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美건국일에 '아프리카 난민섬' 방문…"이민자 존엄 지켜야"

기사등록 2026/07/04 23:36:50 최종수정 2026/07/04 23:59:32

유럽 향하는 난민섬…유럽 지도자에 포용책 주문

美국민에게도 서한…"이민자 희생, 美역사 한 부분"

[람페두사=AP/뉴시스] 레오14세 교황이 4일(현지 시간) 이탈리아 남부 시칠리아주 람페두사섬에서 이주민 묘지를 찾아 추모하고 있다. 2026.07.04.

[서울=뉴시스]고재은 기자 = 레오 14세 교황이 4일(현지 시간) 미국 건국 250주년 독립기념일을 맞아 유럽으로 향하는 아프리카 난민들의 밀항지 '람페두사섬'을 방문했다.

미국이 이민자들로부터 세워진 나라임을 상기시키고, 이민자 등 가장 취약한 사람들의 존엄성을 지켜야 한다는 기독교적 의무를 미국과 유럽에 전달했다.

AP통신 등에 따르면 교황은 이날 이탈리아 시칠리아의 람페두사섬을 방문해 이주민 묘지에서 추모하고 섬 주민과 이주민을 위한 미사를 집전했다. 난파된 배로 만들어진 무덤 위에 노란색, 흰색 꽃으로 만든 화환도 바쳤다.

람페두사섬은 이탈리아 영토이지만 아프리카에 더 가깝다. 수십 만 명의 아프리카 이민자가 유럽으로 들어오는 주요 관문으로 꼽힌다. 아프리카 난민들은 주로 인신매매에 연루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교황은 강론에서 람페두사 주민들이 이주민을 환영하며 보여준 자비심에 감사하며, 유럽 지도자들이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즉각적인 구호와 함께 이주민을 수용·지원하는 장기적인 전략을 마련하고, 이주민들의 모국을 발전시켜 아무도 이주를 '강요' 당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어떤 지적인 고찰이나 이념적 신념에 앞서, 모든 것을 벗어던지고 우리 앞에 누워 있는 사람들과의 만남은, 우리를 그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도록 이끈다"고 말했다.

이어 "한 명이 아니라 수천 명의 사람들이 모든 것을 빼앗기고 잔인하게 폭행당한 채 버려지는 모습을 목격했다"며 "어떤 이들은 항해 중에 목숨을 잃었지만 우리는 그들의 존재를 느끼고 있다. 관심과 도움의 손길을 필요하며, 상륙한 이들 못지 않게 경종을 울린다"고 설명했다.

레오 14세 교황은 이날 미국인들에게 보낸 서한에서도 "이민자들의 희망과 희생, 기여는 미국의 시작부터 역사 한 부분을 형성해 왔다"며 "이민자들을 환영·보호·지원하는 것은 태아와 모든 인간의 생명을 보호하는 것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이어 "이민자들을 연민과 관대함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단순한 자선 행위일 뿐 아니라 모든 인간에게 있는 존엄성을 인정하는 것이기도 하다"고 덧붙였다.

그는 가톨릭 역사상 첫 미국인 교황으로, 이민자 단속 강화 정책을 추진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를 비판해 왔다.

AP통신은 "레오 14세 교황의 방문은 이주민과 난민 문제를 최우선 과제로 삼았던 프란치스코 교황의 뒤를 잇는 것"이라며 "가톨릭 교회는 고난을 피해 도망치는 사람을 환영하는 것을 '나그네를 환대하라'는 복음을 따르는 행위로 본다"고 설명했다.

레오14세 교황은 지난달에도 이민자 밀항지로 알려진 스페인 카나리아 제도를 방문, 이민자 보호를 강조하는 한편 이민자들의 절박함을 악용한 범죄 행위를 강하게 비판했다.

동아프리카 에리트레아 출신이자 2013년 람페두사 난파 사고 희생자들이 설립한 비영리 단체 대표인 타레케 브라네는 "강력한 연대 메시지"라며 "(교황 방문은) 죽은 이들을 기리는 동시에 아직도 기다리며 고통받는 유족들에게 메시지를 준다"고 평가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jeko@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