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찬혁·이수현 악뮤 '개화', 고통 조각으로 맞춘 구원 퍼즐

기사등록 2026/04/11 13:36:48

정규 4집 '개화(開花)' 리뷰

투명한 어쿠스틱이 직조해 낸 꾸밈없는 공명

혐오의 시대를 덮는 다정한 텐트…상처 입은 자들의 거대한 고해성소

[서울=뉴시스] 악뮤. (사진 = 영감의 샘터 제공) 2026.04.11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이보다 더 좋은 것은 없어 / 흐린 날도 화창한 날도 시린 날도 / 끼우고 나면 다 퍼즐이 될 거야" ('기쁨, 슬픔, 아름다운 마음' 중)

결여를 긍정하는 일은 어떻게 예술이 되는가. 남매 듀오 '악뮤(AKMU)'가 최근 발매한 정규 4집 '개화(開花)'는 이 무거운 철학적 질문에 대한 대중음악 식(式) 가장 투명하고도 우아한 대답이다.

2019년 정규 3집 '항해' 이후 무려 7년 만에 당도한 정규 음반이다. 12년간 몸담았던 거대 기획사 YG엔터테인먼트라는 온실을 떠나, 독립 레이블 '영감의 샘터'를 설립하고 처음 피워낸 이 꽃은 화려한 교배종이 아닌 단단한 야생화의 자태를 띠고 있다. 이찬혁이 전곡(11곡)의 작사, 작곡, 편곡을 홀로 직조해 낸 이 앨범은, 대중음악이 도달할 수 있는 가장 숭고한 미학적 성취이자 동시대 팝이 상실했던 '서정성의 완벽한 복원'이다.

◆퍼즐의 미학…상처를 껴안는 가장 성숙한 방식

이번 앨범을 관통하는 핵심 철학은 타이틀곡 '기쁨, 슬픔, 아름다운 마음'에 집약된 '퍼즐의 미학'이다.

우리는 흔히 삶의 슬픔과 고통을 빨리 도려내야 할 오답으로 여긴다. 그러나 이찬혁의 시선에서 흐린 날과 시린 날의 고통은 배제해야 할 흠결이 아니다. 그것들은 삶이라는 거대한 그림을 완성하기 위해 반드시 제자리를 찾아야만 하는 고유한 퍼즐 조각이다. 슬픔을 '쫓아내지 않고 품어줄 때 아주 예쁜 돌'이 된다는 인식은, 고통을 단순히 위로하는 차원을 넘어 미학적으로 승화시키는 거장의 변증법적 태도다.
[서울=뉴시스] 악뮤 정규 4집 '개화' 커버. (사진 = 영감의 샘터 제공) 2026.04.07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유기농 어쿠스틱…가장 자연스러운 소리로의 회귀

메시지의 진정성을 담보하는 것은 철저하게 덜어낸 사운드다. '개화'는 K-팝 신을 지배하는 전자음과 화려한 퍼포먼스의 문법에서 완전히 탈주했다. 컨트리와 포크를 기반으로 한 어쿠스틱 사운드는 이들이 설립한 레이블의 이름처럼 꾸밈없는 '샘물' 같다.

이찬혁이 매만진 순정한 질감 위로, 이수현의 청아한 보컬이 투명하게 내려앉는다. 화려한 기교 대신 말하듯 읊조리는 가창, 그리고 대부분 한국어로 쓰인 순수한 노랫말은 듣는 이에게 인공 감미료 없는 '유기농'의 편안함을 선사한다. 현악, 퍼쿠션, 박수('옳은 사람'·'난민들의 축제'), 브라스('우아한 아침 식사') 등의 다양한 소리 요소도 과히지 않고 노랫말에 철저하게 복무한다.

가장 일상적이고 미시적인 사물들로 내면의 평화를 노래하는 11곡의 트랙들은, 이찬혁과 그의 밴드 마스터인 이진협과 함께 한 편곡들로 어쿠스틱의 질감을 입음으로써 비로소 숨을 쉰다.

◆가장 사적인 구원에서 보편적 연대로
[서울=뉴시스] 악뮤. (사진 = 영감의 샘터 제공) 2026.04.11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무엇보다 이 앨범의 텍스트가 지니는 호소력은, 이것이 픽션이 아닌 이들 남매가 온몸으로 통과해 낸 '생존의 기록'이라는 데 있다.

최근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과 악뮤 자체 다큐멘터리 '악뮤: 더 패스트 이어'를 통해 공개된 이수현의 슬럼프는 깊고 어두웠다. 솔로 2집 '에로스(EROS)'로 '한국대중음악상' 3관왕을 거머쥐며 거침없이 질주하던 오빠의 빛 아래서 동생은 심각한 자기 검열과 대인 기피증, 번아웃에 시달리며 2년의 은둔 생활을 했다. "음악을 포기하겠다"는 동생을 위해 이찬혁은 기꺼이 자신의 질주를 멈췄다. 함께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고 우간다로 음악 봉사를 떠나며 동생의 잃어버린 조각들을 주워 모았다.

결국 '개화'는 오빠 이찬혁이 깊은 어둠 속에 웅크린 동생 이수현에게 "네 삶의 시린 조각들조차 다 아름다운 퍼즐이 될 것"이라며 건네는 눈물겨운 응원가이자 구원의 손길이다.

놀라운 것은, 단 한 사람(동생)을 살리기 위해 부른 이 지극히 사적인 연가가 세상을 향한 보편적 연대로 확장되고 있다는 점이다. 음원 차트 최상단을 장악한 1위 곡 '기쁨, 슬픔, 아름다운 마음'의 뮤직비디오 댓글 창은 현재 거대한 '고해성소'이자 '치유의 장'이다.

수류탄 사고로 손을 잃고 위암 3기 투병 중인 50대 사회복지사, 혈액암 치료를 앞둔 30대 환자, 삶의 끈을 놓으려다 이 노래를 듣고 다시 일어선 우울증 중학생, 휠체어를 타는 소아암 생존자 딸을 둔 어머니까지. 저마다 삶의 '시린 퍼즐 조각'을 쥐고 피 흘리던 이들이 악뮤의 음악에 기대어 서로의 상처를 쓰다듬고 있다. "이찬혁, 동생 이수현을 살려내더니 기꺼이 나와 우리를 살려내는구나." 한 누리꾼의 이 문장은 악뮤의 정규 4집 '개화'가 이룩한 성취를 가장 정확하게 요약한다. 정답을 강요하고 타인의 흠결을 향해 핏대를 세우는 혐오의 시대, 악뮤는 섣부른 심판 대신 기꺼이 곁을 내어주는 '텐트'를 쳤다. 흐리고 시린 날을 견디는 모든 이들에게, 당분간 이 앨범보다 더 좋은 위로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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