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북·아이패드 가격 최대 70만 원 기습 인상…아이폰 인상 가능성도 거론
마이크론 CBO "불황기 고객사 저가 압박이 투자 위축 불러"…사실상 애플 정조준
코너 몰린 애플, 트럼프 행정부에 美 제재 대상인 中산 D램 승인 로비 총력
그러나 반도체 업계에서는 애플이 단순한 '공급망 대란의 피해자'가 아니라, 과거 불황기 시절 대량 구매력을 무기로 부품 단가를 극한으로 깎아내려 공급사들의 설비 투자를 위축시킨 '원인 제공자'라는 날 선 지적이 터져 나온다.
과거 저가 조달 구조의 수혜자였던 애플이 이제는 메모리 공급 부족과 가격 급등의 역풍을 맞고 있다는 분석이다. 특히 수년 전 반도체 다운사이클 당시 메모리 업체들이 충분한 설비 투자를 하지 못했던 것이 부메랑으로 돌아왔다는 진단도 나온다.
◆AI 서버가 메모리 빨아들이자…애플도 아이패드·맥 등 가격 줄인상
30일 업계에 따르면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메모리 부족 사태를 '100년 만의 홍수'에 비유하며 가격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AI 서버용 메모리 수요가 급증하면서 PC·태블릿·스마트폰용 범용 메모리까지 가격 상승 압력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메모리 시장은 AI 수요를 중심으로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마이크론 등 주요 메모리 업체들은 고대역폭메모리(HBM)를 비롯한 AI 서버용 제품에 생산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일반 PC와 모바일 기기에 쓰이는 D램·낸드(NAND) 공급도 빠듯해지고 있다.
애플은 결국 비용 부담을 소비자 가격에 반영하는 쪽을 택했다. 맥북과 아이패드는 저장용량 옵션에 따라 메모리와 낸드 가격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는다.
업계에서는 메모리 가격 상승세가 장기화할 경우 하반기 출시될 아이폰 라인업의 가격 인상 가능성도 크다는 데 무게가 실리고 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애플의 과거 공급망 전략이 다시 도마에 올랐다는 점이다. 애플은 오랫동안 글로벌 부품사들을 상대로 강한 가격 협상력을 행사해왔다. 막대한 주문 물량을 바탕으로 낮은 단가를 요구했고, 이는 애플 제품의 높은 수익성을 떠받치는 핵심 요인 중 하나였다.
애플의 구매력은 수치로도 드러난다. 애플은 2025회계연도 말 기준 제조 관련 구매의무가 562억달러에 달했고, 이 중 554억달러가 12개월 내 지급 예정이라고 공시했다. 제품 부문 매출총이익률도 지난해 36.8%를 기록했다.
최근 주요 메모리 공급업체 중 하나인 마이크론 고위 임원도 이 같은 구조를 우회적으로 지적했다.
애플 전문 매체 나인투파이브맥 등에 따르면 수밋 사다나 마이크론 최고사업책임자(CBO)는 일부 고객의 공격적인 가격 요구가 현재 메모리 공급 부족의 배경 중 하나가 됐다는 취지로 말했다.
사다나 CBO가 애플을 직접 지목하지는 않았지만, 업계에서는 이를 애플의 공격적 조달 관행과 연결해 해석하고 있다.
◆2023년 혹한기 겪은 메모리 업계…삼성·하닉·마이크론 모두 대폭 적자
실제 2023년 메모리 업황은 극심한 침체를 겪었다. 마이크론의 2023회계연도 매출은 155억4000만달러로, 전년 307억5800만달러의 절반 수준으로 줄었다. D램은 평균판매가격(ASP)이 40%대 후반 하락하며 매출이 51% 감소했고, 낸드도 ASP가 50%대 초반 떨어지며 매출이 46% 줄었다.
마진도 무너졌다. 마이크론의 연결 매출총이익률은 2022년 45%에서 2023년 -9%로 급락했다. 순손실은 58억3300만달러에 달했다. 유형자산 투자 지출도 2022년 120억6700만달러에서 2023년 76억7600만달러로 약 36% 줄었다.
국내 업체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SK하이닉스는 2023년 매출 32조7700억원, 영업손실 7조7300억원을 기록했다. 영업이익률은 -24%였다. 삼성전자 DS부문도 2023년 연간 약 14조8800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이런 상황에서 애플 같은 대형 세트업체들은 상대적으로 유리한 위치에 있었다. 메모리 가격이 폭락하고 공급사들이 적자에 시달릴 때는 대량 구매력이 곧 가격 협상력이 됐다. 애플은 이 시기 낮은 부품 단가를 통해 제품 마진을 방어할 수 있었다.
물론 현재의 메모리 가격 급등을 애플 책임으로만 돌리기는 어렵다. 핵심 원인은 AI 인프라 투자 확대다.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이 데이터센터 구축에 막대한 자금을 투입하면서 HBM과 고성능 D램 수요가 급증한 것이 핵심 원인이다.
다만 과거 저가 조달 구조가 현재의 공급 부족을 키운 배경 중 하나로 거론될 여지는 있다. 메모리 업체들이 가격 폭락과 적자, 투자 축소를 겪은 뒤 AI 수요가 폭발하면서 공급 확대 속도가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협상력은 공급사 쪽으로 기울고 있다. 과거에는 애플의 대량 구매가 부품사들에 강력한 유인이었지만, 지금은 엔비디아와 클라우드 사업자 등 AI 고객들이 더 높은 가격을 지불하며 메모리 물량을 확보하고 있다.
애플이 중국 창신메모리(CXMT) 카드를 검토하는 것도 이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파이낸셜타임스(FT) 등 외신에 따르면 애플은 CXMT 메모리 칩을 구매할 수 있도록 미국 정부와 접촉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마이크론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고 저렴한 중국산 범용 D램을 조달해 무너진 하드웨어 마진율을 방어하겠다는 다급한 계산이다. 그러나 미국 의회와 정계에서는 "동맹국 중심의 안전한 공급망 구축 기조를 깨고 중국 군수업체와 파트너십을 맺는 것은 심각한 실수"라며 즉각 반발하고 있어 사실상 실현 가능성은 없다.
결국 이번 사태는 애플의 공급망 전략이 한계에 부딪힌 장면으로 볼 수 있다. 애플은 그동안 부품사들보다 우위에 선 구매자였다. 하지만 AI 메모리 슈퍼사이클이 본격화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업계 관계자는 "애플의 가격 인상은 메모리 쇼티지의 결과이자 동시에 애플이 오랫동안 누려온 저가 조달 구조가 흔들리고 있다는 신호"라며 "수년간 '공급망의 제왕'으로 군림하던 애플이 공급망의 역풍을 정면으로 맞게 된 셈"이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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