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집 '기쁨에도 슬픔에도 아랑곳없이' 출간
김명순부터 김남주까지 68편 시에 산문 붙여
"시 해석 아냐… '오독의 자유'보여주고 싶어"
"이 책 계기로 시인들의 시집 찾아가줬으면"
[서울=뉴시스]이수지 기자 = "숲에 비유하자면, 제가 제일 앞에 '여기서부터 숲이고 진입로입니다'라는 푯말이 붙어 있는 나무가 된 기분이 듭니다. 독자들이 저를 거쳐 다양한 나무(시인)들이 무성한 숲 안으로 걸어 들어가셨으면 좋겠습니다."
시인 박준은 26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열린 산문집 '기쁨에도 슬픔에도 아랑곳없이' 출간 기자간담회에서 "제가 썼고 제가 골랐지만 저만의 책은 아닌 책"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신간은 한국 현대시 약 100년을 아우르는 시인 66명의 작품 68편에 박준의 산문을 덧붙인 책이다.
첫 시집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로 67쇄를 찍으며 대중적인 사랑을 받아온 그가 한국시의 흐름을 자신의 시선으로 골라 엮였다.
1896년생 김명순부터 1995년생 김남주까지 시인들을 생년 순으로 배치했다. 김소월, 정지용, 윤동주 등 교과서에서 익숙하게 접해온 시인부터 대중가요에서도 시적인 문장을 남긴 최인호, 최근 등단한 젊은 시인까지 폭넓게 담았다.
박준은 "한국 100년의 현대시사를 나름의 깜냥으로 정리한 책"이라면서도 "역사를 알자는 것은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과거의 작품에 머무르기보다 시 속에 담긴 메시지가 지금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고 앞으로 한국시를 어떻게 이끌어갈지를 생각하며 책을 엮었다는 설명이다.
작품을 고를 때도 현재와 미래에 던지는 메시지를 중요하게 봤다.
그는 "좋아하는 시인은 물론, 좋아하지 않더라도 좋은 시를 쓴 시인, 그리고 무엇보다 현재와 미래에 생산적인 메시지를 던져줄 수 있는 시인가를 가장 중요하게 보았다"고 말했다.
박준이 100년의 한국시를 다시 읽기 시작한 것은 등단 직후인 200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시인 이문재가 그에게 "한국 현대시를 다시 읽어라. 다시 한 번 보고 쭉 이어지는 계보를 보라"고 권했다. 이후 김소월부터 한국 현대시를 차례로 다시 읽기 시작하면서 박준은 "시가 새로워지는 것과 시가 여전한 것이 공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고 했다.
총 5부로 구성된 산문집에서 박준이 특히 공을 들인 것은 한국 현대시의 첫발을 내디딘 초기 시인들을 다룬 1부다.
그는 "선배가 부재했던 암흑 같은 시절에 높은 수준의 첫발을 디뎌놓은 1세대 시인들의 노력이 있었기에 오늘날 우리가 시를 쓸 수 있는 것"이라며 "1부 원고에 가장 많은 공을 들였다"고 밝혔다.
그렇다고 이 책이 한국 현대시사 개론서나 시 해설서는 아니다. 박준은 오히려 독자들이 느끼는 '현대시는 어렵다'는 장벽을 낮추기 위해 작품을 분석하거나 정답을 제시하는 대신 각각의 시에서 출발한 자신의 산문을 붙였다.
"여기에 달라붙어 있는 산문은 이 시를 어떻게 해석하고 분석해야할 지를 보여주는, 그러니까 해석을 선점하는 글들이 아니에요. '이 시를 읽고 이렇게까지 멀리 나가 자유롭게 감상할 수 있구나'라는 일종의 '오독의 자유'를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이번 책을 기획하고 편집한 출판사 난다 대표이자 시인 김민정은 66명에 달하는 시인들의 저작권을 해결하고 작품을 선별하는 과정에도 적지 않은 어려움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복잡한 저작권 문제 등으로 최근 문단에서 이 같은 형태의 시선집을 만나기 쉽지 않았다는 것이다.
박준이 독자들을 '시의 숲'으로 이끌고 싶다고 한 데는 자신의 시집을 통해 처음 시를 접한 젊은 독자들을 지켜본 경험도 작용했다.
그는 자신의 시집을 '내돈내산'으로 처음 산 독자들에게 이후 다른 시인의 시집도 읽었는지를 되묻는다고 했다. 자신의 책에서 독서가 끝나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시인을 발견하는 출발점이 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이번 책 역시 마찬가지다. 67편의 시를 맛보는 데 그치지 않고 한 편의 시를 계기로 그 시인의 온전한 시집을 찾아가기를 바란다.
박준은 시의 저작권을 해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결국 "시가 가장 온전하게 머물 수 있는 시집"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 책에 담긴 나뭇잎(시) 하나를 계기로 독자들이 해당 시인의 온전한 개별 시집을 찾아 읽는 건강하고 장기적으로 올바른 형태가 이뤄지길 바란다"고 했다.
책 제목 '기쁨에도 슬픔에도 아랑곳없이'는 시인 김종삼의 시에 붙였던 소제목에서 가져왔다.
"세상에서 정말 중요한 것들은 기쁘든 슬프든 아랑곳없이 계속 이어지는 법입니다. 그것이 작가에게는 쓰기의 숙명이고 독자에게는 읽기의 숙명이자 우리 삶의 본질입니다."
◎공감언론 뉴시스 suejeeq@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