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송비·단체교섭권 팽행선…해법 못 찾는 노사
타설 일정 조정·야간 작업…현장 ‘버티기’ 돌입
반복되는 운송 갈등…구조 개선 필요성 제기
[서울=뉴시스] 박성환 기자 = "건설 현장을 볼모로 매년 반복되는 휴업과 협상, 운반비 인상이 이어지고 있어요."
수도권 레미콘 운송 기사들이 운송비 인상과 단체교섭권을 요구하며 전면 휴업에 돌입한 지 이틀째인 9일,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이번 사태가 장기화될 경우 공기 지연과 원가 부담 확대가 불가피하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어 "해마다 같은 방식의 휴업과 협상이 반복되는 데다 요구 수위까지 높아지고 있다"며 "일선 현장에서는 해도 해도 너무한 것 아니냐는 반응까지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전국레미콘운송노동조합(전운련)이 서울·경기·인천 등 수도권에서 운송 단가 인상과 통일 교섭 방식 도입을 요구하며 전면 휴업에 들어가자 건설업계의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원자재 가격과 인건비 상승, 경기 침체와 고금리 등 복합 악재로 수익성이 악화된 상황에서 레미콘 수급마저 차질을 빚을 경우 공기 지연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급등한 공사비로 갈등이 커진 상황에서 추가 비용 부담까지 더해질 경우 분쟁이 한층 격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레미콘 제조업계도 난처한 입장이다. 수도권에 등록된 레미콘 믹서트럭 약 1만1700대 중 8300여대가 운송노조에 가입돼 있어 사실상 다른 운송 수단을 확보하기 어려운 구조다. 운송 기사 의존도가 높은 만큼 출하 차질이 장기화될 경우 매출 감소는 물론 거래처 신뢰도 하락까지 우려해야 한다. 일부 업체들이 비노조 차량 확보에 나서고 있지만 물량을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평가다.
한 레미콘 제조사 관계자는 "운송노조가 운송 거부에 나선 이후 출하가 원활히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믹서트럭 확보가 어려워 발주 물량이 들어와도 실제 생산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수도권 레미콘 운송 기사들은 운송비 인상과 단체교섭권을 요구하며 무기한 휴업에 들어간 상태다. 전운련은 고용노동부로부터 설립필증을 교부받아 노동조합으로서 지위를 인정받았다며 단체교섭을 요구하고 있다. 반면 레미콘 제조사 측은 믹서트럭 운송 기사를 개별 사업자로 보고 교섭에 응하지 않고 있다.
건설업계는 이번 파업 사태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레미콘 수급이 제때 이뤄지지 않으면 건물 골조 공사가 중단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각 현장에 레미콘 타설 일정을 약 일주일가량 조정하라는 지침을 전달했다"며 "레미콘은 단기간에 거래처를 변경하기 어려운 만큼 협상 추이를 면밀히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건설사 관계자는 "현장별로 타설 계획을 유동적으로 조정하며 대응하고 있다"며 "레미콘 수급은 대체가 쉽지 않은 만큼 협상 결과에 따라 공정 차질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주요 협력사와 긴밀히 소통하고 있다"고 전했다.
일선 현장에서는 레미콘 물량 확보를 위해 타설 일정을 야간이나 주말로 분산하는 등 자구책을 마련하고 있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체 운송 수단 확보 역시 현실적으로 쉽지 않아 협상 결과에 따라 정상화 시점이 좌우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정부의 대응 여부도 변수로 꼽힌다. 사태가 장기화될 경우 건설 경기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관계 부처가 중재에 나설 가능성도 제기된다. 다만 노사 간 입장 차가 큰 상황이어서 단기간 내 해법을 찾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반복되는 운송 갈등의 근본 원인으로 불안정한 계약 구조와 교섭 체계 부재가 원인이라는 게 건설업계의 공통된 설명이다. 한 대형건설사 관계자는 "운송 기사들의 법적 지위와 교섭 방식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마련되지 않는 한 유사한 갈등이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며 "제도적 보완과 함께 업계 전반의 구조 개선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레미콘은 건설 공정의 출발점이자 핵심 자재인 만큼 공급 차질이 장기화하면 건설산업 전반에 미치는 영향이 클 수밖에 없다"며 "현장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라도 조속한 협상 타결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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