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피로감에 시선은 물가·일자리로"…파면 1년 민심
정치권 분열 지속 속 체감경기 악화…"통합·협치가 해법"
[서울=뉴시스]사회부 사건팀 = "피청구인 대통령 윤석열을 파면한다."
지난해 4월 4일 오전 11시22분,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울려 퍼진 이 한 문장은 대한민국을 뒤흔들었다. 2024년 12월3일 심야 비상계엄 선포, 국회 봉쇄 시도, 123일간의 헌정 공백. 재판관 8인 전원일치로 내려진 파면 결정은 헌정사상 두 번째였다.
그로부터 1년. 탄핵에 찬성했든 반대했든, 시민들은 여전히 정치적 분열이 완전히 봉합되지 않았다고 입을 모았다. 다만 찬반을 떠나 이제는 민생 회복과 사회 통합이 더 시급하다는 데에는 의견이 모였다.
전문가들도 정치권이 통합보다 지지층 결집에 치우치면서 갈등이 장기화됐다고 진단했다. 정치적 불확실성 완화에도 불구하고 국제 유가 상승과 환율 불안 등 대외 변수로 서민 체감 경기가 좀처럼 나아지지 않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계엄 사태 1년…정치권 분열 구조 여전
취업준비생 신모(25)씨는 계엄 선포가 있었던 그날 밤을 아직도 또렷이 기억한다고 했다. 신씨는 "친구의 취업을 축하하던 중 계엄 소식을 들었는데, 그 공포가 아직도 생생하다"며 "정치권이 탄핵을 통렬히 반성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기 때문에 트라우마처럼 남아 있다"고 말했다.
윤 전 대통령 파면 이후 통합의 목소리가 높았으나 정치권 갈등은 여전하다는 게 시민들의 반응이다.
자영업자 최모(63)씨는 "단톡방에서 정치 얘기만 나오면 싸움이 나서 이제는 아예 꺼내지 않는다"며 "계엄 사태 이후 1년이 지났지만 정치권이 여전히 갈라져 있는 모습이 아쉽다. 특히 정치가 너무 극단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누가 잘못했나'만 따지는 사회보다, '어떻게 같이 잘 살까'를 고민하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광화문 직장인 홍승연(32)씨는 "정치적 분열은 여전하지만 사회 혼란은 어느 정도 수습되는 과정"이라면서도 "여전히 관련 책임이 충분히 묻지 않는 것 같아 아쉽다"고 말했다.
서울 서초구에서 근무하는 직장인 이희주(33)씨도 “극단적 정치 성향에 영향을 받은 젊은 층이 생각보다 많다는 걸 체감했다"며 "사회적으로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용산구에서 근무하는 직장인 정진주(31)씨 역시 "10년 사이 두 번의 탄핵이 나온 게 놀랍고, 국민이 힘을 모으면 견제가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한 것”이라면서도 “탄핵이 쉽게 가능한 일처럼 인식될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직장인 김민환(32)씨는 "사회는 비교적 안정된 것 같지만, 온라인에서는 여전히 음모론과 비난이 난무한다"며 "건강한 토론 문화가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갈등의 배경으로 정치 구조를 꼽는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대통령 권력을 둘러싼 '적대적 공생관계'가 지속되는 구조에서는 타협이 어렵다"며 "결국 협치가 작동하지 않는 시스템"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두 차례 탄핵은 한국 민주주의의 성숙을 보여주는 동시에 제도적 취약성도 드러낸 사건"이라며 "정치권이 중도로 수렴하려는 노력이 국민 통합의 출발점"이라고 강조했다.
◆민생 회복 지연…물가 안정·경제 대응 요구
정치적 피로감 속에서도 시민들의 관심은 결국 '먹고사는 문제'에 쏠렸다.
문모(52)씨는 "정권이 바뀌든 장을 보면 채소값 오른 것만 느껴진다"며 "살림살이가 나아졌다는 느낌은 없다"고 말했다.
경기도 수원시에 거주하는 김모(61)씨는 "계엄은 잘한 일이 아니지만 탄핵까지 갈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면서도 "이제는 경제를 우선적으로 생각해야 한다"고 했다. 이어 "주가가 올라도 서민들에게는 의미가 없고, 젊은 세대는 집과 결혼이 너무 어렵다"며 물가 안정을 바랐다.
직장인 이모(27)씨는 "1년 전보다 많은 것이 바뀌었다고 생각하지만, 국제 정세가 불안정해지면서 어려운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며 "취업과 결혼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기름값과 물가가 올라 돈 모으기가 가장 힘들다. 국민에게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는 정책보다 사법개혁 등 표심에만 혈안이 돼 있는 것 같아서 실망스럽다"고 했다.
증권사에 근무하는 윤모(35)씨는 "현 정부 들어서 여러 면에서 사회가 진전되고 있다"면서도 "환율 방어 등 경제적인 측면은 아쉽다. 환율과 유가 급등으로 서민 경제가 직격탄을 맞았다. 정부가 적극적으로 물가 안정, 부동산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공인중개사 주한종(65)씨는 "1년이 지난 지금은 실제로 많이 안정됐다고 느낀다"며 "계엄 당시에는 자영업자 입장에서 희망이 없었고, 정치적 갈등도 커서 힘든 시기였다"고 돌아봤다.
다만 "전쟁 여파로 기름값이 오르고 다시 어려워진 것이 아쉽다"며 "정치는 안정된 만큼 이제는 경제가 다시 살아나는 것이 가장 큰 바람이다. 모든 사람들에게 기회가 공평하게 주어지는 사회가 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서울 강남구에서 근무하는 직장인 박수연(29)씨는 "계엄 이후 생긴 정치적 갈등이나 진영 간 혐오는 완전히 정리되지 않은 것 같다"며 "고유가·고물가·고환율 상황에서 정치권이 대립만 할 것이 아니라 민생 법안을 협치로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경제 전문가들은 체감 경기 부진의 원인을 대외 변수에서 찾는다.
김진일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주가 상승이 곧바로 소비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며 "지표와 체감 경기는 1대1로 움직이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어 "최근 경기 악화는 전쟁 등 외부 요인의 영향이 크다"며 "민생 회복을 위해서는 추가경정예산을 빠르고 정확하게 집행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