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각선 이 제도가 '4심제'로 작동해 법원 판결에 불복하기 위한 민원 창구로 전락할 것이라고 우려한다. 대법원 상고심 선고기일이 재판소원 시행 첫 날인 지난 12일 맞물린 점도 여론에 적잖은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뜻을 접기는 했지만, 그날 '대출 사기' 혐의로 의원직 상실형이 확정된 양문석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한 예다. 다음날 아침 재판소원의 부작용을 지적하는 언론 보도의 제목에 그의 이름을 올린 신문 보도가 적지 않았다.
하지만 되묻는다. 헌재에 접수된 모든 청구서가 과연 자리를 보전하려는 의도로 해석될 여지가 다분한 유력자의 재판 불복 시도로만 활용될까?
그렇지 않다. 재판소원의 목적에 부합하는 청구서가 훨씬 많다. 법원의 확정 판결로 한국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난민, 법원의 무죄 확정 판결로 응당 제때 받아야 했던 형사보상을 받지 못해 법원에 손해배상을 청구했으나 인정을 받지 못한 유족들도 청구서를 냈다.
매일 20건 가까이 접수되는 청구서 안에는 어떤 심정이 담겨 있는가. 뒤집어 생각하면 법원의 확정 판결에 대한 우리 사회의 믿음이 그만큼 떨어져 있다는 방증일 수 있다. 독일에서 오래 전부터 재판소원을 연구한 김진한 변호사는 페이스북에 "그 동안 알려지지 않고 존중받지 못했던 보통사람들의 기본권이 드디어 공동체의 전면에 나설 것이다"고 썼다.
사법부 수뇌부에 비판적인 한 전직 법관은 이런 취지로 말했다. "재판소원을 반드시 할 이유는 없지만, 하지 못할 이유도 없다." 헌재는 1988년 출범한 이후 줄곧 재판소원을 도입해야 한다고 밝혀 왔다. 법원의 판결도 공권력의 작용인데, 법원의 판결만 주권자 국민의 기본권 침해 문제에서 성역일 이유는 없다는 것이다.
지금은 새로 시작된 재판소원이 기본권 보호라는 취지를 살려 정착할 수 있도록 지켜볼 필요가 있다. 헌재의 역량을 걱정하는 지적은 새겨들을 측면이 있다. 정부는 예비비를, 국회는 예산과 인력 증원으로 추진을 뒷받침해야 할 책임이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38년 만에 숙원을 풀게 된 헌재의 역할이다. 당사자의 의지인 1호 청구가 아닌, 헌재의 의도가 반영된 1호 각하, 1호 심판, 1호 인용을 우리 사회가 납득할 수 있도록 해야만 할 것이다.
'너도 나도' 재판소원을 막으면서, 단지 재판의 취소만을 노리고 이 제도를 악용하는 법 기술자를 막을 운용의 묘도 보여야 한다. 지난 20일 사전심사를 주제로 열린 헌재의 내부 세미나에서는 미국 연방대법원의 사례를 본 받아 재판소원의 쟁점을 기본권 문제로 한정해야 한다는 취지의 제언이 나왔다. 이르면 24일 헌재는 재판소원 도입 후 첫 재판관 평의를 열 것으로 보인다. 소송지옥이나 4심제가 아닌, 기본권 보호의 새 장이 열렸다는 믿음을 보이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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