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S아트센터 '예술가들' 24일 개막…'플래닛' '미스트' '프리즘' 3편
슬라임위 걷고 안갯속 춤추고…물리적 제약을 예술적 가능성으로
무대는 무용수를 배려하지 않는다. 슬라임(점액)과 전분, 시야를 가리는 짙은 안개는 무용수의 신체를 극한으로 몰아넣는다. 벨기에·프랑스 출신 안무가 다미앵 잘레와 일본 시각예술가 코헤이 나와는 이러한 물리적 제약을 오히려 예술적 가능성으로 바꿔왔다.
두사람이 협업한 작품 세 편을 조명하는 '예술가들' 시리즈 개막을 앞두고, 22일 서울 강남구 GS타워에서 열린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GS아트센터는 오는 24일부터 28일까지 '플래닛[방랑자]'와 댄스 필름 '미스트'를 국내 초연하는 데 이어 쇼케이스 '프리즘'을 세계 최초로 선보인다.
이번 공연은 시각예술과 무용의 경계를 넘나들며 10여 년간 협업해 온 두 예술가의 작업 세계를 집약해 선보이는 자리다.
코헤이 나와는 "작품 안에는 조각, 무대 예술, 현대 무용 등의 요소가 혼재한다"며 "설명이 필요 없이 피부로 느끼고 직접 체험하는 것이 가장 좋다. 선입견 없이 봐주시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둘의 인연은 2013년 일본 아이치 트리엔날레에서 전시된 코헤이 나와의 '거품 Form'에서 시작됐다. 이후 '베셀 Vessel'(2016), '플래닛(방랑자)'(2021), '미스트 Mist'(2022), '미라지 Mirage'(2025)를 함께 작업했다.
이날 간담회에서는 코로나19 팬데믹이라는 물리적 단절이 오히려 매체의 확장을 끌어낸 과정이 공개됐다.
코헤이 나와는 '미스트'에 대해 "교토에 위치한 스튜디오 '샌드위치'에서 1년 반 동안 안개의 온도, 물방울의 크기, 성분을 미세하게 조절하며 바람의 흐름을 계산하는 실험을 거쳤다"고 말했다.
당초 네덜란드 댄스 시어터(NDT 1)와의 현장 공연을 기획했으나, 팬데믹으로 인한 극장 폐쇄로 영상으로 만들게 됐다.
이에 잘레는 "미스트는 안개와 신체가 연결되는, 굉장히 통제하기 어렵고 포착하기 힘든 순간을 담고 있다"며 "그래서 영화라는 매체를 사용해 특별한 순간을 우리가 포착하고 불멸성을 구했다는 점에서 매우 특별한 작품"이라고 힘줘 말했다.
그러면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스푸마토' 기법에서 영감을 받아 환생과 저승의 이미지를 구현했다"고 부연했다.
이번 간담회에서 가장 강조된 것은 '플래닛[방랑자]'가 무용수들에게 요구하는 극단적인 신체적 가혹함이다. 뉴질랜드, 필리핀, 덴마크, 모로코 등 세계 각지에서 모인 무용수들은 액체 상태의 재료 위에 발을 딛고 버텨야 한다.
잘레는 제목의 '플래닛'이 고대 그리스어로 방랑자를 뜻하는 '플라나오마이(planeomai)'에서 유래했다며, 일본의 신화집 '고지기(古事記)' 속 이승과 저승 사이의 '중간 세계'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했다.
나와 역시 무대를 미술관의 정적인 설치물과 명확히 구분했다. 그는 "한 달간 전시되는 미술관과 달리 무대에는 '시간축'이 존재한다"며, "조명이 바뀌고 안개나 슬라임 비가 내리는 등 실시간으로 변하는 상황 속에서 무용수들이 반응하는 것을 이끌어내는 고도의 긴장감 넘치는 작업"이라고 강조했다.
오는 28일 세계 초연되는 신작 '프리즘'의 구체적인 윤곽도 드러났다.
코헤이 나와가 25년 전 대학원생 시절 고안했던 작품을 모티브로 삼은 이 쇼케이스는, 관객이 공간을 자유롭게 이동하며 작품에 참여하는 360도 몰입형(이머시브) 형식으로 선보인다.
잘레는 "빛을 두 개로 나눠 하나의 신체를 바라보게 함으로써, 두 이미지 사이에 존재하는 실체를 통해 '현실이란 단지 해석일 뿐'이라는 메시지를 던진다"고 기획 의도를 설명했다.
또한 이 작품의 음악은 일본 영화계에서 다수의 상을 휩쓴 음악감독 하라 마리히코가 맡아 무대의 청각적 밀도를 높일 예정이다.
◎공감언론 뉴시스 dazzling@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