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 구자룡 기자 = 앨런 그린스펀 전 연방준비제도(FRB) 의장이 22일(현지 시각) 파키슨병 합병증으로 100세에 별세했다. 많은 이들이 상당히 오랜 시간 그를 잊고 있었을 것이다. 세계는 오랜 기간 그의 입과 가방을 주시했다.
그는 1987년 8월부터 2006년 1월까지 18년 5개월을 근무했다. FRB 역사상 두 번째로 재임기간이 길었다.
가장 긴 인물은 윌리엄 맥체스니 마틴 주니어로 1951년 4월부터 1970년 1월까지 18년 10개월을 근무했다. 2차 대전이 끝나고 미국이 세계 경제 질서를 만들어가던 시기에 마틴 주니어는 연준의 독립성을 확립한 인물로 평가받았다.
그는 “파티가 한창 무르익을 때 펀치볼을 치워야 한다”(경제 과열 시 긴축해야 한다)는 유명한 비유를 남겼다. 경기 안정이 최대 덕목 중 하나인 연중의 정체성을 잘 보여준다.
다시 그린스펀의 입과 가방으로 돌아와서 그린스펀의 어록 중 가장 유명한 말 중 하나는 1987년 취임 후 가진 한 강연회에서 했던 “내가 한 말의 의미가 분명하게 이해된다면 그것은 당신이 내 말을 잘못 이해했기 때문이다”이라는 것이다.
자신도 그렇게 길게 재임할 줄 몰랐을 긴 기간 동안 그의 모호한 화법을 예고하는 말이 됐다.
그의 말을 두고 뉴욕타임스(NYT)와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유력 언론이 금리 조정 방향을 두고 정반대로 해석하기도 한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1996년 12월 증시 과열 상황에서 내놓은 ‘비이성적 과열(irrational exuberance)’이라는 말로 시장을 냉각시켰다.
그의 재임 기간 1991년 걸프전쟁,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 2000년 닷컴 버블 등의 위기가 찾아 올때마다 ‘베이비 스텝’으로도 불리는 0.25%포인트 금리 인하를 통해 시장을 회복시켰다.
그의 저금리와 양적 완화를 통한 시장 활성화로 ‘그린스펀 풋’이라는 용어가 나왔고 ‘시장 안정의 달인’이라는 뜻의 ‘마에스트로’란 별명을 얻었다.
당시 미국 뿐 아니라 세계 경제는 ‘그린스펀의 모호한 입’을 보며 경기의 방향과 난국 시기의 타개책을 읽었다.
그의 모호한 입과 함께 회자되던 것이 그의 가방이었다.
금리를 결정하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에 참석할 때 그의 가방을 보고 금리 결정 방향을 가늠하는 것이다.
여러 언론의 사진기자들이 FOMC 회의 당일 연준 건물로 들어가는 그린스펀의 서류가방을 앞다퉈 찍었다.
시장은 가방의 두께를 보고 금리 결정을 점쳤다. 가방이 얇으면 별다른 금리 변화가 없고, 반대로 두꺼우면 변화가 있을 것으로 추측했다.
금리를 변경하려면 그를 뒷받침하기 위한 많은 자료를 넣어야 하고 그러다보면 가방이 뚱뚱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란 논리 아닌 논리였다.
경제 매체 CNBC의 앵커는 ‘서류가방 지표’라며 가방 두께를 해석했다고 한다.
항상 가방 두께가 얇은 데도 ‘빅 스텝(0.5%포인트)’ 금리 인상이 이뤄지기도 하는 등 ‘가방 두께 지표’가 정교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퇴임 후 “가방 두께는 아내가 점심을 싸줬는지 아닌지에 달려 있었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지금도 미 연준 FOMC 회의 결과나 의장의 발언 한 마디에 뉴욕증시와 세계 경제가 큰 영향을 받는다.
하지만 그린스펀의 입과 가방을 주시하던 당시와 비교하면 차이점도 있다.
이는 연준 구성원이나 의장이 누구인가보다 미국과 미국 경제의 위상이 달라진 것이 큰 요인이라는 생각이다.
그린스펀 의장 재임 기간의 공과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분석들이 나와 있다. 그가 초호황기 미국 경제를 이끌었으나 저금리 기조로 한 체질이 결국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불러왔다는 것으로 요약될 듯 싶다.
그린스펀 시기의 미국은 미국이 냉전에서 소련을 제치고 유일 초강대국으로 발돋움한 시기다.
이 시기 미국은 군사적으로도 두 차례 이라크 전쟁(걸프 전쟁), 코소보 전쟁 등에서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미국은 경제적으로도 아직 건재했다. 그린스펀의 저금리는 세계 경제에 편입(2001년 세계무역기구 가입)되어 가던 중국산 저가 제품이 바탕이 됐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일이다.
중국은 2010년 일본을 제치고 세계 2위 경제 대국으로 부상해 그린스펀 재임 시기에는 아직 미국 경제와 경쟁하거나 비견할 때가 아니다.
하지만 지금은 미국의 위상은 그린스펀 시기와는 다르다. 트럼프 대통령이 두 번째로 취임해 미국이 구축했던 자유무역질서를 엉클어뜨리기 전에도 미국은 정치, 경제적으로 세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게 떨어졌다.
‘미국 우선’의 ‘트럼프 현상’이 트럼프가 만든 것이 아니라 트럼프를 통해 나타나고 있다는 말처럼 ‘우리가 알던 미국은 없다’는 식의 진단은 트럼프 등장 훨씬 이전부터 나타났다.
이제 연준이 중요하지만 연준 의장을 그가 누구이건 더 이상 ‘세계 경제 대통령’이라고 부르지 않는 것은 의장 개인이 아닌 그를 받치고 있는 미국의 지위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상당 기간 잊고 있었던 그린스펀 의장의 별세는 그린스펀 의장 재임 시기 최고조에 올랐던 ‘초강대국’ 미국의 위상이 어느 덧 서산에 해처럼 기울고 있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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