓쳤는지 깨닫는 순간 오히려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고 했다.
구정아는 그렇다고 작품을 일부러 숨기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작품이 처음 만들어졌던 장소의 환경과 관객이 우연히 발견했던 조건을 새로운 공간에서 어떻게 다시 구현할 것인가를 고민한다.
“그냥 버섯처럼 가져가 딱 놓으면 그게 작품이 되는 게 아니라 주변 환경, 인프라스트럭처를 다시 다 만들어야 해요.”
작품이 놓일 위치도 직접 돌아다니며 찾았다. 장소의 밝기와 좌대, 조명, 동선을 살폈다. 완성된 작품 하나를 전시장에 옮겨놓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작품을 둘러싼 환경까지 다시 만드는 셈이다.
전시장에서 가장 육중한 작품은 스테인리스 스틸로 제작한 'MOBIUS'다. 무게는 6톤에 육박한다. 폭 8m에 이르는 거대한 구조물은 가까이에서는 복잡하게 이어지는 터널처럼 보이지만 위층에서 내려다보면 하나의 무한대(∞) 기호로 수렴한다. 1998년부터 구정아의 작업에 반복적으로 등장해온 무한대 모티프를 거대한 입체로 옮겼다. 제목 역시 수학자 뫼비우스와 작가가 만든 말 ‘우스(OUSSS)’를 겹쳐 만들었다.
그 가까이에는 정반대 크기의 세계가 있다. 가느다란 샤프심 57개로 만든 1990년대 초기작과 각설탕을 쌓아 만든 작은 구조물이다.
각설탕 작업에는 접착제를 사용하지 않았다. 각설탕을 맞물려 작은 건축물을 만들고 운반 과정에서 생긴 설탕 부스러기도 버리지 않았다. 바닥에 작은 산처럼 쌓아 집과 산이 함께 있는 풍경으로 만들었다. 작은 진동에도 무너질 수 있는 구조다.
그러나 구정아는 이런 재료를 단순히 ‘연약한 물질’이라고 해석하는 데 선을 그었다.
“물질적으로는 연약하지만 굉장히 강한 체계에서 만들어져 있는 물건들이에요.”
각설탕과 샤프심은 쉽게 부서진다. 동시에 공장에서 대량 생산되고 어디에서나 구할 수 있는 공산품이다. 구정아는 처음부터 ‘아트 마테리얼’이라고 쓰인 재료가 아니라 사람들이 미술 재료라고 생각하지 않는 곳에서 작업할 재료를 찾아왔다고 했다.
“항상 연약하고 흩어지고 그런 게 아니라, 이건 직접 제가 원해서 한 겁니다.”
각설탕에서 6톤의 스테인리스 스틸까지. 물질과 규모는 극단적으로 달라졌지만 한쪽을 강하고 다른 쪽을 약하다고 쉽게 규정할 수 없다.
바위와 크리스탈의 관계도 그렇다. 거칠고 불투명한 바위와 투명하게 빛나는 크리스탈은 전혀 다른 가치를 가진 물질처럼 보인다. 하지만 모두 같은 땅에서 나온 광물이다.
크리스탈 역시 구정아에게 단순히 ‘고귀하고 신비로운 보석’은 아니다. 과거에는 귀한 광물이었지만 이제는 실험실에서 대량 생산할 수 있는 산업 재료가 됐다는 사실에 관심을 둔다.
관심은 우주까지 뻗는다. 구정아는 우주에 존재하는 물질 대부분은 눈에 보이지 않고 우리가 잘 알지 못한다고 했다. 보이지 않는 물질들이 움직이고 충돌하고 압력을 받으면서 행성과 지구가 만들어지고, 그 안에서 광물이 생성되는 과정에 관심을 가져왔다.
그에게 물질의 성질과 가치는 하나로 고정되지 않는다. 연약해 보이는 것은 강력한 생산 체계 속에서 태어나고, 귀했던 광물은 대량 생산되는 산업 재료가 된다. 보이지 않는다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이번 전시에서 가장 강렬한 색채를 보여주는 것은 M2 바닥을 뒤덮은 빨강과 청회색의 곡선 패턴이다. 관객은 작품 앞에 서서 바라보는 대신 자신도 모르는 사이 작품 위를 걷는다.
이 패턴은 약 15년 전 구정아가 야광 스케이트파크 내부에 적용하기 위해 구상했지만 당시 실현하지 못했던 드로잉에서 출발했다. 컴퓨터 속에 머물던 이미지가 이번 리움 전시에서 처음 실제 공간으로 나왔다.
곡선에 두 개의 점을 찍으면 만화 속 유령 ‘캐스퍼’를 닮은 형상이 나타난다. 패턴은 전시장 한쪽에서 다른 쪽으로 갈수록 크기가 달라져 원근과 거리감까지 흔든다.
장난기는 구정아의 작업을 이해하는 또 하나의 열쇠다.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에서 선보였던 독특한 캐릭터도 이번에는 조각으로 몸을 얻었다. 뾰족하게 솟은 머리와 과장된 손발, 금방이라도 앞으로 튀어나갈 듯한 자세 때문에 현장에서는 손오공을 연상시킨다는 질문도 나왔다.
“손오공과 관련이 있느냐”는 질문에 구정아는 직접적인 관련은 없다고 했다. 다만 “어릴 때 만화를 많이 봤다”고 했다. 2017~2019년께 제작한 애니메이션에서 출발한 캐릭터로, 베니스에서는 향을 퍼뜨리는 역할을 했다. 이번에는 머리카락도 새로 만들어 붙였다.
이날 구정아 자신의 이마 한가운데에도 반창고처럼 보이는 작은 둥근 패치 하나가 붙어 있었다. 의미를 묻자 구정아는 자신이 “항상 너무 심각하기 때문에” 긴장을 풀기 위한 것이라는 취지로 답했다.
전시 제목 ‘우스모스’의 출발도 거창한 철학은 아니었다. ‘OUSSS’는 구정아가 1990년대부터 사용해온 신조어다. 작가는 당시 농담을 좋아하고 친구들을 골려주는 것을 즐겼다며 사람들이 알아듣지 못하는 말을 만들어 쓰는 것 자체가 재미있었다고 했다.
그래서 “구정아는 어떤 작가인가”라는 질문에 내놓은 답도 간단했다.
“구정아 작가는 좀 웃기는 작가다.”
그러나 장난스럽다고 작업까지 즉흥적인 것은 아니다. 공간을 여러 번 걷고 작품이 놓일 장소와 빛, 주변 환경을 살핀다. 기존 작품도 새로운 장소에서는 다시 관계를 맺는다. 계획과 우연, 통제와 발견이 동시에 작동한다.
모든 것을 한꺼번에 보여주려 하지도 않는다.
“보여드리고 싶은 마음은 굉장히 많지만 다 보여드릴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우스모스’에서는 작품 하나를 확인하고 다음 작품으로 이동하는 통상적인 관람법이 잘 통하지 않는다. 6톤의 구조물은 주변을 비추며 제 몸의 경계를 흐린다. 크리스탈은 비 오는 창밖 돌 틈에서 나타났다 사라진다. 천장 가까이 놓인 바위는 고개를 들지 않으면 지나친다. 백자 사이 작은 돌은 허공에 떠 있고, 바닥의 작품은 이미 밟고 난 뒤에야 작품임을 알아차릴 수도 있다.
보고도 못 볼 수 있고, 보이지 않아도 존재한다. 구정아가 말하는 ‘본다’는 것은 그래서 단순히 눈으로 확인하는 일이 아니다.
“본다는 것은 앎이라고 생각합니다.”
‘우스모스’를 걷고 나면 구정아의 이 말이 오래 남는다.
전시와 연계해 9월 9일 김성원 부관장의 큐레이터 토크를 비롯해 10~12월 구정아 작업의 비가시적 요소를 다양한 학문적 관점에서 살펴보는 강연 프로그램도 열린다. 관람객이 자신만의 작품 해석을 남기고 공유하는 ‘관객 해석 프로그램’도 전시 기간 운영한다.
전시는 12월 27일까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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