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감원 "의심만 하다 묻혀버리는 사례도"…업계 "세부 요건 논의 선행돼야"
현행법상 회계감리엔 계좌추적 권한 없어…금융실명법 개정 필요
[서울=뉴시스]김민수 기자 = 회계감리 과정에서 금융감독원에 제한적인 계좌추적권을 부여하는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 분식회계 적발의 실효성을 높일 수 있다는 기대가 나오는 반면, 기업 부담·개인정보 보호 문제 등을 우려하는 신중론도 제기된다.
26일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 24일 금융감독원과 한국회계학회가 공동 개최한 '회계 심사·감리제도 개선방향에 관한 연구 세미나'에서는 회계감리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방안 중 하나로 금감원에 제한적인 계좌추적권을 부여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계좌추적권은 금융당국이 조사 과정에서 특정 계좌의 거래내역과 자금 흐름 등을 요구·확인할 수 있는 권한을 말한다.
현재 금감원은 회계감리 과정에서는 이러한 강제 조사권이 없어 고의적 분식회계 적발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금융당국은 회계감리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감리수단 강화가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회계감리 과정에서도 계좌추적권을 통해 금융거래정보를 확보할 수 있게 되면 자금 흐름을 추적해 분식회계의 핵심 증거를 보다 효과적으로 확보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다만 회계감리에 계좌추적권을 부여하려면 금융실명법 개정이 필요하다. 현행법상 계좌추적권은 불공정거래 조사와 금융회사 검사 등에 한정돼 있어 회계감리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지난해 1월 회계감리 과정에서도 계좌추적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금융실명법 개정안이 발의됐지만, 현재 국회 정무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고의적 분식회계는 차명계좌나 우회 자금거래 등 복잡한 금융거래를 동반하는 경우가 많아 계좌추적 없이는 핵심 증거 확보가 어렵다는 점에서 도입 필요성에 공감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앞서 세미나에서 박경진 명지대학교 교수는 "회계부정은 갈수록 정교해지고 있어 장부상 숫자만으로는 고의성과 구조를 입증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며 "회계부정의 실체 파악을 위해 실제 자금 흐름을 확인할 수 있는 계좌추적권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계좌추적권은 강한 권한이라기보다 우회비용을 줄이는 효율적 수단"이라며 "권한을 도입하되 요건은 좁고 명확하게, 사용은 엄격하고 안전하게 설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금융당국도 현장에서 한계를 체감하고 있다. 횡령·배임 의심 사건에서 자금 흐름을 역추적하거나, 매출을 부풀리기 위해 회삿돈을 돌려 거래처 입금인 것처럼 꾸민 사례 등에서 계좌추적 없이는 의심만 할 뿐 명확한 입증이 어려운 상황이 반복된다는 것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횡령이나 배임 의심 사건에서 계좌추적이 가능하면 돈이 돌아 들어간 것을 입증할 수 있는데 그걸 못 하는 상태에서 의심만 하는 것"이라며 "간접적인 정황 증거만 제시하다 보니 고의가 인정 안 되거나 중과실 증거가 없다는 판단이 나오면 금융당국 차원에서 그냥 묻혀버리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모든 감리에 필요한 게 아니라 아주 일부 케이스에서만 필요한 것"이라며 "불공정거래 조사에는 이미 예외 조항이 있는데 회계감리에는 적용되지 않아 같은 사안이라도 불공정거래와의 연계성을 별도로 입증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도입에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계좌추적권은 개인과 기업의 금융정보를 강제로 열람하는 권한인 만큼 남용될 경우 기본권 침해 우려가 크다는 이유에서다.
강경진 한국상장회사협의회 정책2본부장은 "계좌추적권 필요성에 부정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면서도 "어떤 조건과 절차에서 권한을 행사할지, 승인과 책임 주체는 누구인지 등 세부적인 논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는 "기업 입장에서는 모든 금융거래가 잠재적인 혐의 자료로 활용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을 수 있다"며 "권한 도입과 함께 최소통제 원칙과 오남용 방지 장치를 명확히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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