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전재경 기자 = "그림 팔아서 돈 벌려고 한다는 오해요? 이번 전시 준비에 재료비만 1500만 원 이상 들었습니다. 석 달간 매일 새벽 5시까지, 하루 12시간씩 쏟아부은 노동력이면 차라리 밤새워 드라마를 찍는 게 경제적으로는 훨씬 낫죠."
데뷔 23년 차 베테랑 배우이자, 12년 차 화가 이태성(40)의 붓끝은 단호했다. 13일 서울 강남구 갤러리아 백화점에서 그를 만났다. 현재 이곳에서는 그의 15번째 개인전 '리블룸(REBLOOM): 화전몽(花蝶夢)'이 열리고 있다.
◆"보수적인 미술계의 차가운 시선…돌파구는 결국 시간"
이태성과 미술의 인연은 12년 전 수도방위사령부 군 복무 시절, 적막한 도서관 사서 근무 중 무료함을 달래려 연필을 든 것에서 시작됐다.
제대 후 본격적으로 캔버스 앞에 섰고, 기부 목적의 첫 전시를 시작으로 어느덧 15번째 개인전을 열었지만 그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연예인 프리미엄'을 노린 가벼운 외도가 아니냐는 세간의 잣대 때문이었다.
"미술계가 워낙 층이 두텁고 보수적이다 보니 초반에는 부정적인 시선이 많았어요. 인지도만으로 진정성 없이 전시를 여는 일부 사례들 때문에 일반 작가들이 상대적 박탈감을 느낀다는 비판도 있었고, 저 역시 그런 공격 아닌 공격을 받았죠."
하지만 이태성이 선택한 정면 돌파의 무기는 '시간'이었다. 그는 "미술계가 아무리 보수적이라 해도, 꾸준히 하는 사람에겐 그럴 만한 진정성과 이유가 있다고 믿었다"며 "단순한 취미의 연장선이었다면 1~2년 하다 그만뒀을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12년이라는 시간과 3천여 점의 습작이 그의 진정성을 대변하는 방패가 된 셈이다.
◆"그림은 내 마음의 자화상"
올해 선보인 신작 '화전몽'은 꽃과 나비, 꿈의 경계를 은유한다. 이태성은 "관람자의 해석에 따라 흩날리는 꽃잎으로 보이기도, 날아다니는 나비의 날갯짓으로 보이기도 한다"며 "경기가 어렵고 팍팍한 시기인 만큼, 사람들에게 밝고 희망적인 에너지를 전하고 싶어 새롭게 기획했다"고 설명했다.
수익을 묻는 질문에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마이너스다"라고 호탕하게 웃어 보인 그는 그림을 놓을 수 없는 이유로 '창작의 희열'과 '자아 성찰'을 꼽았다.
"배우에게 연기는 대본이라는 도구가 있지만, 회화는 백지상태에서 모든 것을 제가 기획하고 연출해야 하는 고도의 창작 작업입니다. 작품이 안 나와도 상대 배우나 투자 환경 탓을 할 수 없죠. 부담감도 크지만 그만큼 자유롭습니다."
그는 캔버스를 '자화상'에 비유했다. "작업을 하다 보면 제 감정 상태와 태도가 그대로 묻어납니다. '내가 이 터치에서 게을렀구나' '왜 이런 컬러를 썼을까' 끊임없이 마주하죠. 마음의 근력을 키우는 명상이자, 끝이 없는 게임 같아요."
◆배우, 화가 그리고 아빠 이태성의 다음 스텝
올가을 크랭크업을 앞둔 한일 합작 타임슬립 영화 등 본업인 배우로서의 행보도 거침이 없다. 최근에는 대중과 소통하기 위해 유튜브 채널 '이태성클라쓰'를 개설했다. 다방면에서 질주하는 그에게 또 다른 든든한 원동력은 훌쩍 자란 중학교 3학년 아들이다.
"아들 키가 벌써 185~186㎝로 저보다 큽니다. 나를 역전한 아들의 키를 볼 때마다 부모님이 느끼셨을 든든함을 이제야 이해하죠. 할아버지, 할머니와 지내는 시간이 많아 일찍 철이 든 것 같아 고마운 마음입니다."
항상 아들에게 '친구 같은 아빠'라는 그는 "아들이 전교 1등을 놓치지 않을 정도로 공부를 잘하는데, 장래 희망은 판검사, 의사에서 최근엔 래퍼까지 계속 바뀐다"고 웃음을 지었다.
배우로, 화가로, 또 아빠로 꽉 찬 40대를 보내고 있는 이태성의 시선은 더 먼 곳을 향해 있다.
"연기든 그림이든 정답과 '커리어 하이'가 없기에 계속 질문을 던지며 나아가는 중입니다. 배우로서는 강렬한 장르물에 계속 도전하고, 70대가 되면 제 이름으로 된 작은 미술관을 짓는 게 화가로서의 최종 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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