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쿠데타·쿠르스크호 참사 이어진 러시아의 ‘저주의 달’
정유시설·와일드베리스 피격…군사·경제·정치 압박 겹쳐
FOM 조사서 푸틴 직무 긍정평가 71%→66%
영국 더타임스는 30일(현지시간) 러시아인들이 역사적으로 대형 재난과 정치적 격변이 되풀이된 8월을 ‘검은 8월’ 또는 ‘저주받은 8월’로 여긴다고 보도했다. 1991년 소련 강경파의 쿠데타 시도와 2000년 핵추진 잠수함 쿠르스크호 침몰, 2009년 사야노슈셴스카야 수력발전소 사고가 모두 8월에 발생했다. 2024년 8월에는 우크라이나군이 국경을 넘어 러시아 서부 쿠르스크주에 진입했다.
친정부 성향 여론조사기관인 러시아 여론재단(FOM)이 지난 10~12일 성인 15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대면조사에서 푸틴 대통령의 직무수행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응답자는 66%였다. 직전 주 조사에서 나온 71%보다 5%포인트 낮았다. 부정평가는 16%, 답변 유보는 17%였으며 표본오차는 ±3.6%포인트다. 더타임스는 66%가 러시아의 2022년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라고 전했다.
올해 8월을 앞두고는 여론 하락과 함께 러시아 본토를 겨냥한 공격도 이어지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 정유시설과 군수·물류 거점을 잇달아 공격했다. 러시아 최대 온라인 유통업체 와일드베리스의 물류시설에도 공격이 집중됐다. 이달 18일 이후 공격받은 와일드베리스 시설은 12곳가량이다.
우크라이나는 와일드베리스가 러시아군에 군수품을 공급한다는 점을 공격 이유로 들었다. 우크라이나 방산업체의 한 간부는 와일드베리스가 러시아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고 은행권의 주요 차입기업이라는 점도 공격 대상을 선정하는 과정에서 고려됐다고 주장했다. 러시아 최대 은행 스베르방크에는 공격으로 피해를 본 와일드베리스 입점업체 약 300곳의 대출 재조정 요청이 들어왔다. 다만 은행 측은 와일드베리스와 입점업체들이 손실을 견딜 재무 여력을 갖추고 있다고 밝혔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지난 22일 푸틴 대통령의 측근들도 전쟁의 시작과 장기화에 대한 책임이 푸틴 대통령에게 있다고 인식하고 있으며, 이런 인식을 담은 신호를 우크라이나와 서방에 보내고 있다고 주장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구체적인 인물이나 전달 경로를 공개하지 않았다. 그런 신호가 실제로 전달됐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러시아 정치 전문가인 타티아나 스타노바야 카네기 러시아·유라시아센터 선임연구원은 푸틴 대통령의 강경한 전쟁 노선과 전쟁 목표를 현실적으로 조정하고 정책을 바꿔야 한다는 러시아 내부의 요구가 충돌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푸틴 대통령을 녹슬어 꿈쩍하지 않는 볼트에 비유하며, 압력이 푸틴 대통령의 태도를 바꾸기보다 그를 둘러싼 권력체제의 균열을 키울 수 있다고 진단했다. 다만 정권 붕괴가 임박한 것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전황만 놓고 보면 러시아의 패배가 임박했다고 보기도 어렵다. 러시아군은 크림반도를 포함해 우크라이나 영토의 약 5분의 1을 장악하고 있으며, 우크라이나 도시를 겨냥한 미사일과 드론 공격도 이어가고 있다. 우크라이나군 전 총사령관 올렉산드르 시르스키는 지난 10일 전쟁의 결정적인 전환점은 “아직 멀었다”고 경고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21일 시르스키를 해임하고 후임에 미하일로 드라파티 소장을 임명했다.
전황과 여론이 엇갈리는 만큼 푸틴 정권을 무너뜨릴 계기를 예측하기도 어렵다. 더타임스는 2023년 용병기업 바그너그룹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의 반란과 같은 예측하기 어려운 돌발 사건인 ‘블랙스완’이 촉발점이 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푸틴 대통령의 집권을 도왔다가 비판자로 돌아선 글렙 파블롭스키 전 크렘린 정치전략가도 2014년 정권의 수명을 예측하기는 어렵지만 “무너지면 하루 만에 무너질 것”이라고 말했다.
설령 푸틴 정권이 흔들리더라도 그 변화가 자유화로 이어진다는 보장은 없다. 러시아 내부에서는 오히려 권위주의적 과거를 복권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러시아 공산당에 따르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러시아 본토와 러시아가 점령한 우크라이나 지역에 스탈린 동상이나 흉상이 최소 24개 세워졌다. 게오르기 필리모노프 볼로그다주 주지사는 스탈린의 숙청을 “권력을 통합하는 데 필요한 수단”이라고 옹호하기도 했다.
이런 흐름 속에서 더타임스는 푸틴 대통령이 권좌에서 물러나더라도 러시아가 곧바로 민주주의 체제로 전환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전망했다. 자유주의 야권 지도자들이 사망하거나 해외로 떠난 상황에서 현 안보기관 출신 인사나 정치 엘리트가 권력을 이어받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파블롭스키는 푸틴 이후의 러시아를 “지금 체제의 복사본”이라고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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