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교한 미학 넘어 저돌적인 그루브로…데이브레이크, 마음을 '들입다' 쏟아내는 시간

기사등록 2026/03/27 05:54:44 최종수정 2026/03/27 06:53:30

새 싱글 '들입다(Dripda)' 발매 기념 인터뷰

[서울=뉴시스] 데이브레이크. (사진 = 미스틱 스토리 제공) 2026.03.27.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아무것도 안 하니까, 정말 아무것도 아닌 게 되더라고요."

밴드 '데이브레이크(daybreak)' 보컬 이원석의 이 짧은 회고는 한 밴드의 성실한 생존 보고서이자, 치열한 현장에서 길어 올린 실존적 고백에 가깝다.

'꽃길'이라는 화사한 수식어 아래 '페스티벌의 황제'로 군림해온 데이브레이크 멤버들이지만, 그 왕관의 무게를 견디는 방식은 의외로 투박하고 본능적이었다. 27일 오후 6시 발매하는 신곡 '들입다(Dripda)'는 바로 그 지점, 영리하게 정돈된 문법을 파훼하고 튀어나온 밴드의 '본능'에서 출발한다.

그동안 데이브레이크가 정교하게 설계된 '팝의 미학'을 구현해왔다면, 이번엔 '본능의 발산'에 방점을 찍었다. 리얼 드럼의 하우스 리듬 위에 라틴의 숨결을 얹은 사운드는 이전 신스팝적 정취를 계승하면서도, 훨씬 더 저돌적인 그루브를 형성한다.

최근 서울 한남동 미스틱 스토리에서 만난 이원석은 이를 두고 "삐쭉삐쭉 튀어나오는 것들에 대한 도전"이라고 정의했다.

이러한 도전은 멤버들의 치밀한 합주가 뒷받침됐기에 가능했다. 기타리스트 정유종은 "톱니바퀴가 잘 돌아가게 맞추느라고 다들 고생했다"며 "듣기에는 편할 수 있지만 연주가 꼼꼼해야 사운드가 제대로 나오기 때문"이라고 그간의 노력을 전했다. 베이시스트 김선일 역시 "베이스 라인을 만드는 데 이틀이나 걸릴 만큼 까다로웠지만, 그만큼 애정이 많이 가는 작업"이라고 했다. 키보디스트 김장원은 "데이브레이크에서 잘 안 쓰던 라틴 패턴을 건반으로 구현하려 했다"고 덧붙였다.
[서울=뉴시스] 데이브레이크 디지털 싱글 'drip_DA' 아트워크. (사진 = 미스틱 스토리 제공) 2026.03.20.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흥미로운 대목은 노래의 제목이자 핵심 정서인 '들입다'의 사용법이다. 세차게 쏟아붓는다는 이 부사는, 누군가에게 닿고자 하는 언어의 절박함을 대변한다. 타자에게 가 닿으려는 진심이 필연적으로 마주하는 투박한 진실이다. 이원석은 이 곡의 화자를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 아무 말이나 막 던지는 너드(Nerd)'로 설정했다. 그런데 김선일이 작업한 재킷 아트워크는 다채로운 색깔의 액체가 컵에서 쏟아지는 모습이다.

이원석은 "가사에서는 '너라는 컵 속에 마음을 쏟아버렸다'고 노래하지만, 정작 상대가 그 마음을 받아주지 않았음을 시사하죠. 일종의 '다친 결말'인데, 그 안에 숨은 위트가 데이브레이크다운 긴장감을 만든다"고 설명했다. 김선일은 "자칫 무거워질 수 있는 소재를 블루 계열의 색감과 팬시한 느낌으로 풀어내 위트를 주고 싶었다"고 부연했다.

데이브레이크와의 대화는 자연스레 밴드 사(史)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던 EBS 스페이스 공감 '헬로루키' 시절로 거슬러 올라갔다. 인디 뮤지션 발굴의 통로가 돼 준 이 프로그램은 4년 만인 올해 재개했다. 데이브레이크는 헬로루키 출신 대표팀 중 하나로 늘 언급된다. 

2009년 데이브레이크가 무대 위로 자신들을 투척했던 그 시절의 기억은 여전히 생생하다. 특히 연말 결선 당시 '작은 거인' 김수철과 함께했던 '일곱 색깔 무지개'의 컬래버레이션 무대는 밴드 신의 황금기를 상징하는 낭만적인 에피소드다.

이원석은 "그때 진짜 재밌었죠. 헤비메탈 밴드부터 어쿠스틱 듀오까지, 말도 안 되는 조합이 모여서 김수철 선배님의 노래를 나눠 불렀거든요. 머리를 길게 늘어뜨린 채 합주실에 모여 '이게 되나?' 싶으면서도 즐겁게 맞췄던 기억이 나요"라고 웃었다.
[서울=뉴시스] 데이브레이크. (사진 = 미스틱 스토리 제공) 2026.03.27.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데이브레이크는 후배 뮤지션들에게 "일단 자신을 던져보라"고 조언한다. 정답을 알 수 없어도 일단 행동하는 것이 밴드의 실존을 증명하는 방식이라는 뜻이다.

데이브레이크가 걷고 있는 또 하나의 중요한 길은 과거와 현재를 잇는 징검다리의 역할이다. 최근 사이키델릭 밴드 '산울림'의 '회상'을 커버하며 보여준 이들의 감각은 원곡자 김창훈으로부터 따뜻한 찬사를 끌어내기도 했다. 이는 단순히 옛 노래를 다시 부르는 차원을 넘어, 윗세대의 유산을 자신들의 문법으로 '환대'하는 행위다.

이원석은 "선배님들 노래를 저희 식으로 해석해서 발표하고, 기회가 된다면 같이 노래 부를 수 있는 점들을 계속 찍어나가는 거죠. 그게 오랫동안 활동하는 밴드가 보여줄 수 있는 예의 아닐까요?"라고 말했다. 서른 다섯 살 이후에 길이 풀린 이들이 60세까지 무대 위에서 땀 흘리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고 뜻을 모으는 과정에서, 밴드 음악의 지속 가능한 미래를 본다.

정체되지 않는 게 정체성인 데이브레이크는 결코 '고여 있는 밴드'가 아님을 이렇게 매번 재확인시킨다. "아무것도 안 하니까 아무것도 아닌 게 되더라"는 고백은, 역설적으로 끊임없이 자신을 새로운 무대로 투척해온 자들만이 가질 수 있는 흉터다. 마음을 '들입다' 쏟아부어 만든 이 활기찬 파동은, 이제 막 첫발을 뗀 후배들과 팬들의 심장 속에 깊고 선명한 물길을 남긴다. 데이브레이크는 새로운 소극장 라이브 시리즈 'ONL', 10년 넘게 이어온 시그니처 공연 '서머 매드니스(SUMMER MADNESS)'도 이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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