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스파이 유입·중국발 허위정보 대응 명분
부처별 정보 수집·분석 기능 총리실로 집중
야권 "사생활 침해·감시사회로 가는 길"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13일(현지시간) 일본 정부가 최근 몇 달간 미국과 호주, 독일 당국에 새 정보기관에 필요한 기술과 인력 구성, 업무 우선순위에 관해 비공개로 조언을 구했다고 보도했다. 관련 협의가 외부에 알려진 것은 처음이다.
NYT는 앞서 최근 몇 년 사이 러시아 스파이 수십 명이 일본에 들어왔다고 전했다. 러시아가 제재를 피해 일본에서 무기 부품을 사들여 본국으로 보내는 데 주력했다는 것이다. 외국 당국은 일본에 이를 경고했지만 일본의 대응은 더뎠다.
일본의 정보체계는 그동안 방위성과 외무성, 경찰 등이 각각 정보를 수집·분석하는 분산형으로 운영됐다. 부처 간 정보 공유를 강제할 장치가 없어 일본이 간첩 활동과 외국이 여론·정책에 영향을 미치려는 공작에 취약하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중앙정보기관 설립은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가 추진하는 안보체제 개편의 핵심이다. 다카이치 총리는 중국과 러시아, 북한의 위협을 이유로 전후 일본에 적용돼온 국방·안보상의 제약을 완화하려 하고 있다. 다카이치 정부가 특히 경계하는 것은 중국의 여론 개입 공작이다. 사이버안보 연구단체 시티즌랩에 따르면 중국은 최근 일본어 뉴스 채널로 위장한 사이트를 만들어 친중국 여론을 조성하기 위한 허위정보를 유포했다.
새 기관은 약 4억700만달러(약 6100억원)의 예산으로 오는 12월 가동될 예정이다. 초기 인력은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와 사이버안보 분석가, 해외 연락 담당자 등 수백 명 규모다. 신규 인력을 뽑기 위한 채용시험은 내년에 실시할 계획이다.
새 기관과 별도로 각 부처의 정보활동을 지휘할 정보위원회도 설치된다. 이 위원회는 총리가 의장을 맡아 중앙사령탑 역할을 한다. 일본 국회는 지난 5월 관련 법안을 통과시켰다. 일본 정부는 사이버 공격을 통한 기밀 탈취와 정책 결정에 영향을 주기 위한 허위정보 유포에 대응하려면 새 기관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일본은 이 같은 조직과 운영체계를 설계하는 과정에서 서방 정보기관의 도움을 받고 있다. 미국 정보당국은 일본 측에 사이버 방어체계와 산업기밀 유출 방지 방안을 조언했다. 외국인 투자와 외국 정부·기관을 대신해 활동하는 대리인에 대한 심사를 강화하는 방안도 제시했다. 독일 연방정보국(BND) 수장은 도쿄를 방문해 정보 공유 확대 방안을 논의했으며, 호주 당국은 각 부처가 한 조직처럼 협업하는 체계를 조언했다.
호주 국가정보국장을 지낸 앤드루 시어러 주일 호주대사는 일본의 정보 역량이 “수십 년째 제자리걸음을 했다”며 총리가 정치적 부담을 감수하면서 중앙정보기관 설립을 우선 과제로 추진하는 것은 큰 변화라고 평가했다. 일본 정부는 외국 정부에 자문을 구했는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답변을 피한 채 “관련국 기관들과 평소 긴밀히 협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정보 수집 기능이 총리에게 집중되는 데 대한 반발도 나온다. 중국은 다카이치 총리의 계획을 군국주의적 행보라고 비판했다. 일본 내 일부 의원과 시민단체도 기관을 견제할 장치가 부족하고 평화주의 원칙에 어긋난다고 주장한다.
일본의 정보체계는 패전 뒤 미국 주도의 점령정책에 따라 해체됐다. 이후 일본은 해외정보 수집을 미국에 크게 의존했고, 국내에서는 특고경찰의 폐해 때문에 독립 정보기관을 만들자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았다. 그 결과 부처 간 칸막이가 굳어지고 외국 정보기관 요원들이 별다른 제약 없이 활동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면서 일본은 ‘스파이 천국’으로 불렸다.
아베 신조 전 총리는 2013년부터 미국식 국가안전보장회의와 사무국을 설치하고 특정비밀보호법을 도입했다. 아베 전 총리의 안보노선을 계승한 다카이치 총리는 방첩법을 강화하려 하고 있으며, 미국을 본뜬 외국인투자 심사기구도 만들었다. CIA와 유사한 해외정보기관을 별도로 만드는 방안에도 지지 의사를 밝혔다.
일본 정보체계 전문가인 리처드 새뮤얼스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는 이번 개편이 “통합되고 강력한 정보공동체를 갖추는 데 큰 진전”이라면서도 “일본은 아직 정보 강국이 아니며 일본도 이를 알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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