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 "군사개입 명분 쌓기"…美 "국가안보 위협"
정전·연료난 속 반정부 시위 확산…중러도 美 압박 비판
영국 BBC는 22일(현지시간) 미국과 쿠바의 관계가 최근 몇 주 사이 급격히 악화하고 있다며, 미국이 쿠바를 국가안보 위협으로 규정하고 석유 봉쇄와 제재, 전직 지도자 기소를 잇달아 꺼내 들었다고 보도했다.
쿠바는 수개월째 이어진 대규모 정전과 식량·연료·의약품 부족으로 병원과 학교 운영까지 흔들리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이 쿠바행 석유 선적까지 막으면서, 압박의 목표가 단순 제재를 넘어 쿠바 체제 흔들기에 있는 것 아니냐는 의심이 커지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백악관 복귀 이후 쿠바 지도부 교체 의지를 공개적으로 드러내 왔다. 그는 쿠바가 “무너질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고, 지난 3월에는 쿠바가 “깊은 곤경에 빠졌다”며 “우호적 인수” 가능성까지 거론했다.
미국이 군사개입 계획을 공식 발표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쿠바는 카리브해 일대의 미군 감시 활동 증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최근 미군 항공기들이 쿠바 인근에서 비행 위치를 항공기 추적 사이트에 공개한 것을 두고, 미국이 쿠바에 압박 신호를 보내려는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미국 매체 액시오스는 기밀 정보를 인용해 쿠바가 드론 300대를 보유하고 있으며, 관타나모만과 플로리다주 키웨스트, 미 해군 함정 등 인근 미국 목표물 타격을 논의했다고 보도했다. 브루노 로드리게스 쿠바 외무장관은 쿠바가 “전쟁을 위협하지도, 원하지도 않는다”며 미국이 군사개입을 정당화하기 위해 “조작된 사건”을 만들고 있다고 비난했다.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장관은 외교적 해법을 선호한다면서도 쿠바를 “국가안보 위협”으로 규정하고 평화적 합의 가능성이 “높지 않다”고 말했다.
미국의 기소는 1996년 2월 쿠바 전투기가 마이애미의 쿠바 망명자 단체가 소유한 소형 민간 항공기 2대를 격추한 사건을 겨냥한다. 이 사건으로 탑승자 4명이 숨졌고, 사망자 가운데 3명은 미국 시민이었다. 당시 라울 카스트로는 쿠바군 장관이자 피델 카스트로 정권의 핵심 실세였다.
미국은 쿠바가 국제수역 상공의 민간 항공기를 불법 공격했다고 주장해 왔다. 반면 쿠바는 이 단체가 반복적으로 영공을 침범해 국가안보를 위협했다고 반박했다. 미국은 이번 주 라울 카스트로와 다른 5명을 미국인 살해 공모, 살인, 미국 항공기 파괴 등 혐의로 기소했으며, 유죄가 인정되면 라울 카스트로는 종신형이나 사형에 처해질 수 있다. 미겔 디아스카넬 쿠바 대통령은 이번 기소가 “쿠바에 대한 군사적 침략”을 정당화하려는 조치라고 주장했다.
미국의 석유 봉쇄와 제재는 이미 쿠바 민생을 강하게 흔들고 있다. 쿠바는 만성적인 연료 부족으로 수개월째 대규모 정전을 겪고 있으며, 식량과 의약품 부족도 심해지고 있다. 병원은 정상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고, 학교와 정부 기관도 문을 닫아야 하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BBC에 따르면 쿠바에 석유와 연료를 공급해온 베네수엘라와 멕시코는 지난 1월 이후 공급을 대부분 중단했다. 미국은 쿠바로 향하던 석유 선적을 여러 차례 압류했으며, 봉쇄 이후 쿠바에 도착한 러시아 유조선은 1척에 그쳤다.
미국은 이달 쿠바 고위 관리들에게 추가 제재도 부과했다. 인권침해나 부패 혐의를 이유로 쿠바 에너지·국방·금융·안보 부문 관계자들을 제재 대상으로 삼았다. 동시에 미국은 1억달러 규모의 지원을 제안했지만, 지원금은 쿠바 정부가 아닌 가톨릭교회와 독립 인도주의 단체를 통해 배분돼야 한다는 조건을 달았다. 쿠바 외무장관은 미국이 쿠바를 돕는 가장 좋은 방법은 봉쇄를 해제하는 것이라고 맞섰다.
쿠바 정부는 미국이 쿠바 국민에게 “집단 처벌”을 가하고 있다며 봉쇄 중단을 요구하고 있다. 로드리게스 장관도 미국이 쿠바 국민을 상대로 “무자비한 경제전쟁”을 벌이고, 궁극적으로 군사공격을 정당화하려 한다고 주장했다.
쿠바의 우방인 중국과 러시아도 미국을 비판했다. 중국 외교부는 미국이 쿠바를 상대로 “강압”과 “위협”을 중단해야 한다고 촉구했고, 크렘린궁은 미국이 쿠바에 가하는 압박이 “폭력에 가깝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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