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휴전' 비웃는 이란의 배짱…경제판 '상호 확증 파괴' 시대 왔다
호르무즈 통행료 징수 추진…반도체·희토류 쥔 미·중 '공급망 전쟁' 합류
9일(현지시간) 미국의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이란은 미국·이스라엘과의 전쟁 중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해 국제 유가를 배럴당 100달러 위로 폭등시킨 데 이어, 향후 해협을 지나는 선박들에 통행료를 부과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이는 과거 열린 바다였던 공해를 자국의 강력한 경제 무기로 영구화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7일 해협 재개방을 전제로 휴전에 합의하며 미국의 군사적 목표가 달성됐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이란은 지리적 이점과 미사일·드론 전력을 활용해 전 세계 에너지 공급망을 인질로 잡는 '통행료 비즈니스'라는 새 카드를 꺼내 들었다.
WSJ은 이런 방식이 이란만의 전략은 아니라고 짚었다. 미국은 오랫동안 달러 중심 금융체계를 활용해 개인·기업·정부를 제재해왔고, 반도체 기술 우위를 바탕으로 중국의 군사력 강화와 첨단산업 도약을 견제해왔다. 중국은 전투기와 스마트폰 등에 필수적인 희토류 공급망을 사실상 장악한 힘을 활용해 미국 산업계를 압박하고, 무역·관세 협상에서 지렛대로 써왔다.
유럽과 일본도 경제무기화 흐름에 대응하고 있다. 유럽연합(EU)은 2023년 수출통제 등 경제적 대응을 쉽게 할 수 있도록 하는 이른바 '반강압 수단'을 도입했다. 네덜란드는 자국 기업 ASML이 생산하는 첨단 노광장비의 대중국 판매를 제한해 중국의 첨단 반도체 생산 능력을 제약하고 있다. 일본도 에너지와 핵심 광물 공급망을 다변화하고, 반도체 핵심 분야를 지원하는 데 수십억 달러를 투입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를 '상호 확증적 경제 파괴(Mutually Assured Economic Destruction)' 전략이라고 정의한다. 도쿄 지경학연구소의 앤드루 카피스트라노 연구원은 "상대에게 '우리 물건을 끊지 마라'고 경고하려면, '나도 너희가 필요한 것을 끊을 수 있다'는 억지력을 보여줘야 한다"고 분석했다.
WSJ은 과거 자유무역과 경제 효율성을 중시하던 시대에는 경제학자들이 의사결정의 주도권을 쥐었으나, 이제는 국가 안보 전문가들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미 상무부 출신 에밀리 벤슨은 "글로벌 공급망이라는 연결된 거미줄에 자기 자리를 확보하지 못한 국가는 결국 강대국의 메뉴판에 오르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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