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싱증후군·유방암 이겨내고 8년 만의 리사이틀
5월 8~9일 서울 용산아트홀 대극장 미르홀
故장덕과 굳건했던 여성 연대…편견 부수고 시대 앞서간 궤적
"앞으로 딱 10년만, 더 노래하고파"
질병은 한 사람의 육신을 무너뜨리는 가혹한 시련이지만, 끝내 버텨낸 자에게는 목소리의 결을 다듬는 날카로운 끌이 되기도 한다. 가수 이은하(65)의 짙고 허스키한 음색은 단순히 성대 마찰에서 나오는 소리가 아니다. 그것은 심연을 경험한 인간이 온몸의 뱃심으로 길어 올린 생의 굴곡이자, 흉성으로 토해내는 육신과 영혼의 투쟁 기록이다.
'밤차', '아리송해' 그리고 '봄비'의 주인공 이은하가 마침내 무대로 돌아온다. 오는 5월 8~9일 서울 용산아트홀 대극장 미르홀에서 열리는 리사이틀은 2018년 대구 콘서트 이후 무려 8년 만이다. 쿠싱 증후군에 이어 유방암까지, 기나긴 투병 생활 끝에 두세 달 전 마침내 완치 판정을 받은 그가 세상에 건네는 존엄한 생존의 증명이기도 하다.
최근 서울 마포구에서 만난 이은하는 흔들림 없이 단단했다. 과거 투병 당시 부어올랐던 모습만 기억하며 온라인 라이브 방송(라방)마다 "건강은 어떠십니까?"를 묻는 대중의 왜곡된 시선을 향해, 그는 직접 마이크를 잡고 무대 위에서 답하기로 했다.
"유튜브 등에 옛날 아픈 모습만 계속 돌아다니더라고요. '여러분들이 봐라. 내가 2시간을 뛰어도 멀쩡하다'는 걸 직접 만나서 보여주고 싶었어요. '이은하가 아직 건재하다'는 사실을요."
◆여성 컬래버레이터들의 연대…편견을 부수고 마스터피스가 되다
1973년 열세 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큰집 언니 호적을 떼어" 데뷔한 이은하는 197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 중반까지 방송사 10대 가수상을 휩쓸었다. R&B, 디스코, 록, 재즈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다양한 장르에 도전해 온 개척자였다. 그의 역사를 관통하는 또 다른 궤적에는 영화 '내부자들'(2015)에서 이병헌의 서늘한 열창으로 MZ 세대에게도 각인된 명곡 '봄비'가 있다. 당시 타 방송국들의 견제 속에서도 살아남아, 수십 년째 한국인의 봄을 적시고 있는 끈질긴 생명력의 노래다.
"장덕 씨가 세션맨들에게 기타를 어떻게 쳐라 지시하면, '어린 여자애가 뭘 안다고'라며 되게 무시하는 경우가 많았죠. 하지만 전 예쁜 사람을 좋아했고, 장덕은 정말 천재 끼가 넘치는 친구였어요. 소주 한 잔씩 기울이며 함께 만들었죠."
두 여성 아티스트의 굳건한 연대(連帶)는 당대의 편견에 아름다운 균열을 냈다. 세상을 떠난 장덕이 남긴 선율 위에 이은하가 가사를 얹어 완성한 이 곡은 훗날 수많은 후배들의 목소리로 다시 불리며 시간을 이긴 명곡이 됐다.
◆지하 방공호에서 길어 올린 뱃심…10년의 비상을 꿈꾸다
화려했던 전성기 이면에는 견디기 힘든 고통의 시간도 존재했다. 김현식 헌정 앨범 제작 등 엔터테인먼트 사업 실패와 지인으로 인한 막대한 빚, 파산 신청이라는 우여곡절 속에서 이은하의 삶은 벼랑 끝으로 내몰렸다. 극심한 마음고생은 쿠싱 증후군과 유방암이라는 병마로 이어졌다. 그는 이 시기를 "지하 방공호까지 땅굴을 파고 들어갔던 시간"이라고 회고했다.
하지만 그를 다시 숨 쉬게 한 것은 결국 노래였다. 1주일에 두 번씩 켜는 라이브 방송에서 그가 히트곡 '당신께만'을 부를 때마다 수많은 팬들이 결집했다. 젊은 시절의 날 선 고음은 세월을 따라 두 키 정도 낮아졌지만, 노래의 깊이는 오히려 짙어졌다. 가벼운 목이 아닌, 묵직한 흉성과 뱃심으로 밀어내는 스트레이트 창법은 삶의 희로애락을 아우르며 상처를 위로하는 거대한 공명통이 됐다.
올해로 데뷔 53년 차를 맞은 그는 '국민 가수'라는 거창한 수식어조차 정중히 사양했다. 그저 자신의 이름 석 자로 기억되기를 원할 뿐이다. 고통이 한낱 전시되는 스펙터클로 소비되는 시대에, 그는 자신의 상처에 변명하지 않고 그것을 기어이 예술의 동력으로 승화시켰다.
"신인 같은 마음이에요. 앞으로 딱 10년만, 목이 아닌 뱃심으로 멋있게 노래하고 싶습니다. 10년 동안 팬 여러분과 무대에서 함께 잘 놀고 마무리하는 것, 그게 제 마지막 소원입니다."
한편 이번 콘서트는 게스트도 화려하다. 첫날엔 양수경과 웅산, 두 번째 날엔 전영록과 이정용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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