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주 주민들, 목숨 담보로 안동에 원정진료 가야 하나"

기사등록 2026/04/27 06:00:00 최종수정 2026/04/27 06:30:27

보건복지부, 5번째 의료혁신 지역순회 간담회

야간·주말 진료 소아과 없어…분만 가능 1곳뿐

"골든타임내 치료할 지역병원 필요…생명 직결"

정은경 "지역 내 탄탄한 의료 공급 체계 필요"

[영주=뉴시스]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이 지난 24일 경북 영주 적십자병원 앙리뒤낭홀에서 영주·예천·봉화 등 지역 주민 및 의료진 등과 함께하는 의료혁신 지역순회 간담회를 개최했다. (사진=보건복지부 제공) 2026.04.27.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영주=뉴시스] 강진아 기자 = "둘째가 90일 정도 지났을 때 38도가 넘는 고열이 났어요. 급한 마음에 우선 한군데 있는 소아과 의원에 갔더니 100일 전 아기는 고열이 응급상황이라며 진료의뢰서를 써줬죠. 이걸 들고 종합병원인 적십자병원에 왔는데 영아 진료라서 안동으로 가야 한대요. 이미 1시간이 지났지만, 아기를 다시 차에 태워 안동까지 40분을 정신없이 달렸어요. 땀 흘리며 의식도 없는 아이를 보며 너무나 고통이었죠."

경북 영주에서 두 자녀를 키우고 있는 김모씨는 당시 아찔했던 순간을 떠올리며 씁쓸해했다. 다행히 안동병원에 입원했지만, 타지에서 둘째를 돌보느라 첫째와는 일주일간 떨어진 시간은 일상이 흔들릴 만큼 타격이었다. 이런 경험은 한두 번이 아니다. 둘째가 이유식을 먹다가 두드러기가 올라와 응급실을 찾았지만, 그때 역시 24개월 미만 영아라 진료 불가라며 안동으로 가라는 안내를 받았다.

그는 "소아과 부족으로 인해 진료 공백을 경험한 적이 정말 많다"며 "목숨을 담보로 '원정 진료'를 가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 애통하다"고 말했다.

지난 24일 경북 영주 적십자병원에서 열린 간담회에선 의료 취약지의 어려운 현실에 대한 지역 주민들의 토로가 이어졌다. 야간·응급 진료 공백, 소아과 및 분만 진료 공백, 의료기관 부족 및 의료 접근성 불편, 열악한 의료 근무 환경 등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시급한 개선을 요구했다.

간담회에는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을 비롯해 손영래 의료혁신추진단장, 적십자병원 및 지역 보건소 의료진, 영주·예천 주민 등이 참석했다. 경남 거창을 시작으로 강원 원주·평창, 전남 신안·구례, 인천 강화에 이어 5번째 의료혁신 지역 순회 간담회다.

◆의료 공백으로 '원정 진료' 일상…지난해 출생 331명 중 영주 내 분만 25명뿐

[영주=뉴시스]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이 지난 24일 경북 영주 적십자병원 앙리뒤낭홀에서 영주·예천·봉화 등 지역 주민 및 의료진 등과 함께하는 의료혁신 지역순회 간담회를 개최했다. (사진=보건복지부 제공) 2026.04.27.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인구감소지역인 영주는 3월말 기준 인구가 9만6673명이다. 그중 65세 이상 노인은 34%로, 전국 평균 21.5%보다 12.5%p나 높다. 응급의료기관으로는 유일한 종합병원인 적십자병원과 일반 병원 2곳 등 3곳이 있다.

지난해 사망자는 1290명이었지만, 태어난 아이는 331명이었다. 하지만 대부분 안동·원주·대구에서 출산해 영주에서 태어난 아이는 25명으로 전체의 7.5%에 불과하다. 현재 분만 가능한 산부인과가 영주 내 1곳뿐이기 때문이다. 야간·주말 진료를 하는 소아과는 없으며, 24개월 미만 소아 진료가 가능한 곳은 없다. 그로 인해 안동병원이나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 대구 칠곡경북대병원 등으로 '원정 진료'를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인구가 더 적은 인근의 예천·봉화도 별반 다르지 않다. 9년 전 대구에서 예천으로 이사했다는 심모씨는 "대구에선 횡단보도 하나만 건너면 많은 소아과가 있었지만, 예천에 온 뒤 소아과에 간 적은 두 번뿐"이라며 "최소 대기 시간이 2시간이다. 새벽부터 줄을 서야 접수할 수 있다. 아이를 어디서든 편안하게 키울 수 있는 의료 환경이 됐으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거동이 불편해 이동이 어려워 진료를 포기하는 고령 환자도 수두룩하다. 고령자가 많고 의료 접근성이 떨어지는 농촌은 더 열악하다. 정부는 상급병원을 찾기 전 1차 의료기관 이용을 권고하지만, 농촌의 보건진료소 등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보건지소·보건진료소 순회 근무도 의료 공백을 초래할 미봉책이라고 꼬집었다.

보건진료소 운영협의회에 참여하고 있는 강모씨는 "매달 혈압·당뇨약을 타러 가는 어르신들에게 돌아오는 대답은 의사가 없으니 석달치 약을 한꺼번에 가져가라는 통보다. 하루가 다르게 몸 상태가 변하는 고령 환자에게 3개월 장기 처방은 투약이 아니라 방치"라며 "아파도 꾹 참으며 의사를 기다리는 게 농촌 현실이 돼선 안 된다. 소외된 농촌 지역도 언제든지 치료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영주=뉴시스]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이 지난 24일 경북 영주 적십자병원 앙리뒤낭홀에서 영주·예천·봉화 등 지역 주민 및 의료진 등과 함께하는 의료혁신 지역순회 간담회를 개최했다. (사진=보건복지부 제공) 2026.04.27.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12년 전 갑작스레 남동생을 떠나보냈다는 주모씨도 "골든타임 안에 제대로 치료받을 수 있는 병원이 꼭 필요하다"며 "왜 우리는 아프면 다른 지역으로 가야 하는가. 이건 단순히 불편한 문제가 아니라 생명과 직결된 문제"라며 실질적인 변화를 촉구했다.

◆지역 내 1차 의료기관 부족…전문 의료 인력 채용은 '하늘의 별따기'

지역의 열악한 의료 현실엔 전문 인력 부족 문제가 늘 뒤따른다. 하지만 채용 공고를 내도 지원자가 한 명도 없는, 의료진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인 상황이다.

부석보건지소 공중보건의사인 우모씨는 "높은 연봉을 제시해도 전문의가 안 오는 건 근무 여건 영향도 크다. 의사는 환자를 통해 평생 배우는 직업인데, 지역에선 이런 경험이나 전문성을 쌓을 환경이 안 되기 때문"이라며 "공중보건의를 응급실에 홀로 배치하는 것도 제대로 역할을 하기 어렵다. 권역을 확실히 정하고 분산된 인력을 모아 팀을 이뤄 근무하는 체계로 정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의사만 있다고 해결되는 상황도 아니라고 지적했다. 그는 "중증 수술이 가능하려면 간호 인력을 비롯해 방사선사·임상병리사 등 전문 수술 인력이 모두 필요하다. 톱니바퀴처럼 맞물리는 인력이 필요한데 의사만 있다고 저절로 모이는 게 아니다"라며 "중증 질환은 어디서든 일어날 수 있다. 모든 시군에서 수술이 가능하면 좋겠지만 현실은 불가능하다. 각 질환에 따라 어디로 이송할지 체계적인 시스템이 있으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영주=뉴시스]강진아 기자=지난 24일 경북 영주 적십자병원 앙리뒤낭홀에서 열린 의료혁신 지역순회 간담회.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과 영주·예천 등 지역 주민들 및 의료진들이 의료 개선방안을 적어 벽면에 붙였다. 2026.04.27. akang@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이날 참석자들은 각자 경험을 바탕으로 한 개선 방안을 종이에 적어 공유했다. 야간·응급시 병원 안내 상담전화 개통, 응급이송체계 개선, 지역 거점 아동병원 필요, 소아진료 수가 개선, 지역병원과 상급병원 연계 담당자 병원별 배치, 상급의료기관의 인력 순환근무, 병원동행 서비스 도입, 원격 협진 진료 확대 지원 등 다양한 의견이 나왔다.

정 장관도 '소아 주치의 도입'과 '지역 포괄적인 종합병원 육성(지역응급의료센터 운영)' 방안을 손수 적어 붙였다. 이날 기자들과 만난 정 장관은 전문 의료 인력 확보가 '숙제'라며 응급·중증 진료를 강화한 지역 내 의료 공급 체계 구축 필요성을 절감했다고 밝혔다. 간담회 내용은 추후 의료혁신추진위원회에서 논의된다.

정 장관은 "지역 주민들의 이야기를 정책으로 잘 담아야겠다는 막중한 책임감을 느낀다"며 "'내가 이곳에서 계속 살아갈 수 있을까'라는 한 주민의 말씀은 왜 더 이상 의료혁신을 늦춰서는 안 되는지 일깨워줬다"고 밝혔다.

아울러 "최우선 과제로 일단 생명을 살려야 하는 응급·중증 진료 부분이 가장 크다"며 "가까운 곳에서 진료 받을 수 있는 1차 의료 인프라를 잘 구축해야 하고, 현재 영주에는 없는 포괄 2차 병원으로 역량을 키워서 지역응급의료센터 역할을 가능하게 해야 한다. 필요한 경우 상급종합병원에 의뢰하고 회송받는, 지역 내에서 해결할 수 있는 완결적인 의료 전달 체계가 탄탄하게 만들어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akang@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