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역 귀국선 우키시마마루호 폭침…"5천명 사망" 새사료

기사등록 2026/08/16 12:22:42 최종수정 2026/08/16 12:58:25

한일문화연구소 김문길 소장

[울산=뉴시스] 우키시마마루호 폭침 사건으로 조선인 징용자 5000명 사망, 생존자 3200명, 일본인 사망자 250명이라는 부산일보 1945년 9월16일자 보도. 부산일보는 '우키시마마루는 부산을 항해하지 않았다'는 제목으로 폭침사건을 목격한 조선연합회 김찬정씨가 지은 사료집에 일본어로 번역된것을 입수했다. 김찬정 씨는 조선연합회 간부였고 사고를 목격한 사람이다. (사진=한일문화연구소 제공) 2026.08.16.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울산=뉴시스] 조현철 기자 = 한일문화연구소는 16일 "1945년 8월24일 강제노역 조선인 귀국선 우키시마마루호 폭침 사건으로 사망자 수 등을 확인할 수 있는 사료가 새로 발견됐다"고 밝혔다. 

한일문화연구소에 따르면 1945년 8월24일 강제노역으로 끌려간 조선 노동자에 대한 귀국 문제에 대한 미 연합군과 일왕이 합의에 따라 귀국선 1호가 홋카이도 오미나도 항(北海道 大港)을 출발했다.

부산으로 향한 배가 교토부 마이즈루항 연안에 들어가자마자 폭침됐다. 일본 정부는 지금까지 '기뢰에 의해 폭발한 불가항력의 사건'이라고 주장한다. 마이즈루힝 연안은 해군사령부가 있어서 미 연합군이 설치한 기뢰(620발) 폭발로 3500여명 조선 노동자(일본 기관병 25명)가 수난을 당했다는 것이다.

김문길 한일문화연구소장은 "기뢰가 있는 마이즈루항에 왜 들어갔을까. 이것만 봐도 자의적인 폭발"이라며 "우키시마마루호 선장은 일급 항해사이고 기뢰가 어디 있는지 잘 아는 선장이다. 우키시마마루호는 기뢰를 탐지하는 기능을 지닌 배"라고 지적했다.

김 소장은 일본 군부가 폭침시킨 이유에 대해 "자결 사상 탓이다. 자결 운동은 패전해도 일본군은 일왕을 위해 목숨을 바친다는 사상이다. 입대할 때 야스쿠니 신사에서 천황을 위해 영원히 잠들고 싶다는 서약까지 하고 출전했다"며 "패전 후 오키나와에서 천황을 위해 죽자는 자결 운동이 일어나 동남 아세아 여러 곳에서 전쟁 아닌 전쟁 즉 자결 전쟁, 서로서로 죽이는 살해 운동이다. 죽기 싫은 조선 징병자, 징용자, 위안부도 일본군에 살해됐다. 우키시마마루호도 일본군의 자결 정신에 의해 폭침됐다"고 주장했다.

한일문화연구소는 이번에 우키시마마루호에 승선했던 조선인 강제 노역자(징용자)가 얼마나 죽었는가 확인할 수 있는 문건을 처음 입수했다. 유족들은 우키시마마루호에 탔던 8000여명이 희생됐다고 알고 있다.

김 소장은 "새로운 사료 제공자는 전남 순천시에서 노역 갔다가 구사일생으로 살아 돌아온 장종식씨다. 그는 승선 때부터 메모했다고 한다. 부산 부두에서 부산일보 기자와 인터뷰한 것을 보면 우키시마마루호는 7500t의 큰 배다. 승선인은 8450명이다. 일본 기관병 250명도 탔다. 사망자는 5000명이나 된다. 생존자는 3200명(일본인 포함) 뿐이라고 털어놨다"며 "지금까지 알려진 인원보다 많이 승선했고 죽은 자와 생존자가 파악된 것은 처음"이라고 강조했다.

김 소장은 군부의 비밀문서를 인용해 일본 폭침 관련 내용을 연구·폭로한 적이 있다. 폭침 연구 결과 1945년 8월20일 우키시마마루호는 출발 직전 부산으로 가지 않는다는 일본 기관병들의 설이 나돌고 있을 때 미 연합군은 일본 작전사령부에 연락해 패전 후 항공기와 선박은 움직이지 말라는 대해령(大海令) 52호를 내렸다. 그런데도 출항 준비를 하니 기관병들이 죽기 싫다고 항의하는 사태가 일어났다. 배에 실린 폭발물을 모두 제거하라고 했으나 그대로 항해함으로써 마이즈루항에서 폭파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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