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탄소년단 월드투어 '아리랑' 리뷰
퍼포먼스 물성 벗고 '정신적 원형질'로 이행
RM "중요한 건 변하지 않아…독립된 개체 일곱 멤버 믿어달라"
회당 4만4000명…3회에 걸쳐 13만2000명
하지만 글로벌 슈퍼 그룹 '방탄소년단'(BTS)이 6년 반 만에 재개한 월드투어 '아리랑(ARIRANG)'은 이 위계를 우아하게 해체했다. 11일 오후 경기 고양 고양종합운동장 주경기장에 운집한 4만4000명의 아미(ARMY) 앞에는 일방적인 스펙터클의 전시가 아닌, 더 많은 이들이 평등하게 모이기 위한 새로운 연대의 좌표가 설정돼 있었다.
◆360도 무대, 파편화된 도시를 위로하는 '거대한 캠프파이어'
이번 공연의 인문학적 핵심은 단연 '360도 무대'다. 앞과 뒤, 주연과 조연의 경계가 허물어진 둥근 공간은 고대인들이 밤의 추위와 두려움을 이겨내기 위해 모여 앉았던 거대한 '캠프파이어'를 연상시킨다. 중심에서 타오르는 일곱 멤버의 불꽃을 향해 수만 개의 보랏빛 혹은 흰빛 아미밤이 둥글게 원을 그렸다.
군백기 시절 발표한 '테이크 투(Take Two)'와 메가 히트곡 'DNA' 등을 들려준 일명 '방탄 노래방' 코너는 이 캠프파이어의 정서적 온기를 극대화한 순간이었다. 파편화된 섬처럼 존재하던 관객들은 거대한 파도타기를 거치며 서로가 서로의 인력이 돼주는 조화를 경험했다. 공연 내내 방탄소년단 대표곡 '불타오르네'처럼, 계속 타오르는 불꽃 특수효과가 캠프파이어 분위기를 더욱 조성했다.
공간의 혁명은 빌보드와 오피셜 차트를 휩쓴 정규 5집 '아리랑'의 미학적 지향점과도 맞닿아 있다.
이번 신보와 공연이 흥미로운 이유는, K-팝이 그간 천착해 온 형식적 물성과 퍼포먼스라는 표피를 뚫고 들어가 장르의 '정신적 원형질'을 파고들려 치열하게 노력했기 때문이다.
군무를 대폭 줄인 얼터너티브 팝 '스윔(SWIM)'을 타이틀곡으로 내세운 점이 그 증거다. 대형 천을 물결처럼 활용한 '스윔'의 무대 연출은 육체적 스펙터클을 덜어낸 자리에 정서적 파동을 묵직하게 채워 넣었다.
이러한 정신적 원형질을 찾는 여정은 곳곳에 포진한 한국적 요소를 통해 시각화됐다. 수묵화에서 영감을 받은 애니메이션이 돋보인 '노멀(NORMAL)', 승무의 고풍스러운 선을 빌려온 '메리 고 라운드(Merry Go Round)'는 우아함을 선사했다. "얇은 사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 나빌레라"라는 조지훈의 시 '승무' 구절은 '메리 고 라운드'에게 오롯이 가닿았다. 승무는 힘을 주는 게 아닌, 사뿐히 움직인다.
특히 노래 끝 부분에 '아리랑'이 녹아들어간 '보디 투 보디'와 얼쑤 등 우리 장단을 녹인 '아이돌', 즉 전통 2부작을 연이어 들려준 대목은 화룡점정이었다. 트랙을 돌며 보여준 상모돌리기와 강강술래를 연상시키는 퍼포먼스, 더불어 LED 깃발 위에 장엄하게 떠오른 일월오봉도의 형상은 고유한 얼을 단단히 박아 넣은 상징적 장면이었다. 방시혁 의장이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BTS: 더 리턴'에서 "공연을 할 때 외국인들이 '아리랑' 후렴구를 따라 부르는 신은 엄청나게 아이코닉할 것"이라고 말한 대목이 해당 장면이 아닐까 추정됐다. 고양종합운동장 주경기장 한 가운데 섬처럼 자리잡은 무대 위를 장식한 대형 스크린 구조물은 부감숏을 보면, 바람개비 모양 같기도 했다.
◆"중요한 건 안 변해"…독립된 개체들이 증명한 본질
방탄소년단은 이날 진화라는 이름의 낯선 궤도 앞에서도 가장 중요한 본질은 변하지 않았음을 거듭 강조했다. 슈가는 "이번 투어는 요소요소에 새로운 시도를 하려고 많이 노력했기 때문에 조금 낯설 수도 있겠지만, 끝까지 최선을 다해 즐겨주시면 감사하겠다"고 청했다. 슈가는 바이닐에만 실린, 자신의 프로듀싱곡 '컴 오버'에 대해선 낯설지만 곧 익숙해질 것이라고 여겼다.
리더 RM의 멘트는 'BTS 2.0'이 품은 고민과 진심의 요약본이었다. "최근 저희가 많은 변화를 이야기하고 있지만, 진짜 중요한 것은 우리 일곱 명이 이 일을 계속 함께하기로 했다는 점, 그리고 여러분을 향한 저희의 진심"이라고 강조한 그는, 멤버 전원이 30대에 접어들었음을 언급하며 "독립된 개체로서 우리가 내린 결정들은 결국 저희가 이 일을 정말 오래, 함께 잘 해나가기 위해 고심 끝에 내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저희의 변화를 지켜봐 주시고 한 번만 믿어달라"는 RM의 먹먹한 바람 직후, 그와 정국이 관객을 향해 올린 묵직한 '큰절'은 이 공간에 모인 다국적의 아미에게 어떤 화려한 수사보다 깊은 파동을 남겼다. 슈가, 지민, 뷔, 진, 제이홉 다른 멤버들 역시 같은 마음이었다.
중심이 해체된 시대, 360도 무대라는 고립 없는 원형의 캠프파이어에서 독립적인 개체들인 방탄소년단과 아미는 기어코 서로에게 가닿겠다는 '아리랑'의 선율을 완성했다. 변화를 향한 치열한 성장통 속에서도 이들이 지켜낸 '연대'라는 구심점은 굳건하다. 방탄소년단의 새로운 시대는 일방적인 시선의 권력을 내려놓은 그 둥근 평등함이다. 이 연대는 지난 9일 첫 공연에 이어 12일에도 같은 장소에서 이어진다. 고양 공연은 3회 무대에 13만2000명이 모인다. 이번 투어는 전 세계 34개 도시 85회 공연이 예정됐다.
◎공감언론 뉴시스 realpaper7@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