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노사, 총파업 직전 극적으로 잠정합의
AI 호황에 초과이익 배분 논의 사회적 쟁점화로
양대노총 "기업 성과, 원청 내부에 머물러선 안 돼"
전문가들, 배분 기준 제도화·기업 자율 두고 견해차
[서울=뉴시스] 고홍주 기자 = 삼성전자 노사가 총파업을 불과 1시간여 앞두고 갈등을 봉합하는 데 성공했지만, 인공지능(AI) 시대 기업에 집중될 초과이익을 누구에게 어떻게 배분할 것인지를 둘러싼 논의는 본격화하고 있다.
특히 고용노동부가 이번 사태 마무리 이후 초과이익 배분 방식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추진하겠다고 밝히면서, 성과급 배분 문제는 개별 기업의 노사 갈등을 넘어 사회적 쟁점으로 떠오르는 모습이다.
26일 노동부에 따르면 삼성전자 노사는 지난 20일 경기 수원시 경기고용노동지청에서 김영훈 노동부 장관의 지원 아래 6시간여 동안 막판 교섭을 벌인 끝에 잠정 합의안을 도출했다.
핵심 쟁점은 초과이익성과급(OPI) 배분 방식이었다. OPI는 삼성전자가 매년 1월 지급하는 가장 큰 규모의 성과급으로, 전년도 경제적 부가가치(EVA)의 20%에 해당하는 재원을 개인 연봉의 최대 50%까지 지급하는 제도다.
올해 지급된 2025년도분 OPI는 반도체를 담당하는 디바이스솔루션(DS) 부문이 연봉의 47%, 디바이스경험(DX) 부문 모바일경험(MX) 사업부가 50%로 책정됐다. 반면 영상디스플레이·생활가전(VD·DA) 사업부는 12%에 그치는 등 사업부별 격차가 컸다.
노조는 사업부별 성과급 격차와 산정 기준의 불투명성을 문제 삼으며 OPI 산정 기준 공개, 상한 폐지, 영업이익 기준 배분 등을 요구해왔다. 반면 사측은 적자 사업부에도 대규모 성과급을 지급할 경우 '성과 있는 곳에 보상'이라는 경영 원칙이 흔들릴 수 있다며 반대해왔다.
노사는 결국 적자사업부에 대한 성과급 배분 방식을 1년간 유예하는 방식으로 잠정 합의했다. 또 사업 성과의 10.5%를 재원으로 하는 특별경영성과급을 신설하고, 이를 자사주로 지급하는 내용이 담겼다. 당장 총파업은 막았지만, 영업이익 연동 성과급 요구와 사업부별 성과 배분 기준은 향후 다시 쟁점화할 가능성이 크다.
◆AI·반도체 호황에 커진 초과이익 논쟁…사회적 논의 착수 시사
이번 사태는 삼성전자 내부 성과급 갈등을 넘어 사회적 쟁점으로 확산되고 있다. AI 확산과 반도체 슈퍼사이클로 초과이익 규모가 과거와 달리 천문학적 단위를 기록하면서, 성과급이 수천만원 단위를 넘어 억대까지 거론되고 있기 때문이다.
기업 이익이 노동자 보상과 주주 환원, 미래 투자, 협력업체·사회적 환원 사이에서 어떻게 배분돼야 하는지도 쟁점이 됐다.
특히 AI 확산으로 노동 대체와 생산성 향상이 동시에 진행되면서, 기술혁신으로 발생한 부가가치를 누구에게 어떻게 나눌 것인지가 새로운 노사관계 의제로 떠오르고 있다.
노동계도 성과 배분 논의를 원청 내부에만 한정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은 삼성전자 노사 합의 이후 논평을 통해 "대기업의 성과는 원청 내부에만 머물러서는 안 되며 삼성전자의 성장과 생산은 수많은 협력업체와 노동자들이 함께 만든 결과"라고 밝혔다.
이어 "협력업체 노동자들에게도 성과의 과실이 공정하게 배분될 수 있도록 납품단가 구조 개선, 기술·생산 이익 공유 등 산업 생태계 전반을 혁신하는 실질적인 조치가 뒤따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도 같은 날 성명을 통해 "성과의 독식은 있을 수 없으며, 이번 타결의 성과는 반드시 하청 노동자의 처우 개선과 지역사회 환원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삼성이 거둔 세계적 성과는 대기업 정규직만의 전유물이 아니다"라며 "위험과 열악함을 온몸으로 버텨낸 하청·협력업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노동, 그리고 지역사회의 인프라가 결합한 '사회적 총노동'의 결실"이라고 주장했다.
정부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기업의 이익 배분 방식과 교섭 구조에 대한 사회적 논의에 착수할 뜻을 밝혔다.
김영훈 노동부 장관은 21일 "삼성전자 문제는 우리 사회가 한 번은 겪어야 할 성장통"이라며 "새로운 기술 혁신이 가져오는 많은 부가가치를 사회적으로 어떻게 재분배할 것인지 고민하는 계기가 되도록 사회적 대화를 빠르게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권창준 노동부 차관도 앞서 국회에서 삼성전자 사태와 관련해 "향후 기업의 이익을 어떻게 배분할 것인지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고, 현재 교섭 구조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고 언급한 바 있다.
◆전문가들 의견은 갈려…"사회적 기준 필요" vs "일률 배분 신중"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초과이익 배분 논의의 필요성에는 공감하면서도, 이를 어떤 방식으로 풀어야 하는지를 두고 시각이 엇갈린다.
김성희 산업노동정책연구소 소장은 "초과이익 배분을 기업 내부만의 문제로 볼 수 없다"며 "성과 배분에 대한 폭넓은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고 했다.
김 소장은 "반도체 공정이라는 게 사회적 자원을 굉장히 많이 쓰고 있는 만큼, (초과이익은) 경영자와 직원들만의 공이 아니다"라며 "예전에는 몇천만원 단위였던 성과급이 이제 몇억, 몇십억원 단위가 되는 등 엄청난 초과이윤이 나오는 만큼 어떻게 사회적으로 기여할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제도화 필요성도 언급했다. 그는 "제도화가 되지 않으면 아무도 따르지 않는다"며 "한 기업만의 문제가 아니라 일반화할 수 있는 기준점이 있어야 다른 기업도 이를 따르기 쉬울 수 있다"고 말했다.
반면 초과이익 배분 문제를 노사정 차원의 제도화된 분배 구조로 접근하는 데는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윤동열 건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초과이익 배분 문제를 노사정 차원에서 제도화된 분배 구조로 접근하는 건 신중할 필요가 있다"며 "기업의 영업이익은 근로자 보상뿐만 아니라 미래 투자, 연구개발, 글로벌 경쟁력, 주주 환원 등 다양한 목적으로 사용되는 자원"이라고 말했다.
특히 "대기업의 초과이익에 대해서 원하청 간 격차 완화나 공급망 안정을 위해 성과를 공유할 필요성은 분명히 존재한다"면서도 "노사정이 일률적으로 정하는 방식보다는 기업의 이사회나 경영진이 투자 계획, 재무 상황, 산업 전망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책임 있게 판단하는 구조가 돼야 한다"고 했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초과이익 배분을 사회적 합의로 일률적으로 정할 문제라기보다는 원청의 '사회적 책임' 문제로 봐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박 교수는 "이 사안은 사회적 논의를 할 게 아니라 기업이 결정할 문제”라며 "협력업체의 노동 인권 문제나 처우 개선은 ESG 경영에서 강조하는 사회적 책임에 포함되는 것이기 때문에 원청이 당연히 해야 할 사회적 책임이라는 점을 계속 강조하면 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사회적 책임을 제도화한다면 규제보다는 '인센티브' 형태로 접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했다.
박 교수는 "협력업체 근로자들의 처우 개선과 생산성 향상을 위한 투자는 미래에 대한 투자"라며 "초과이익을 종업원들에게 고정적으로 성과급으로 주고 한탕주의로 끝낼 것이 아니라 이런 데 써야 한다는 사회적 여론을 환기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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