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으로 펼쳐낸 수묵화, 미디어아트로 피어난 도원경…국립무용단 '몽유도원무'[객석에서]

기사등록 2026/06/11 21:21:34

몸짓과 미디어아트가 빚어낸 생생한 산수화

수묵화로 깨어난 한국춤의 새로운 확장성

12~14일 국립극장 달오름극장 공연


[서울=뉴시스]국립무용단 '몽유도원무' 공연 장면. (사진=국립극장 제공)
[서울=뉴시스] 최희정 기자 = 무대 위 화폭처럼 드리운 천막 뒤로 노란 조명이 스며든다. 그 너머로 어른거리는 무용수들의 실루엣은 꿈틀거리며 모였다 흩어지기를 반복한다. 마치 젖은 화선지 위로 번져나가는 먹물 같다. 스크린 위로 투사된 먹물 질감의 미디어아트와 무용수들의 맨몸이 만들어낸 입체적인 수묵화가 무대 위에서 완벽하게 오버랩된다.

11일 서울 중구 국립극장에서 국립무용단의 '몽유도원무' 프레스콜이 열렸다. 2022년 초연 당시 "전통과 현대의 만남을 한 차원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렸다"는 호평을 받았던 이 작품은 2024년 재연에 이어 올해 세 번째 무대를 선보인다.

'몽유도원무'는 조선시대 화가 안견의 '몽유도원도'를 모티브로, 고단한 현실을 지나 이상 세계인 도원에 이르는 여정을 오늘의 움직임으로 그린 작품이다. 차진엽 안무가는 한국 산세의 '굽이굽이' 이어지는 흐름을 몸짓 언어로 치환했다.

총 2막으로 구성된 작품 중 1막은 삶의 무게를 상징하는 봇짐을 짊어진 이들의 고단한 여정이다. 무용수들이 표현하는 것은 단순히 현란한 군무 뿐만이 아니다. 봇짐을 메고 정처 없이 걷다가 한 명이 대오에서 이탈해 홀로 춤을 춘다. 하지만 이 무용수는 곧이어 무리 속에 들어가 함께 어울린다. 개인의 고독과 연대의 서사가 흑백의 미장센(무대 위 배치) 안에서 교차하는 순간이다.

이번 삼연에서 가장 큰 변화 중 하나는 캐스팅이다. 초연 멤버들에 더해 국립무용단 '향연', '회오리'에서 활약한 황용천이 합류한 데 이어, 엠넷 '스테이지 파이터'로 주목받은 박준우가 객원으로 합류했다.

[서울=뉴시스]국립무용단 '몽유도원무' 공연 장면. (사진=국립극장 제공)
이날 차진엽 안무가는 "새로운 무용수의 합류로 그들의 신체 언어가 더해지며 장면이 다른 의미로 확장됐다"며 2026년 버전의 핵심 키워드로 '정성과 돌봄'을 꼽았다.

그는 "우리가 서로를 어떻게 돌보고, 내 삶과 춤을 얼마나 정성스럽게 담아낼 수 있을지 고민했다"며 "결국 이 작품이 말하는 것은 타인에 대한 관심과 공존"이라고 강조했다.

새로운 무용수들과의 호흡은 또 다른 궤적의 수묵화를 그려낸다. 무용수들의 맨몸뿐 아니라, 미디어아트 역시 스스로 호흡하는 산수화로 피어난다.

황선정 미디어아트 작가는 "미디어아트를 무대의 단순한 배경으로 소모하는 것을 극도로 경계했다"며 "그래픽 툴로 묘사한 것이 아니라 음악의 파동을 알고리즘으로 변환해 수묵 담채화 특유의 살아있는 운동성을 시각화했고, 무대 위에서 또 하나의 생명체이자 무용수처럼 존재하도록 만들었다"고 했다.

[서울=뉴시스]국립무용단 '몽유도원무' 공연 장면. (사진=국립극장 제공)
실제로 이번 공연에서는 피리 등 관악기 사운드가 새롭게 추가되며 청각적 레이어가 한층 두터워졌고, 이를 시각화하는 기술적 완성도도 높아졌다.

다만 융복합 예술이 직면한 현실적 한계도 드러났다. 당초 무대 위 영상은 무용수들의 군무나 개별 움직임, 음향 데이터에 실시간으로 반응하는 완벽한 라이브 미디어아트로 기획됐다. 그러나 공연 중 발생할 수 있는 시스템 오류나 블랙아웃을 우려해, 라이브가 아닌 사전 녹화된 영상을 틀어놓는 방식으로 진행된 점이 아쉬웠다. 황선정 작가는 수십 번의 리허설을 거쳐 무용수들의 타이밍에 맞춰 스크린에 구현했다고 설명했다.

1막이 기술과 맨몸이 부딪히는 흑백의 수묵화였다면, 2막은 생동하는 다채로운 풍경화로 전환된다. 고단한 짐짝을 벗어던진 이들이 도달한 도원경(桃源境)은 원초적인 생명력으로 꿈틀댄다.

흙냄새가 피어오를 듯한 무대 위, 한 남성이 망토를 펄럭이자 곁에 있던 이에게 나무를 닮은 연두색이 옮겨붙는다.

[서울=뉴시스]국립무용단 '몽유도원무' 공연 장면. (사진=국립극장 제공)
달팽이 패각 같은 거대한 흰색 장식을 등에 멘 여성이 유연하게 바닥을 기어 다니고, 곤충의 더듬이 같은 나뭇가지를 꽂은 이들이 기민하게 움직인다. 조명이 자주색으로 물들자 숲속의 새싹이 만개한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고, 황토색과 녹색 의상을 입은 무용수들이 마치 흙과 개구리처럼 무대를 박차고 뛰어오른다.

숲속을 거닐 듯한 다채로운 색채의 향연 속에서 역동하던 생명체들은 한바탕 일장춘몽처럼 스러진다. 이윽고 다시 무대엔 흑백의 수묵화 같은 실루엣만 남는다.

현실과 이상향을 넘나든 60분, 무용수들의 맨몸과 아슬아슬하게 통제된 미디어아트가 그려낸 이 거대한 몽유도원도는 관객에게 묵직한 여운을 남긴다.

아울러 전통과 현대의 결합을 넘어, 동시대 관객과 교감할 수 있도록 이끈 영리한 연출이 한국춤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다.

[서울=뉴시스]국립무용단 '몽유도원무' 공연 장면. (사진=국립극장 제공)
차 안무가는 "어릴 때부터 한국춤을 접하고 훈련해왔기에 내게 한국춤은 전혀 낯설지 않다"며 "결국 춤의 근간은 '몸의 이야기'이자 신체에 담긴 '개인의 언어'다. 훈련 방식의 차이일 뿐, 결국 몸이라는 본질적인 측면에서 장르의 경계는 다르지 않다"고 했다.

국립무용단의 대표작 '몽유도원무'는 오는 12일부터 14일까지 국립극장 달오름극장 무대에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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