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 죽기 싫다" 비명…테이블 밑 숨은 워싱턴 엘리트들, 그날의 재구성

기사등록 2026/04/27 16:18:56 최종수정 2026/04/27 16:42:08

트럼프 첫 기자단 만찬 연설 직전 총성…각료·기자들 테이블 밑으로 대피

WSJ, 참석자 증언·영상 토대로 당시 상황 재구성…행사는 결국 취소로 마무리

[워싱턴=AP/뉴시스]25일(현지 시간) 미국 워싱턴DC 힐튼호텔에서 열린 백악관 출입기자단 연례만찬장 밖에서 총격이 발생하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비밀경호국 보호를 받으며 대피하는 모습. 2026.04.26.
[서울=뉴시스] 박영환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첫 백악관 출입기자단 만찬 연설을 준비하던 워싱턴 힐튼호텔이 총성 몇 발에 순식간에 공포의 현장으로 바뀌었다. 각료와 기자, 정·재계 인사들이 테이블 밑으로 몸을 숨겼고, 한 종업원은 “여기서 죽기 싫다”고 울부짖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6일(현지시간) 백악관 출입기자단 만찬장에서 벌어진 총격 당시 상황을 현장 참석자 증언과 영상, 당국 설명을 토대로 재구성해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만찬 연설을 앞두고 들떠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한 관계자에 따르면 그는 행사장으로 향하며 이번 만찬을 “가장 뜨거운 티켓”이라고 불렀고, 참모진은 로버트 F. 케네디 주니어 보건복지부 장관 등 각료들을 겨냥한 농담까지 연설문에 담아뒀다.

백악관 출입기자단 만찬은 미국 정·관·언론계 인사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연례 행사다. 언론계에서는 워싱턴판 사교무도회 (nerd prom)로도 불린다. 역대 대통령들이 자주 참석해왔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첫 임기 때는 이 행사에 참석하지 않았다.

이날 행사장에는 트럼프 대통령과 멜라니아 여사, JD 밴스 부통령,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 캐시 파텔 연방수사국(FBI) 국장 등 행정부 고위 인사들이 대거 참석했다. 언론인, 의원, 기업인, 유명 인사들도 레드카펫을 밟았다.

워싱턴 힐튼호텔은 1981년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 피격 사건이 벌어진 장소이기도 하다. 이날 호텔 주변 도로는 통제됐고, 참석자들은 만찬 티켓이나 사전 리셉션 초청장을 제시한 뒤 입장했다.

다만 WSJ는 참석자들이 호텔 로비와 저층부에는 보안 검색대 통과 없이 접근할 수 있었고, 실제 금속탐지기 검색은 만찬장이 있는 대연회장 입구에서 이뤄졌다고 전했다.

행사는 예정대로 시작되는 듯했다. 백악관 출입기자단협회 관계자들과 사회자, 밴스 부통령 등이 무대에 올랐고, 트럼프 대통령과 멜라니아 여사도 소개를 받았다. 군악대가 국가를 연주했고, 참석자들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나 참석자들이 샐러드를 막 먹기 시작한 순간, 31세 남성이 보안검색 지점을 향해 달려들었다. 곧이어 만찬장 밖에서 총성이 들렸다.

트럼프 대통령은 나중에 처음에는 쟁반이 바닥에 떨어진 소리로 생각했다고 밝혔다. 크리스 라이트 에너지장관은 처음엔 “누군가 또 소란을 피우는구나”라고 생각했지만, 곧 이미 피격을 겪은 대통령을 떠올렸다고 말했다.

경호요원들은 즉시 트럼프 대통령을 무대에서 끌어냈다. 이동 과정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비틀거린 것으로 보였고, 요원들이 그를 둘러싸 대피시켰다. 밴스 부통령은 반대 방향으로 빠져나갔고, 무대 위 인사들도 급히 뒤편으로 안내됐다.

연회장은 곧바로 아수라장이 됐다. 헬멧을 쓰고 장총을 든 법집행 요원들이 무대에 배치됐고, 다른 요원들은 테이블 위로 올라가 무기를 들고 주변을 살폈다.

[서울=뉴시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참석한 백악관 출입기자단 만찬 행사장에서 총성으로 추정되는 소동이 벌어진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을 보호하기 위해 나선 경호원의 모습이 SNS에서 이목을 끌고 있다. (사진=X 갈무리) *재판매 및 DB 금지
참석자들은 테이블 밑과 의자 뒤로 몸을 숨겼다. 와인이 쏟아지고 서빙 쟁반이 바닥에 떨어졌으며, 곳곳에서 비명과 흐느낌이 터져 나왔다. 영상에는 스티븐 밀러 백악관 부비서실장과 파텔 FBI 국장, 케네디 장관 등 고위 인사들이 몸을 낮춘 모습도 담겼다.

한 종업원은 스페인어로 “여기서 죽기 싫다. 이 방에서 죽고 싶지 않다”고 외쳤다.

마이크 존슨 하원의장의 부인 켈리 존슨도 테이블 밑에 숨어 있다가 보안요원에게 발견돼 밖으로 빠져나간 것으로 전해졌다.

참석자들은 휴대전화 신호가 불안정한 지하 연회장에서 가족과 동료들에게 자신이 무사하다는 사실을 알리려 애썼다. 현장에 있던 기자들은 동료들에게 전화를 걸어 벌어지는 상황을 전달하려 했다.

용의자는 만찬장으로 이어지는 구역 근처 호텔 1층에서 제압됐다. 총격 직후 트럼프 대통령은 행사가 계속돼야 한다는 뜻을 주변에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백악관 출입기자단협회장인 CBS 기자 웨이자 장은 오후 9시 직전 떨리는 목소리로 무대에 올라 행사를 재개하겠다고 알렸다. 그러나 약 40분 뒤 행사는 결국 취소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즉시 호텔을 떠나지 않았고, 참모들이 사건 경위를 파악하는 동안 한동안 현장에 머문 것으로 전해졌다.

오후 10시께 대부분의 참석자는 연회장을 빠져나갔다. 행사장에는 먹다 남은 샐러드와 빵, 바닥에 흩어진 붉은 냅킨, 급히 대피하며 남겨진 신발 등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WSJ는 축제처럼 시작된 워싱턴의 권력층 만찬이 순식간에 총성과 대피, 공포의 장면으로 바뀌었다며, 트럼프 대통령을 겨냥한 두 차례 암살 시도 이후 미국 정치권이 폭력의 일상화라는 새 현실과 마주하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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