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명 쓴 부녀 '청산가리 막걸리 사건' 재수사 속도내나

기사등록 2026/03/30 15:29:07 최종수정 2026/03/30 17:14:26

'재심서 무죄' 경찰, 전담팀 투입…기록 재분석

강압 수사·증거 논란 재부상…책임 공방 확산

[광주=뉴시스] 이영주 기자 = '청산가리 막걸리 살인 사건'으로 중형을 선고받았던 백모(71)씨가 28일 오후 광주 동구 광주지법에서 열린 재심 선고 공판 결과 무죄를 선고받은 뒤 하늘을 향해 한숨을 내몰아 쉬고 있다. 백씨와 딸(41)은 지난 2009년 청산가리를 넣은 막걸리를 아내와 지인에게 마시게 해 숨지게 한 혐의(존속살인) 등으로 2012년 대법원에서 각기 무기징역과 징역 20년 형을 선고받았으나 검찰의 강압수사 의혹이 불거지면서 2023년 9월 재심이 개시, 이날 사건 발생 16여년 만에 무죄를 선고받았다. 2025.10.28. leeyj2578@newsis.com

[순천=뉴시스]박기웅 기자 = 16년 전 전남 순천에서 발생한 '청산가리 막걸리 살인 사건'의 진범을 찾기 위해 경찰이 재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다. 재심을 통해 무죄를 확정받은 백모씨 부녀(父女)의 억울한 옥살이가 드러나면서 사건 실체 규명에 관심이 쏠린다.

30일 전남경찰청 등에 따르면 경찰은 '청산가리 막걸리 살인 사건'을 전남청 형사기동대 미제사건 전담수사팀에 배당해 재수사를 벌이고 있다.

경찰은 당시 초기 수사를 진행한 순천경찰서에서 검찰로 넘긴 기록을 확보했다. 검찰 측에서도 관련 증거와 수사 기록 등을 넘겨 받아 자료를 분석·검토하고 있다.

경찰은 과거 수사가 '부녀의 공모'라는 전제 아래 이뤄졌던 것과 달리,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재심에서 무죄를 받은 백씨 부녀와 변호인이었던 박준영 변호사를 참고인 신분으로 불러 수사 기록에 대한 사실관계를 다시 확인했다. 확보한 기록을 토대로 사건 현장에서 발견된 청산가리와 막걸리의 유입 경로 추적에도 나설 방침이다.

일부 보관 중인 증거물에 대해 재감정이 가능한지도 살펴보고 있다. 당시 한계가 있었던 과학수사 기법을 보완하기 위해 현대 분석 기술을 적용할 수 있는지 검토한다. 다만 사건이 발생한 지 벌써 16년이 흐른 데다, 과거 수사 기록도 방대해 수사에 상당한 제약이 따를 것으로 보인다.

이 사건은 2009년 7월 순천 한 마을에서 청산가리가 섞인 막걸리를 마신 주민 4명 중 2명이 숨지고 2명이 중상을 입으며 발생했다.

당시 수사를 지휘한 검찰은 부적절한 관계를 맺던 백씨 부녀가 갈등 관계였던 아내이자 친모인 최모(당시 59세)씨를 살해하기 위해 범행을 저질렀다고 보고 기소했다.

재판 과정은 엇갈렸다. 1심은 자백 진술의 신빙성 부족 등을 이유로 무죄를 선고했지만, 2심과 대법원은 이를 뒤집어 아버지에게 무기징역, 딸에게 징역 20년을 선고해 형이 확정됐다.
[순천=뉴시스] 김석훈 기자 = 광주지법 순천지원 형사1부가 2009년 12월 순천막걸리 살인사건의 현장검증을 진행하고 있는 모습. (뉴시스DB) photo@newsis.com

하지만 이후 사건을 둘러싼 의문이 끊이지 않았다. 범행에 사용된 막걸리 구입 경위가 불분명했고, 청산가리 입수 시기와 법의학 감정 결과도 명확히 일치하지 않는 등 핵심 정황이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특히 부녀의 진술 태도와 달리 검찰 조서가 지나치게 구체적으로 작성된 점 등을 두고 강압 수사 의혹도 제기됐다.

백씨 부녀는 억울함을 호소하며 유죄 확정 10여년 만인 2022년 재심을 청구했다. 법원이 재심 개시 결정을 내리자 검찰은 항고했지만, 지난해 9월 대법원은 검찰의 재항고를 기각해 재심 절차가 시작됐다.

재심을 맡은 광주고법은 백씨 부녀에 대한 재심에서 강압 수사를 통해 확보된 주요 자백 진술의 증거 능력을 인정할 수 없다며 부녀의 손을 들어줬다.

백씨 부녀의 무죄 판결 여파는 지역 정치권으로도 확산했다.

여수지역 더불어민주당 소속 도·시의원들은 무죄 판결 직후 성명을 내고 당시 수사 책임자(순천지청 차장검사)였던 김회재 전 국회의원에게 "조작과 인권침해로 한 가정을 파괴한 검찰 수사에 대해 사죄하고 정계를 떠나라"라고 요구했다.

이에 대해 김 전 의원은 "당시 수사팀은 실체적 진실을 밝히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며 정치적 공세라고 반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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