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하이닉스 '시총 1조 달러' 폭등에도 원·달러 환율 1500원 돌파
외국인 '비중 조절' 위해 790억 달러 매도…해외에 달러 묶어둔 기업들
석유국 '페트로 달러' 닮은 꼴…번 돈 원화로 안 바꿔 환율 방어 안 돼
[서울=뉴시스]이기주 인턴 기자 = 인공지능(AI) 열풍에 힘입어 우리나라 반도체 기업들이 사상급 실적을 내고 있지만, 정작 원화 가치는 달러 대비 금융위기 수준까지 떨어지며 시장의 의문이 커지고 있다.
지난 29일(현지 시간) 영국 파이낸셜 타임즈(FT)에 따르면 원화는 올해 들어 달러 대비 4% 하락했다. 아시아 주요 통화 가운데 가장 부진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 원·달러 환율은 달러당 1500원 선까지 치솟았다. 2008~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이는 한국 경제의 기초체력(펀더멘털)과는 엇갈리는 흐름이다. 한국은 미국 AI 기업들의 메모리 반도체 수요 급증에 힘입어 올해 1분기 738억 달러 규모의 경상수지 흑자를 기록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순이익도 각각 283억 달러, 224억 달러에 달했다.
반도체 호황으로 주가도 폭등했다. 삼성전자 주가는 지난 1년간 400% 이상 상승했고 SK하이닉스는 970% 가까이 뛰었다. 두 회사 모두 시가총액 1조 달러 수준에 올라섰다.
미국 외교협회(CFR)의 브래드 세처 선임연구원은 FT에 "반도체 수요 급증의 최대 수혜국 중 하나의 통화가 위기 국면 수준의 약세를 보이고 있다는 점은 근본적인 수수께끼"라고 말했다.
시장에서는 원화 약세의 배경으로 외국인 투자자들의 차익실현 움직임과 반도체 기업들의 달러 보유 확대를 지목하고 있다. 실제로 외국인 투자자들은 올해 한국 증시에서 790억달러 규모를 순매도한 것으로 나타났다.
RBC캐피털마켓의 아시아 거시전략 책임자 아바스 케슈바니는 "코스피가 지난해 10월 이후 거의 두 배 가까이 상승했다"며 "펀드매니저들이 특정 국가와 종목 비중이 지나치게 커지는 것을 피하기 위해 한국 주식을 매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반도체 기업들이 벌어들인 달러를 국내로 들여오지 않고 해외에 그대로 보유하는 점도 원화 약세 요인으로 꼽힌다. 일반적으로 수출기업들이 해외 수익을 원화로 환전하면 원화 가치가 올라간다. 하지만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은 글로벌 사업 확대를 위해 외화 보유를 늘리고 있다.
세처 연구원은 이를 'D램 달러(DRam dollars)' 현상이라고 표현했다. 산유국들이 원유 수출로 벌어들인 달러를 해외 자산에 재투자하는 '페트로달러'처럼, 한국 역시 반도체 수출로 벌어들인 달러를 해외에 재투자하고 있다는 의미다.
전문가들은 중동 분쟁에 따른 국제유가 상승과 엔화 약세 역시 원화 가치 하락에 부담을 주고 있다고 분석했다. 다만 시장 일각에서는 현재 원화 가치가 경제 펀더멘털 대비 지나치게 낮아졌다는 평가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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