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불합의 업체 전액 수령률 75.7% 그쳐
하도급대금 전액 직불 약정 60.5% 불과
11일부터 직불합의에도 지급보증 의무화
[세종=뉴시스]여동준 기자 = 발주자가 하청업체에 공사대금을 직접 주기로 약속했다면 대금을 떼일 걱정도 사라질 것 같습니다. 원청업체를 거치지 않고 돈을 바로 받을 수 있으니 그만큼 안전해 보입니다.
건설현장에서 이 같은 약속을 '하도급대금 직접지급 합의', 통상 직불합의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실제 통계를 살펴보니 직불합의를 맺고도 대금을 전액 받지 못한 하청업체가 적지 않았습니다.
2일 뉴시스가 공정거래위원회의 2025년도 하도급거래 실태조사 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직불합의에 따라 하도급대금을 전액 받았다고 답한 건설 수급사업자는 75.7%였습니다.
반대로 보면 24.3%, 대략 하청업체 4곳 중 1곳은 직불합의를 맺고도 대금을 전액 받지 못했다는 의미입니다.
직불합의의 범위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직불합의를 체결할 때 하도급대금 전액을 직접 지급하기로 했다는 응답은 60.5%에 그쳤습니다.
직불합의 10건 중 4건가량은 합의 범위가 애초부터 하도급대금 전체를 포괄하지 않았던 셈입니다.
직불합의가 무엇인지부터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겠습니다.
하도급거래에는 발주자와 원사업자, 수급사업자가 등장합니다.
발주자는 공사를 맡긴 주체이고 원사업자는 공사를 수주한 원청업체, 수급사업자는 원청으로부터 일부 공사를 다시 맡은 하청업체입니다.
통상 발주자가 원사업자에게 공사대금을 주면 원사업자가 다시 수급사업자에게 하도급대금을 지급합니다.
직불합의를 체결하면 이 중간 단계를 건너뛰어 발주자가 수급사업자에게 대금을 직접 지급합니다.
쉽게 말하면 직불합의는 돈이 전달되는 통로를 바꾸는 제도입니다.
원사업자가 발주자로부터 받은 공사대금을 다른 곳에 사용하거나 경영난으로 하도급대금을 지급하지 못할 위험을 줄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직불합의가 하도급대금 수령을 무조건 보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발주자의 직접지급 의무는 원칙적으로 발주자가 원사업자에게 지급해야 할 원도급대금의 범위 안에서 작동하기 때문입니다.
이번 실태조사에는 직불합의에도 대금을 전액 받지 못한 구체적인 사유가 담기지 않았습니다.
다만 별도로 실시된 2024년 전문건설업 실태조사를 보면 제도가 작동하지 않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당시 발주자에게 직접지급을 청구하고도 하도급대금을 받지 못한 수급사업자의 26.6%는 발주자가 원사업자에게 지급할 기성금이 남아 있지 않았다고 답했습니다. 제3채권자의 압류·가압류로 공사대금이 공탁됐다는 응답도 12.4%였습니다.
발주자에게 직접 대금을 달라고 요구할 권리가 있더라도 발주자가 원사업자에게 줄 돈이 이미 소진됐거나 원도급대금 채권이 압류됐다면 실제 지급으로 이어지지 않을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발주자마저 부도나 파산에 빠지는 경우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 등장하는 또 다른 안전장치가 하도급대금 지급보증입니다.
지급보증은 원사업자가 부도·파산 등으로 하도급대금을 지급하지 못할 경우 건설공제조합이나 서울보증보험 등 제3의 보증기관이 수급사업자에게 대금을 대신 지급하는 제도입니다.
직불합의가 돈을 누구에게서 받을지 정하는 지급 통로라면, 지급보증은 지급 주체가 돈을 주지 못할 때 손실을 보완하는 보험에 가깝습니다.
그동안에는 발주자와 원사업자, 수급사업자가 직불합의를 맺으면 원사업자의 지급보증 의무가 면제됐습니다.
발주자가 하청업체에 직접 돈을 주기로 했으니 별도의 보증까지 요구할 필요가 없다고 본 것입니다.
문제는 직불합의가 제대로 이행되지 않을 경우입니다. 발주자에게서 돈을 받지 못했는데 직불합의를 이유로 지급보증까지 면제됐다면 수급사업자는 발주자와 보증기관 어느 쪽에서도 대금을 받지 못할 수 있습니다.
정부가 직불합의와 지급보증을 양자택일 관계가 아닌 이중 안전망으로 바꾸기로 한 이유입니다.
11일부터는 공사금액 1000만원 이하 소액 공사를 제외한 모든 건설 하도급거래에 지급보증이 의무화됩니다.
발주자 직접지급 합의를 체결했거나 전자 대금 지급시스템을 사용하는 경우에도 지급보증을 받아야 합니다.
앞으로는 직불합의에 따라 발주자가 하도급대금을 직접 지급하는 것을 우선으로 하되, 발주자의 부도나 압류 등으로 직불이 작동하지 않으면 보증기관을 통해 대금을 받을 수 있게 됩니다.
직불합의를 맺은 하청업체 4곳 중 1곳이 대금을 전액 받지 못했다는 통계는 직불합의만으로 지급 위험을 완전히 제거하기 어렵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동시에 직불합의에 지급보증을 덧대는 제도 개편의 필요성을 뒷받침하는 수치이기도 합니다.
다만 지급보증 의무를 법에 적는 것만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원사업자가 실제로 보증에 가입했는지, 수급사업자가 보증서 발급 사실과 청구 방법을 알고 있는지까지 확인해야 제도가 현장에서 작동할 수 있습니다.
새로운 이중 안전망이 통계 속 '4곳 중 1곳'을 얼마나 줄일 수 있을지 지켜봐야겠습니다.
※'세쓸통'은 '세상에 쓸모없는 통계는 없다'는 일념으로 통계 속에 숨겨진 이야기를 찾아내 알기 쉽게 풀어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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