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시설 피격에 검은 연기…놀이터·슈퍼마켓 일상은 그대로
BBC "전쟁 멀다던 수도, 비정상이 새 일상 됐다"
주거지 피해에 8세 여아 사망…추가 드론 공격 우려도
BBC에 따르면 지난 18일 오전 모스크바 남동부 카포트냐 지역의 대형 정유시설이 우크라이나 드론 공격을 받았다. 시설 방향에서 피어오른 짙은 연기는 멀리서도 보였고, 검은 장막처럼 모스크바 스카이라인 위에 드리웠다.
눈에 띈 것은 화재 장면만이 아니었다. 정유시설 인근 연못가에서는 한 남성이 짙은 연기에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은 채 낚시를 계속했고, 맞은편 놀이터에서는 아이들이 그네를 탔다. 시민들은 평소와 다름없는 목요일처럼 슈퍼마켓을 오갔다.
BBC는 이 장면을 두고 “모스크바에서 무엇이 정상이고 비정상인지 다시 생각하게 됐다”고 전했다.
그동안 우크라이나 전쟁은 러시아 수도 시민들에게 먼 일처럼 느껴졌다. 많은 시민들은 전쟁을 자기 일상과 무관한 일처럼 여겨왔지만, 최근 1년 반 동안 모스크바에서도 러시아군 장성 암살과 드론 공격 소식이 이어졌다.
정유시설 맞은편 아파트에 사는 주민 슬라바는 BBC에 “완전히 놀란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큰 공격이 있을 줄은 몰랐다”며 “폭발음을 들었고, 자욱한 연기를 봤다. 보통 영화에서나 보던 장면이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주민 나데즈다는 “2차 세계대전 때도 우리 군인들은 먹을 것과 물이 부족한 상황에서 4년 만에 승리했다”며 “오늘날 우리는 필요한 자원을 모두 갖고 있는데도 이 전쟁은 계속되고 있다. 충격적”이라고 했다.
러시아 당국은 전쟁 장기화의 책임을 서방에 돌려왔다. 유럽 지도자들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가 키이우를 지원해 전쟁을 연장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모스크바가 공격받은 당일 푸틴 대통령은 드론 공격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크렘린의 뒤늦은 반응도 비슷했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 대변인은 러시아 피해보다 우크라이나 도시들이 입은 피해를 봐야 한다는 취지로 “우리 군의 타격 결과는 인상적이다. 이런 타격은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우크라이나의 러시아 도시 공격이 푸틴 대통령의 판단을 바꾸게 만들었다는 조짐은 아직 보이지 않는다. 다만 우크라이나의 장거리 타격, 특히 러시아 석유시설을 겨냥한 공격은 러시아 경제에 압박을 키우고 있다. 러시아 일부 지역에서는 휘발유 부족과 배급이 보도됐고, 주유소 가격도 오르고 있다.
모스크바에서는 이제 추가 드론 공격을 예상하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지난 18일 검은 연기를 올려다보던 한 여성은 BBC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며 “무엇을 할지는 우리 정부가 결정해야 한다. 우리는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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