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장암 투병 끝 눈 감아
1세대 한류 걸그룹 5인조 '서울시스터즈' 리더 출신
1974년 솔로 데뷔…'나는 몰라요' 등 히트곡 내
'복싱 세계 챔피언' 홍수환과 16년 만의 재결합 화제
투병 중 올해 3월 '가요무대' 출연하기도
20일 가요계와 박성서 대중음악 평론가 등에 따르면, 옥희는 이날 오후 8시40분께 경기 수원의 한 호스피스 병동에서 신장암으로 숨을 거뒀다. 고인은 그간 신장암과 폐암 수술을 받으며 투병 생활을 이어온 것으로 전해졌다.
6·25 전쟁 중이던 1953년 피란지 부산에서 태어난 고인은 음악적 DNA를 타고났다. 부친 김해선과 모친 이영애는 이북 시절부터 악극단에서 활동하던 가수로, 1·4 후퇴 때 부산으로 내려와 공연을 지속했다.
부모의 영향 속에서 자란 고인은 배화여중 3학년 시절 고모이자 명동 샤넬 의상실 디자이너였던 샤넬 김의 소개로 '당대 최고의 디바' 현미를 만나게 된다. 이를 계기로 미8군 쇼 공급업체인 화양의 오디션을 통과하며 연예계와 연을 맺었다.
1968년 매니저 옥후연의 눈에 띄어 5인조 여성 걸그룹 '서울시스터즈'의 리더로 발탁됐다. 당시 '키티 김(Kitty Kim)'이라는 예명으로 홍콩, 이란, 이라크 등 중동 지역을 거쳐 미국과 캐나다 등지에서 활약했다.
국내 솔로 활동은 1974년 귀국과 함께 시작됐다. 팝 위주로 활동하던 고인은 서정적인 가요로 과감히 변신을 시도했다.
파워풀한 가창력과 섬세한 감성을 동시에 증명한 고인은 데뷔 직후 발표한 첫 독집의 타이틀곡 '나는 몰라요'(김중순 작사·김희갑 작곡)로 그해 MBC '10대 가수'에 선정되는 기염을 토했다. 이어 '눈으로만 말해요'(1975), '아 그날이'(1976), '이웃사촌'(1977), '두 손을 잡아요'(1977) 등을 잇달아 히트시키며 70년대 가요계의 중심에 섰다.
파란만장했던 삶의 궤적도 대중의 큰 관심을 모았다. 1970년대 후반 복싱 세계 챔피언 출신 홍수환과의 교제로 세간을 들썩이게 했다. 1978년 그와의 사이에서 딸을 얻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결별하며 가수 활동을 잠시 중단했다.
재결합 이후 두 사람은 2000년 찬양 앨범을 공동 발매하고 자선 음악회 무대에 함께 오르는 등 변함없는 부부애를 과시했다. 2024년 옥희가 연 50주년 기념 디너 콘서트에 홍수환의 첫 세계 챔피언 등극 50주년을 기념한 사진전시회가 함께 열리기도 했다. 최근 고인이 투병하는 내내 홍수환이 곁을 지키며 간호한 것으로 알려졌다.
2000년대 들어서도 고인은 '소설 같은 사랑'(2003), '돈 때문에'(2007), '인생 열차'(2017) 등을 발표하며 청년 같은 음악적 열정을 불태웠다. 지난해 신장암 진단을 받기 1년 전인 2024년에 발표한 '고마운 사랑'과 음악 동인 예우회의 음반에 수록된 '인생 열차'는 고인의 유작이 됐다.
특히 투병 중이던 올해 3월 KBS 1TV '가요무대'에 출연해 이금희 '정열의 꽃'을 열창하는 등 마지막 순간까지 무대를 향한 의지를 꺾지 않았다.
고인은 홍수환과 슬하에 1남1녀를 뒀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다. 장례는 음악계에 기여한 공로를 기려 대한가수협회장으로 엄수된다.
◎공감언론 뉴시스 realpaper7@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