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가는 행인을 친구로 착각"…'안면 과친숙증' 英 50대 여성

기사등록 2026/05/20 20:28:38 최종수정 2026/05/20 21:02:23
[서울=뉴시스] 처음 보는 낯선 사람을 지인으로 착각하는 희귀 뇌 질환인 '안면 과친숙증(HFF)'을 앓던 제니 패리(54)가 질환을 극복하고 사육사로서 제2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사진=유토이미지)

[서울=뉴시스]이기주 인턴 기자 = 마주치는 모든 낯선 사람을 절친한 지인으로 착각하게 만드는 희귀 뇌 질환을 극복한 영국 여성의 사연이 화제를 모으고 있다.

지난 19일(현지시각) 더 미러 등 외신에 따르면 영국 노스요크셔주 스카버러에 거주하는 제니 패리(54)는 길거리를 걷거나 카페, 영화관 등 상점을 방문할 때마다 마주치는 모든 이들의 얼굴을 알아본다는 강렬한 느낌에 휩싸인다. 이는 낯선 이들이 마치 친한 친구처럼 느껴지는 극히 희귀한 신경학적 장애인 '안면 과친숙증(HFF, Hyperfamiliarity for faces)' 때문이다.

제니의 증상은 지난 2019년 가을, 딸과 산책하던 중 겪은 극심한 편두통 이후 시작됐다. 두통이 가라앉은 바로 다음 날부터 그녀의 뇌는 처음 보는 사람들을 향해 가짜 기억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길에서 마주친 행인을 보며 '과거에 함께 일했거나, 식사를 했거나, 휴가를 같이 다녀온 사이'라고 믿게 되는 식이다.

이로 인한 해프닝과 상처도 많았다. 한 번은 길에서 만난 여성을 과거 서커스 안무가 시절 동료로 확신해 다가갔으나, 상대방이 퉁명스러운 반응을 보여 큰 수치심을 느끼기도 했다. 관광지 리셉션 데스크에서 일할 때는 모든 입장객이 다 아는 사람처럼 보여 그냥 통과시키는 바람에 회사에 손해를 입히기도 했다.

이 질환의 원인을 밝히기 위해 미국 다트머스 대학교와 영국 요크 대학교 연구진이 공동 연구에 나섰다. 연구진은 제니에게 한 번도 본 적 없는 드라마 '왕좌의 게임' 영상을 보여주며 뇌 활동을 추적했다. 그 결과, 처음 보는 얼굴임에도 불구하고 기억을 담당하는 뇌 영역인 '해마'가 해당 드라마의 열혈 팬들과 똑같이 활성화되는 모습을 보였다. 시각 영역과 내측 측두엽을 연결하는 통로가 과잉 반응을 일으키며 끊임없이 가짜 친숙함을 찍어내고 있었던 것이다.

제니는 주저앉는 대신 삶의 방식을 바꾸기로 결심했다. 사람의 얼굴 대신 반지, 머리카락 길이, 동반한 반려견 등의 단서로 지인을 식별하는 훈련을 시작했다. 친구들에게는 멀리서 알아볼 수 있도록 밝은 옷을 입거나 격렬하게 손을 흔들어 달라고 부탁했다.

현재 필리 동물원에서 사육사로 일하는 제니는 이제 이 질환을 관람객 앞에서의 발표를 쉽게 해주는 자신만의 '초능력'으로 부른다. 제니는 "관람객들을 한 번 훑어보면 마치 친구들 앞에서 이야기하는 것 같아 대인기피증이 사라진다"며 "이 질환으로 스스로를 잃어버리는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하지만, 나는 스스로를 통제하며 가능한 한 평범하고 긍정적으로 살아갈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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