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디언 "브뤼셀발 ‘유럽 2031’ 시나리오, EU 기술 주권 논쟁 불붙여"
"미국이 첨단 AI 접근 막으면 유럽 경제·안보 자율성 흔들릴 수 있다"
영국 가디언은 20일(현지시간) EU 정책 논의가 집중되는 브뤼셀의 싱크탱크 인사들이 만든 ‘유럽 2031’ 시나리오가 미국의 첨단 AI 접근 제한 움직임과 맞물려 기술 주권 논쟁을 키우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 시나리오는 미국이 데이터센터에 막대한 돈을 쏟고 중국은 로봇 산업을 키우는 동안, EU가 AI 인프라 투자와 기업들의 AI 도입에서 뒤처져 경제 혼란과 사이버 공격, 포퓰리즘 확산에 휘말린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시나리오에서는 유럽 경제가 자체 AI 부재로 흔들린다. 유로화는 불안해지고, AI 기반 사이버 공격은 유럽 기업을 마비시킨다. 영국의 EU 탈퇴인 브렉시트가 오히려 나은 선택처럼 보이고, EU 해체 가능성까지 제기되는 상황도 그려진다.
이 시나리오가 주목받은 계기는 미국의 AI 접근 제한 움직임이었다. 미국 AI 기업 앤트로픽이 만든 첨단 AI 모델 ‘클로드 페이블’에 대해 미 정부가 외국인의 사용을 제한하면서, 작성자들은 미국이 첨단 AI 접근을 제한할 수 있다는 자신들의 전망이 일부 현실화됐다고 보고 있다.
가디언에 따르면 이 시나리오는 AI와 경제안보가 주요 의제로 다뤄진 주요 7개국(G7) 논의 기간에 EU 정책 결정권자들 사이에서 빠르게 공유됐다. 일부 유럽의회 의원들이 읽었고, 영국과 독일 당국자들이 참여한 비공식 정책 대화에서도 언급된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가디언은 이 시나리오가 불확실한 AI 전망과 이미 흔들린 투자 계획을 근거로 삼고 있다는 점도 지적했다. ‘유럽 2031’은 AI 주권 문제를 환기하는 경고이지만, 그대로 실현될 미래 예측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부 프로젝트는 이미 무산됐거나 실현 가능성에 의문이 제기됐다. 오픈AI와 엔비디아의 1000억 달러 거래는 지난 2월 사라졌고, 오픈AI와 오라클의 대형 합의도 실제 이행 가능성이 불투명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작성자들은 일부 투자 계획이 흔들렸다는 반론을 인정하면서도, 미국과 유럽의 AI 인프라 격차라는 큰 흐름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주장했다. 시나리오 작성에 참여한 AI 연구자 막시밀리안 네겔레는 “일부 AI 기업이 파산할 수 있고 과열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을 배제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시나리오 속 미국은 대규모 AI 인프라 건설에 막대한 자금을 투자하고, 유럽은 미온적인 투자 패키지를 내놓는 데 그친다. 데이터센터 사업자에게 대폭적인 규제 특례를 줘야 한다는 조언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몇 년 뒤 미국은 AI 모델을 돌리는 핵심 자원인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칩을 앞세워 세계 AI 연산 능력의 70%를 장악한다는 설정이다. 반면 유럽 기업들은 AI 도입에서 뒤처지며 경쟁력을 잃는다.
시나리오 속 EU는 뒤늦게 네덜란드 ASML을 협상 카드로 활용하려 한다. ASML은 AI 반도체 생산에 필요한 핵심 노광장비를 만드는 업체지만, 시나리오에서는 이 카드마저 너무 늦게 꺼낸 것으로 그려진다.
하지만 데이터센터 확대론도 반발을 부른다. 데이터센터는 경관을 해치고 빅테크를 지원하는 정책으로 비칠 수 있어 여론의 반발이 크다는 것이다. 이 시나리오를 주도한 브뤼셀 소재 단체 아크 재단이 자금 출처를 공개하지 않는다는 점도 논란거리다.
유럽 정치권 일부는 이 시나리오를 과장된 경고로 보면서도 문제의식 자체는 받아들이고 있다. 스페인 출신 유럽의회 의원 니콜라스 카사레스는 “그들이 언급한 일부는 일어날 수 있다고 본다”면서도 “문제에 주목하게 하려고 위기감을 다소 키운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카사레스 의원은 유럽이 미국 AI 기업을 위해 데이터센터 기반을 깔아주고도, 정작 첨단 AI 모델 사용권은 제한받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유럽이 “AI 경쟁에서 지지 않으려면 데이터센터를 많이 지어야 한다는 논리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가디언은 이번 논쟁의 핵심은 미국과 중국이 AI 인프라와 모델 접근권을 쥐었을 때 유럽이 경제·안보·정치적 자율성을 지킬 수 있느냐는 문제라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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