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크니는 왜 수영장을 그렸을까 [박현주 아트에세이 ㉕]

기사등록 2026/06/20 00:01:00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일

데이비드 호크니 ‘더 큰 첨벙’.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1964년, 영국 청년 데이비드 호크니는 로스앤젤레스로 갔다.

비와 안개, 회색 하늘에 익숙했던 그에게 캘리포니아의 햇빛은 거의 충격에 가까웠다.

하늘은 파랬고, 야자수는 높았으며, 수영장은 어디에나 있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그는 평생 물을 그리기 시작했다.

이상한 일이다.

수영장은 사각형이다.

집도 사각형이다.

야자수도 가만히 서 있다.

그런데 물만 움직인다.

물은 형태가 없다.

빛에 따라 달라지고, 바람에 따라 흔들리고, 사람이 뛰어들면 산산이 부서진다.

호크니는 바로 그 순간에 매혹됐다.

1967년작 '더 큰 첨벙(A Bigger Splash)'에는 사람이 없다.

정확히 말하면 사람은 이미 사라졌다.

남아 있는 것은 거대한 물보라뿐이다.

누군가 방금 뛰어들었다는 흔적.

존재는 사라졌는데 흔적은 남아 있다.

호크니는 그 찰나의 흔적을 그리기 위해 물보라를 그리는 데만 2주를 보냈다.

순간을 붙잡기 위해 시간을 사용한 것이다.

우리는 보이는 것을 본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정말 중요한 것은 대개 보이지 않는다.

사랑은 보이지 않는다.

시간도 보이지 않는다.

기억도 보이지 않는다.

이별도 보이지 않는다.

우리가 보는 것은 그것들이 남긴 흔적뿐이다.

물보라처럼.


데이비드 호크니 ‘예술가의 초상’. 2018년 크리스티 경매에서 8000만달러(약 911억원)에 낙찰됐다. *재판매 및 DB 금지



1972년작 '예술가의 초상(두 사람이 있는 수영장)'은 호크니 예술의 또 다른 정점이다.

수영장 속 한 남자는 물속을 유영하고 있고,
다른 한 남자는 수영장 가장자리에 서서 그를 바라본다.

둘은 같은 화면 안에 있지만 서로 다른 세계에 있다.

이 그림은 수영장을 그린 그림이 아니다.

어쩌면 관계의 거리감을 그린 그림이다.

사랑은 늘 가까움보다 보이지 않는 틈에서 먼저 시작되고, 먼저 끝나기 때문이다.

데이비드 호크니_The Atelier, March 17th 2009, 2009, 서울옥션 6월 경매, 추정가 3000만 원 ~ 8000만 원 *재판매 및 DB 금지


호크니는 평생 사람을 그렸고 풍경을 그렸고 꽃을 그렸다.

그러나 그가 진짜로 그리려 했던 것은 다른 것이었다.

그는 무엇을 그릴 것인가보다 어떻게 볼 것인가를 고민했다.

사진이 하나의 시점에 머무른다면, 그는 여러 시점을 이어 붙여 세상을 다시 보려 했다.

회화에 머물지 않고 사진 콜라주를 만들었고, 컴퓨터 드로잉과 아이패드 작업까지 받아들였다.

그에게 새로운 기술은 유행이 아니라 새로운 시선의 도구였다.

사람들은 그를 혁신적인 화가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의 진짜 혁신은 새로운 기계를 사용한 데 있지 않았다.

그는 끝까지 세상을 아름답게 보려 했다.

그것이 혁신이었다.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세계적인 미술품 경매사 크리스티(Christie's)가  런던에서 경매하는 데이비드 호크니의 작품 '이른 아침, 생트 막심'. 2022.09.02. pak7130@newsis.com


호크니는 풍경보다 그 안에 머무는 빛과 시간을 그렸다.

"세상을 바라보면 참으로 아름답다."

그가 남긴 이 말은 단순한 감상이 아니다.

평생을 통해 증명한 태도에 가깝다.

우리는 나이가 들수록 세상을 판단하는 데 익숙해진다.

그러나 호크니는 끝까지 바라보는 사람으로 남았다.

그가 마지막까지 그린 것은 수영장도, 꽃도, 풍경도 아니다.

어쩌면 그는 평생 눈에 보이지 않는 시간과 사랑,

그리고 삶의 기쁨을 그리고 있었는지 모른다.

예술은 결국

보이는 것을 그리는 일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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