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성범죄, 플랫폼 자율규제는 한계"…'사전예방' 법제화 한목소리

기사등록 2026/06/10 13:52:19 최종수정 2026/06/10 14:10:25

딥페이크·AI 진화로 아동·청소년 대상 디지털 성범죄 피해 매년 증가

설계 단계부터 안전 강제하는 '구조 중심' 규제·컨트롤타워 등 시급

[서울=뉴시스]윤현성 기자 = "디지털 성범죄의 온상이 된 온라인 플랫폼의 자율성에만 의존하는 시대는 끝났습니다. 이제는 사업자가 사전 예방의 책임을 직접 지도록 규제 구조를 완전히 바꿔야 합니다."

디지털 플랫폼을 매개로 한 아동·청소년 대상 성착취 범죄가 날로 저연령화되는 가운데, 사후 수습 중심인 현행 규제 체계를 플랫폼 설계 단계부터 안전을 강제하는 '구조 중심'으로 뜯어 고쳐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10일 국회에서 김한규·황정아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한국여성변호사회 주최로 열린 '아동·청소년 디지털 성범죄 대응체계 개선 방안 모색 토론회'에서는 정부와 사법계, 시민단체 등 관계 전문가들이 모여 플랫폼 사업자의 법적 책임을 강화하기 위한 대안을 논의했다.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매년 증가세…'딥페이크' 피해 비중 절반 달해

이날 토론회의 핵심 주제가 '채팅에서 시작되는 성착취 범죄'일 만큼 최근 아동·청소년 디지털 성범죄의 최초 유입 경로는 온라인 플랫폼에 집중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김효정 중앙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 삭제지원팀장은 "지난해 센터에서 지원한 전체 피해자 수는 1만637명으로 매년 증가세에 있다"며 "이 중 10대 이하 피해자가 28.7%인 3052명을 기록해 처음으로 3000명을 돌파했다"고 밝혔다. 특히 10세 미만 아동 피해도 2024년 11명에서 2025년 20명으로 급증했다.

김 팀장의 분석에 따르면 10대 이하 피해자는 '합성편집(딥페이크)' 피해 비중이 46.3%로 가장 높았다. 가해자들은 인스타그램, X, 틱톡 등 SNS의 익명성과 다계정 기능을 악용해 아동의 일상 사진을 수집하며 타깃을 물색한다. 이후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이나 라인 등 메신저 플랫폼으로 이동해 대화를 이어가며 몸캠피싱을 유도하는 식이다.

특히 아동·청소년 피해자는 사실이 알려질까 두려워 타인에 의해 뒤늦게 인지(47.5%)하는 경우가 많다. 이로 인해 영상이 이미 수백개로 확산된 뒤에야 센터를 찾는 지원 공백이 발생한다.

김 팀장은 "사용자 신고에만 의존할 것이 아니라 플랫폼 사업자가 상시 탐지와 가림 처리 등 차단 조치를 책임지는 구조로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상 대화에서 성착취로 이어지는 온라인 그루밍 범죄…단발성 접근은 '사각지대'

법조계 역시 사후 처벌과 자율규제 중심인 현행 법제가 플랫폼 내부에서 벌어지는 지능적인 온라인 그루밍(성적 길들이기) 범죄를 차단하지 못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한국여성변호사회 아동청소년지원특별위원회의 신수경 변호사는 "아동·청소년 대상 온라인 성착취 범행 중 온라인 그루밍이 차지하는 비율은 전체의 40%에 달한다. 여타 피해 유형에도 그루밍 행위가 선행·병존하는 양상이 광범위하게 확인된다"며 "그루밍 범죄의 특성을 고려하면 사후적 형사처벌만으로는 피해 예방 및 확산 방지에 한계가 있다"고 분석했다.

온라인 그루밍 범죄는 외견상 아동이 동의했거나 친밀한 관계처럼 보이는 특성 탓에 폭행·협박을 요건으로 하는 기존 형사법 체계로는 가해자를 처벌하기 어려운 사례가 발생하는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신 변호사는 현행법의 실무적 맹점도 꼬집었다. 온라인그루밍법으로 불리는 아동·청소년 성보호에 관한 법률 제15조의2가 2021년 마련되긴 했으나, '지속적이고 반복적인' 행위를 범죄의 구성요건으로 두고 있어 단발적 그루밍 행위에 대한 처벌 공백이 있다는 것이다.

신 변호사는 온라인 그루밍의 1회성 행위만으로도 처벌이 가능하도록 지속성·반복성 요건을 법령에서 삭제하고, 아동·청소년의 플랫폼 접근 환경에 대한 관리·감독 자체를 강화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에 대해서는 "현행 법은 이용자 수나 매출액 등 일정 규모 이상의 사업자에게만 청소년 보호 책임자 지정 의무가 있는데, 성착취 유인 정보는 플랫폼 규모와 무관하게 유통되는 만큼 대상 확대를 검토해야 한다"며 "또 그간 축적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온라인 플랫폼 모니터링 및 신고를 24시간 자동화하는 AI 기반 탐지 시스템 개발도 적극 추진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서울=뉴시스]10일 국회에서 김한규·황정아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한국여성변호사회 주최로 열린 '아동·청소년 디지털 성범죄 대응체계 개선 방안 모색 토론회'가 진행되고 있다. (사진=윤현성 기자)
◆"영국·호주처럼 '사전예방 의무' 지우고 '안전 컨트롤타워' 세워야"

글로벌 유통 환경의 변화와 비교했을 때 국내 플랫폼 규제 법제가 허술한 측면이 크다는 분석도 제기됐다.

정연주 한국여성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미국 실종학대아동범죄센터(NCMEC) 사이버팁라인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2024년 신고된 6299만개의 파일 중 온라인 사업자가 제출한 이미지의 44%, 동영상의 25%만이 처음으로 게시된 고유 파일이었고 나머지는 모두 중복·재유포였다"며 디지털 공간의 가공할 복제력을 설명했다.

이와 함께 생성형 AI 관련 신고도 1년 만에 4700건(2023년)에서 6만7000건(2024년)으로 폭증해 위험성을 가중시키고 있다.

정 부연구위원은 현행 대응체계의 맹점으로 플랫폼의 '의무 연계 부재'를 꼽았다. 플랫폼이 자체적으로 성착취물을 발견하거나 플랫폼에만 신고한 경우, 내부 조치에만 머무를 뿐 경찰이나 피해지원 전문기관으로 정보가 연계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 현행 전기통신사업법 등 기존 규제는 플랫폼 내 불법촬영물 등이 '신고'되거나 '발견'된 이후의 사후 조치에 치중되어 있다는 점도 지적했다.

그는 사후 삭제 중심의 규제에서 플랫폼 설계 단계부터 아동 보호를 고려하게 하는 '구조 중심 규제'로의 패러다임 전환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대표적 사례가 영국과 호주, 유럽연합(EU)이다. 정 부연구위원은 플랫폼에 아동 보호 법적 의무를 부과하고 규제기관(Ofcom)이 감독하는 '영국 온라인 안전법(OSA)', 장관의 온라인 안전 기대기준(BOSE)을 통해 합리적 조치를 요구하는 '호주 온라인 안전법', 그리고 예방적 안전조치를 포괄적으로 요구하는 'EU 디지털서비스법(DSA)' 등을 벤치마킹 사례로 들었다.

그는 "단순 투명성 보고서 제출을 넘어 플랫폼의 기술 조치 수준을 비교·평가하고 제재할 수 있는 '온라인 안전 컨트롤타워'가 구축되어야 한다"며 "국내외 플랫폼을 모두 포괄하는 한국형 온라인 안전 대응체계가 구축돼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업계에서는 기술 진화 속도에 맞춰 규제의 틀을 사후 수습에서 사전 차단으로 진화시켜 나가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국회와 정부가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디지털 성범죄 방지를 위한 플랫폼 사업자들의 의무 강화 과제를 향후 입법에 어떻게 반영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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