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 "노조 요구 과해…투자 적기 놓칠 수도"
'HBM 실기' 전례 반복되나…"기술 전환기 잡아야"
"대표적인 자본집약형 산업 반도체 특성 고려해야"
"삼성, 올해 메모리·파운드리 중대한 국면" 지적도
"인공지능(AI) 반도체 시대에는 훨씬 큰 돈이 필요하다. 개발 시기 놓치면 경쟁사에 고객들을 뺏길 우려가 있다."(이규복 전 반도체공학회 회장)
삼성전자 노조의 45조원 성과급 요구안을 놓고, 공학과 경영학 분야 다수 전문가들은 노조의 과도한 성과급 요구가 회사의 중장기적 경쟁력을 약화시켜 결국 자충수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을 내놓았다.
대표적인 자본집약형 산업인 반도체 산업이 올해 중대한 전환기를 맞이한 만큼, 중장기적 관점에서 잉여 수익을 투자에 집중해야 한다는 분석이다.
22일 학계와 전자 업계에 따르면 경영·경제·반도체공학 등 각계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삼성전자 노조의 45조원 규모 성과급 요구안에 대해 "전례를 찾을 수 없는 수준"으로 평가하며, 향후 회사의 투자 위축 및 경쟁력 약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신세돈 숙명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노조가 요구한 '영업이익 15% 재원 활용'은 과거에도 선례가 없었던 수치"라며 "이는 상식에서 벗어난 수준이며, 15% 수치에 대한 근거 또한 찾기 어렵다"고 꼬집었다.
노조는 영업이익 15%를 재원으로 활용하고 상한을 폐지해야 한다고 사측에 요구하고 있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는 "(노조의 요구는) 명백하게 과도한 수준"이라며 "삼성전자는 반도체 외에도 가전·모바일 등 4개 사업 축으로 운영되는데, 반도체 호황기 수익 만을 기준으로 과도한 보상을 요구하는 것은 이기적"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반도체 라인 하나를 구축하는 데만 1조원이 넘게 드는 장치 산업 특성상 수익의 상당 부분은 미래를 위한 투자로 환원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황용식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 또한 "삼성전자가 앞으로 경쟁력을 갖추려면 R&D와 시설설비 등에 투자를 적극 해야 한다"며 "만약 노조가 예고한 총파업까지 가게 되면 빅테크 고객들이 삼성을 바라보는 신뢰도는 크게 하락 할 수 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노조의 목소리가 너무 강한 현재의 여건 상 기업이 투자에 집중하기 힘든 만큼, 보상 시스템을 점검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기술 공학적인 관점에서도 성과급으로의 대규모 자금 지출, 총파업 등으로 인해 중장기 기술 경쟁력 약화 등 개발·생산 현장에서 상당한 여파가 있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이규복 전 반도체공학회 회장은 "파운드리 공정은 2나노를 넘어 1나노 시대로 가고 있어 R&D가 매우 중요한 시점"이라며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이 훨씬 많은 자금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전 회장은 "차세대 공정은 단순 장비 구입 뿐만 아니라 개발·생산 시스템을 모두 갖춰야 하고, 필요하면 인수합병(M&A)까지 나서야 하는 상황"이라며 "투자 이외에 다른 곳에 돈을 너무 많이 쓰게 되면 R&D 일정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전문연구원은 "회사가 대규모 성과급을 줘도 지금 당장 R&D에 문제는 없을 것"이라면서도 "최대한 많은 자금을 R&D에 투자해 또 다른 새로운 시장을 준비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 전문연구원은 "예컨대, 과거 삼성이 여유 자금이 있었다면 고대역폭메모리(HBM) 초기 개발에 손을 놓지 않았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삼성전자는 HBM 시장에 뒤늦게 진입해 장기간 경쟁사인 SK하이닉스에 HBM 시장 우위를 내줄 수 밖에 없었다.
향후 대규모 성과급 지급이 수차례 반복돼 충분한 자금을 확보하지 못하면 '제2의 HBM 실기'와 같은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다.
이처럼 전문가들은 시기의 문제를 강조한다. 반도체 산업에서 슈퍼사이클과 기술 전환기가 맞물린 상황에서 대규모 현금 유출은 곧 투자 지연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삼성전자는 올해 메모리와 파운드리 모두 전환기를 맞이한 중대한 국면에 있다.
올해 6세대 'HBM4' 시장이 개화했는데 HBM4를 세계 최초로 양산·출하하며 HBM 시장에서 SK하이닉스와의 격차를 줄여나가고 있다.
적자 상태인 파운드리 사업의 경우, 지난해부터 테슬라·애플 등 빅테크 수주를 확대하며 올해 흑자전환이 기대되고 있다.
한편 이찬희 삼성 준법감시위원회 위원장은 이날 준감위 정례회의에 앞서 "삼성은 단순 사기업이 아닌 국민의 기업으로 평가받고 있다"며 "기업 발전에 관심을 갖는 많은 국민이 직간접적으로 연결돼 있어, 노조도 신중하게 생각해야 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이 위원장은 제50대 대한변호사협회 회장을 지낸 대표적인 법률 전문가이며 2022년부터 삼성 준감위를 이끌고 있다. 2020년 출범한 삼성 준감위는 삼성 주요 계열사들의 준법·윤리경영을 감시하고 지원하는 외부 독립 감시기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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