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자를 위로하는 예술의 힘…공항은 거대한 미술관

기사등록 2026/07/19 09:07:50 최종수정 2026/07/19 09:32:25
바레인 국제공항에 있는 브라이언 클라크 (Sir Brian Clarke)의 '콘코르디아 / Concordia'. 핸드페인팅 및 입체 레이어드 유색 건축 유리, 스테인드글라스, 34 × 17m, 2020–2021. 사진=이규현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전쟁은 공항을 가장 먼저 바꾼다.

항공편은 취소되고, 활주로는 닫히며, 여행자는 언제 집으로 돌아갈지 모른 채 공항에 갇힌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그 불안의 한가운데서 가장 큰 위로가 된 것은 미술작품이었다.

미국과 이란의 전쟁이 시작된 지난 2월, 나는 카타르에 있었다. 다음날 귀국할 예정이었지만 자고 일어나니 항공편은 취소돼 있었고 공항은 문을 닫았다. 항공사 전화는 날마다 불통이었다. 언제 하늘길이 다시 열릴지 알 수 없는 채 하루하루 불안은 커져갔다.

고립 열흘째, 드디어 한국행 전세기가 마련됐다. 공항으로 향하던 새벽에도 이란의 미사일 공격과 요격 소리, 사이렌을 들으며 눈을 떴다. 항공권을 발권하고 면세구역에 들어서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쉬던 순간, 낯익은 존재가 눈에 들어왔다.

카타르 하마드 국제공항의 상징인 스위스 현대미술가 우르스 피셔의 대형 조각 '무제(램프/곰)'이었다.

높이 7m, 무게 18톤의 노란 청동 곰인형은 여행객들에게 가장 유명한 포토존이다. 하지만 그날의 곰은 사진을 위한 조형물이 아니었다. 꾸벅꾸벅 졸고 있는 듯한 자세와 머리 위 램프에서 흘러나오는 따뜻한 빛은 긴장으로 굳어 있던 마음을 조금씩 풀어주었다. 작가는 장거리 비행에 지친 사람들에게 '집'과 '방'의 포근함을 전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전쟁을 위해 만든 작품은 아니었지만, 미사일 요격음이 들리던 그 공항에서 이 곰은 내게 "집에 잘 가. 다시 만나자"고 말하는 듯한 위안이 되었다.

카타르 도하 하마드 국제공항에 있는 우르스 피셔 (Urs Fischer)의 '무제 (램프/곰) / Untitled (Lamp/Bear)'. 청동에 우레탄 도료 코팅, 아크릴, 유리, 알루미늄 구조물 및 라이트 시스템, 700 × 650 × 749 cm (높이 약 7m), 2005-2006. 사진=이규현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미국과 이란의 긴장이 다시 고조된 7월, 이번에는 두바이를 거쳐 바레인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이란의 공격 반경 안에 있는 나라라는 사실만으로도 마음은 무거웠다. 우울한 마음으로 입국장을 나서자 눈앞에 펼쳐진 것은 영국 유리예술가 브라이언 클라크 경의 거대한 스테인드글라스 작품 '콘코르디아'였다.

가로 34m, 세로 17m. 세계 최대 규모의 핸드페인팅 스테인드글라스는 꽃과 곤충의 형상을 눈부신 색채로 담아냈다. 하루에도 몇 차례씩 드론과 미사일 경보가 울리고 하늘길이 열렸다 닫히기를 반복하는 나라에서, 그 작품은 공항을 잠시 평화로운 성당처럼 느끼게 했다.

예술은 전쟁을 멈추게 하지는 못한다. 그러나 두려움 속에서도 인간다움을 잃지 않게 하는 힘은 있다. 그날 공항의 미술은 관광객을 위한 장식이 아니라 불안한 여행자의 마음을 붙잡아 주는 가장 조용한 위로였다.

여름 휴가철 세계의 공항은 수많은 여행객으로 붐빈다. 동시에 공항은 한 나라의 첫인상과 문화적 품격을 보여주는 가장 큰 미술관이기도 하다. 세계 주요 공항들이 이름난 작가들의 작품을 설치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인천국제공항 제2터미널에 있는 자비에 베이앙 (Xavier Veilhan)의 '그레이트 모빌(Great Mobile)'. 알루미늄, 스테인리스 스틸, 우레탄 도료 도장, 1,850 × 1,350 × 1,940 cm, 2017-2018. 사진=313아트프로젝트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인천국제공항 제2터미널에 있는 자비에 베이앙 (Xavier Veilhan)의 '그레이트 모빌(Great Mobile)'. 알루미늄, 스테인리스 스틸, 우레탄 도료 도장, 1,850 × 1,350 × 1,940 cm, 2017-2018. 사진=313아트프로젝트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 출발층에 설치된 프랑스 현대미술가 자비에 베이앙의 '그레이트 모빌' 역시 그렇다. 높이 19m의 푸른 기하학적 형태들은 공기의 흐름을 따라 천천히 움직이며 떠오르는 비행기의 역동성을 평화로운 리듬으로 바꿔 놓는다.

외국인 관광객에게도, 여행을 떠나는 우리에게도 이 작품은 잠시 바깥세상의 소음을 잊게 한다. 공중에서 균형을 이루며 천천히 움직이는 모빌은 결국 모든 여행자가 돌아가게 될 곳, '집'을 떠올리게 한다.

여행의 끝은 언제나 집이다. 그래서 공항의 미술은 출발을 축하하는 작품이 아니라 무사한 귀환을 기원하는 작품인지도 모른다. 전쟁과 불안의 시대일수록 세계의 공항에 놓인 예술은 여행자들에게 가장 조용한 목소리로 말을 건넨다. "괜찮다. 무사히 다녀와 다시 만나자."

글:이규현 이앤아트 대표. 한국작가들을 국제무대에 소개하는 아트마케터이자 전시기획자다. 특히 중동지역에서 한국 작가들을 소개하는 전시기획자로 활동하고 있다. 이집트 피라미드 국제미술제인 ‘포에버 이즈 나우’의 큐레이터이며, ‘세상에서 가장 비싼 그림 100’ ‘그림쇼핑’ ‘미술경매이야기’ 등의 저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