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골공원 어르신들 '북적'…"산책 대신 더위 식혀"
복지시설은 좁고 붐벼 기피…교류 위해 공원으로
전문가 "폭염 대책, 냉방 넘어 교류 공간 확대로"
서울에 폭염중대경보가 내려진 5일 오전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체감온도가 35도를 웃도는 무더위에도 공원은 더위를 피해 나온 노인들로 북적였다. 정부와 지자체가 운영하는 무더위쉼터와 경로당이 곳곳에 마련돼 있었지만, 이들은 냉방시설 대신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공원을 택했다.
노인들은 조금이라도 더 그늘진 팔각정과 둘레길 벤치, 돌의자에 빽빽하게 모여 신발과 양말을 벗은 채 손부채질에 열중이었다. 신문을 읽거나 가만히 앉아 시간을 보내며 더위를 식히기도 했다.
오전 10시30분께 서울노인복지센터가 공원 정문 앞에서 생수를 나눠주기 시작하자 수십명의 노인들이 줄을 서며 긴 행렬이 만들어졌다. 생수를 받아든 이들은 그늘이 가장 넓은 곳으로 자리를 옮겼 더위를 식혔다.
마포구 아현동에 사는 김모(73)씨는 "비 오는 날 빼고는 매일 나온다"며 "집에만 있으면 갑갑하고 공원 그늘에 앉아 바람 맞는 게 훨씬 낫다"고 말했다.
노인들이 체감온도가 30도를 훌쩍 웃도는 날씨에도 땡볕을 뚫고 탑골공원으로 몰려드는 이유는 의외로 단순했다. 갈 곳이 없다는 것이다. 실내 무더위쉼터와 복지관, 경로당 등이 운영되고 있지만, 좁은 공간과 특유의 배타적 분위기, 눈치 보이는 환경 탓에 실내 시설을 기피하게 됐다는 의견도 많았다.
은평구에서 온 박모씨(78)는 "경로당은 나이가 더 많은 어르신들이 이미 자리를 잡고 있거나 기존 이용자들끼리 무리가 형성되어 있어 새로 들어가기가 어렵다"며 "혼자서는 더욱 가기 힘들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도 부담스럽다"고 털어놨다.
경기도 양주에서 온 양모씨(86) 역시 "복지관이나 경로당은 공간이 너무 좁아 답답하고 군대처럼 통제하는 분위기가 있어 불편하다"며 "여기(탑골공원)는 친구도 만나고 운동도 하고 200원짜리 커피도 마실 수 있는 만남의 장소"라고 말했다.
탑골공원 인근에 위치한 ‘탑골 어르신 문화놀이터’의 경우 에어컨이 가동되며 쾌적한 환경을 제공하고 있지만, 사실상 장기를 두는 노인들 위주로 운영되고 있어 일반 방문객이 오래 머물기 한계가 있다.
해당 기관 관계자는 "하루 약 150명이 찾고 점심 이후에는 통로가 꽉 찰 정도로 붐빈다"면서도 "장기를 두지 않는 사람들은 특별히 할 일이 없어 공원에 머무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은행이나 공공기관에 마련된 무더위쉼터에 대해서도 부담감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컸다.
종로구에 거주하는 홍모씨(64)는 "은행 무더위쉼터는 볼일이 끝나고 오래 앉아 있으면 직원들 눈치가 보여 오래 머물 수 없다"며 "밖이 더워도 마음 편히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공원이 차라리 낫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현상이 단순한 냉방 시설이나 무더위 쉼터 부족의 문제가 아니라 노년층의 사회적 고립과 여가 공간의 부재에서 비롯된 구조적 문제라고 지적한다.
정순둘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노인은 폭염으로 외출이 줄어 사람과의 관계가 끊기면 외로움과 사회적 고립이 심해질 가능성이 크다"며 "무더위쉼터가 폭염을 피하는 공간을 넘어 자연스럽게 사람들과 교류할 수 있는 공간이 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역시 "노인들이 자신이 거주하는 지역사회나 이웃 공동체 안에서 욕구를 해결하지 못하고 특정 장소로 몰리는 것이 근본적인 문제"라며 "복지관뿐 아니라 주민센터와 아파트 커뮤니티 등 지역사회가 폭염 기간 노인들이 머물며 교류할 수 있는 공간을 함께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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