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이동권 지원 '그린라이트' 한정재 상임이사
"우리가 하는 프로그램 없어도 될만한 사회가 목표"
[세종·서울=뉴시스]박광온 구무서 기자 = 지난 12일 오후 2시 서울 영등포구 이룸센터 회의실. 장애인 이동권을 지원해주는 사회적기업 '그린라이트' 한정재 상임이사는 기업의 궁긍적 목표에 대해 "우리가 하는 프로그램이 없어도 될만한 사회를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간 우리 사회에서 정책화됐던 장애인 이동권 사업들은 전동휠체어나 차량 개조처럼 보급 중심의 지원 정책이 주류였다. 그러나 이 같은 사업들은 보급 대상을 선별하는 과정과 보급 이후 관리 등이 까다롭다는 점이 한계로 지적된다.
이에 한정재 이사는 "꼭 개인 소유가 아니라 필요할 때 공유할 수 있는 체계가 좋지 않을까"라는 문제의식에서 '그린라이트'를 만들게 됐다고 설명했다.
현재 그린라이트는 장애인 등 교통약자를 위한 이동 지원과 문화·여가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대표 사업으로는 장애인 여행 지원 프로그램 '초록여행'과 휠체어 동력보조장치 대여 서비스 '휠셰어'가 있다.
한 이사는 "전동휠체어는 쓰기는 편하지만 이동이 불편하고, 수동휠체어는 가볍지만 장거리 이동이 어렵다"며 "두 기능을 보완할 수 있도록 수동휠체어에 장착하는 동력보조장치를 필요할 때 대여해주는 것이 휠셰어 사업"이라고 전했다.
휠셰어는 현재 서울·인천·제주·강릉 등에서 운영되고 있다. 서울에서는 이용자 가정까지 직접 장비를 배송하는 방식으로 서비스를 제공한다. 하루 최대 8명 정도가 이용할 수 있으며, 인천과 제주 공항에서는 하루 약 10명 수준이 최대 서비스 규모다.
대여 장비가 이미 예약돼 있을 경우에는 다른 제품을 자동으로 추천하는 시스템도 갖췄다. 다만 하루 서비스 가능 인원을 넘어설 경우에는 직접 사무실로 방문해 장비를 받을 수 있도록 안내하고 있다.
2018년 시작된 이 사업은 누적 이용자 1만6376명, 사용일 7만7139일을 기록했다. 장애인과 정보 취약계층을 위한 '배리어프리 앱 개발 콘테스트'를 통해서는 73개 앱이 출시됐다.
한 이사는 "서비스 수요는 더 많지만 민간 기업이나 작은 기관이 자체 자원만으로 확대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며 "공공 영역과 결합해 더 많은 지역에서 운영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린라이트의 또 다른 대표 사업인 '초록여행'은 장애인 가족 여행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이다. 차량과 여행 경비를 지원해 이동이 어려운 장애인이 가족과 함께 여행할 수 있도록 돕는다.
2012년 시작된 초록여행에는 지난달 기준 2만2860가족, 약 10만8022명이 참여했다. 여행일수로는 5만4467일에 달한다.
사업을 운영하며 가장 보람을 느끼는 순간은 이동 기기를 이용자에게 전달할 때다.
한 이사는 "그간 경제적 어려움으로 필요한 이동기기를 살 수 없던 분들, 꼭 필요한데 민간에서 렌트하는 방식으로 빌렸던 분들이 많다"며 "그런 분들의 경제적 부담 완화했다는 부분에서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장애인 당사자뿐 아니라 동행 가족의 만족도도 높다.
그는 "연로한 부모님을 모시고 처음 제주 여행을 다녀온 가족, 돌아가시기 전 마지막 여행을 다녀온 분 등 다양한 사연을 접한다"며 "홈페이지에 이용 후기를 남겨주는 분들도 많아 큰 힘이 된다"고 했다.
초록여행 참여 경험이 새로운 진로로 이어진 사례도 있다.
한 이사는 "대학생들이 전국 문화재의 장애인 접근성을 조사하는 프로젝트에 참여한 적이 있는데, 그 경험을 계기로 장애인 전용 여행사를 창업한 분도 있다"고 전했다.
다만 현장에서 느끼는 한계도 분명하다. 이용자들은 무엇보다 서비스 지역 확대를 가장 많이 요구한다.
또 여행이나 이동기기 대여의 특성상 장비를 더 일찍 받고 늦게 반납할 수 있기를 바라는 경우가 많지만, 현재 인력과 운영 체계로는 대응이 쉽지 않다는 설명이다.
그는 우리나라 교통약자 이동권 정책에 대해 "인프라 중심으로 설계돼 있다"고 지적했다.
한 이사는 "과거에는 인프라가 부족해 시설을 만드는 데 집중했지만, 부처·제도·예산이 각각 분절돼 실제 이용 과정에서 연결이 잘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예를 들어 열린 관광지로 조성된 관광지라도 해당 지역으로 이동할 교통수단은 다른 정책 영역에 속해 있어 이용 과정에서 단절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한 이사는 "휠셰어 서비스는 인천공항 제1터미널에 있는데 많은 항공편이 제2터미널로 이동했다"며 "휠체어 이용자가 제1터미널에서 장비를 빌려 제2터미널로 이동하려면 장콜 차량 이용 규정 때문에 중간 경유가 불가능해 이용이 어렵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처럼 제도는 있지만 실제 사람의 이동 흐름을 고려하지 못한 경우가 많다"며 "인프라 중심 정책에서 사람 중심 정책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한 이사는 앞으로의 목표에 대해서는 "그린라이트에서 하는 일들이 누구나 누릴 수 있는 공공체계로 가는걸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모든 차량이 유니버설 디자인으로 설계되고 이동 환경이 개선된다면 초록여행 같은 프로그램도 필요 없어질 것"이라며 "누구나 별도의 장치 없이 이동과 여행을 누릴 수 있는 사회가 궁극적인 목표"라고 밝혔다.
*이 기사는 한국장애인개발원과 공동 기획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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