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산연, 호주·영국·미국 등 5개국 산업안전보건법 비교
도급인 처벌 수준, 5개국 중 호주에 이어 두 번째 높아
"법적 권한 제한적"…도급인 안전관리 '균형' 필요 제언
[서울=뉴시스] 박성환 기자 = 건설 도급인에게 부과된 산업안전보건법상 의무와 형사책임은 주요 선진국과 비교해 최상위 수준인 반면, 이를 이행하기 위한 법적 권한은 상대적으로 제한적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의무와 책임은 강화됐지만 현장을 실질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법적 수단은 미흡해 제도적 균형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8일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이 발표한 '산업안전보건법상 건설 도급인 안전관리 의무·책임·권한 균형에 관한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현행 산업안전보건법이 도급인에게 부여한 법적 권한은 의무와 책임에 비해 상대적으로 제한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는 산업안전보건법이 근로자의 생명과 신체 보호를 최우선으로 하는 사회법이라는 점에서 도급인에게 권한보다 무거운 의무를 부여하는 것은 제도적으로 수용 가능하다고 평가했다. 다만 도급인이 계약상 우월적 지위와 현장에 대한 영향력을 갖고 있음에도 이를 법적으로 정당하게 행사할 수 있는 통제 수단은 충분하지 않다고 분석했다.
이번 연구는 한국과 호주, 영국, 미국, 일본 등 5개국의 산업안전보건법령을 의무·책임·권한 측면에서 비교·분석했다. 분석 결과 호주와 영국은 '실제로 통제할 수 있는 범위만큼만 의무를 부담한다'는 원칙을 법률에 명시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국가는 '합리적 실행가능성'과 '영향력·통제 가능성'을 기준으로 도급인의 책임 범위를 설정하고 있다.
반면 한국은 이러한 기준이 법률에 명확히 규정돼 있지 않아 사고 발생 이후 법원의 양형 과정에서 통제 범위가 일부 고려되는 구조라는 게 건산연의 설명이다.
또 형사 책임 수준도 한국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산업안전보건법상 사망사고 발생 시 도급인에게 부과되는 처벌은 최대 7년 이하의 징역으로, 비교 대상 국가 가운데 호주(15년 이하 징역)에 이어 두 번째로 높았다. 일본은 징역형 없이 벌금형 중심의 처벌 체계를 운영하고 있어 형사적 부담의 차이가 큰 것으로 조사됐다.
반면 권한 측면에서는 한국이 상대적으로 제한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호주와 영국은 도급인이 현장 안전관리계획을 통해 안전규칙을 직접 마련하고 이를 하청업체와 근로자에게 적용할 수 있다. 일본 역시 혼재작업 상황에서는 원청이 하청 근로자에게 직접 시정을 지시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두고 있다.
한국은 하청업체를 통한 간접적인 시정요구가 중심이다. 특히 안전 확보를 위한 지시는 가능하지만 작업 방법이나 작업 순서에 대한 직접적인 지시로 이어질 경우 파견법상 불법파견으로 판단될 가능성이 있어 그 경계가 명확하지 않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됐다. 이 때문에 도급인이 적극적인 안전관리를 주저하는 '위축 효과'가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는 분석이다.
보고서는 건설현장에서 중대재해가 반복되고 위험의 외주화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부각되면서 원청인 도급인의 책임이 지속적으로 강화돼 왔다고 설명했다. 2019년 산업안전보건법 전부개정을 통해 도급인의 안전조치 의무와 처벌이 대폭 강화됐고, 2021년에는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됐다. 최근에는 사망사고를 반복적으로 발생시킨 기업에 영업이익의 일정 비율을 과징금으로 부과하고 건설업 등록 말소까지 요청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도 국회에서 논의되고 있다.
건산연은 "건설 안전은 도급인에 대한 책임 강화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며 "발주제도와 적정공사비, 공사기간, 안전문화 등 다양한 요소가 함께 개선돼야 실질적인 재해 예방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보고서는 도급인의 법적 권한을 합리적으로 보완하는 한편, 의무와 책임 역시 실제 통제 가능한 범위에 맞춰 설계하는 제도적 장치를 함께 마련할 것을 제언했다.
최수영 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도급인의 안전관리 의무와 책임, 권한의 균형을 다시 살피는 것은 형식적 문서 관리에 머물던 현장 안전관리를 실질적인 재해 예방 중심으로 전환하기 위해 우선적으로 검토해야 할 과제"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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