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이로제 걸릴 듯"…'소음테러'에 세종 공무원들 불만

기사등록 2026/03/11 07:30:00 최종수정 2026/03/11 07:40:24

스피커 음악 하루종일 반복…청사 내부까지 소음

17일째 항의 시위 중…민원 잇따라도 제재 어려워

[세종=뉴시스] 세종시 어진동 정부세종청사 중앙동 앞에서 전남 함평군 주민단체가 국립축산과학원 축산자원개발부 이전 문제와 관련해 항의 시위를 벌이고 있다.  *재판매 및 DB 금지
[세종=뉴시스]성소의 기자 = 지난 10일 세종시 어진동 정부세종청사 중앙동.

청사 앞 도로에는 트럭 5대가 줄지어 서있었고, 차량에 달린 스피커에서는 가사를 알아듣기 힘든 음악이 하루종일 반복 재생됐다. 소음은 청사 내부까지 울려퍼졌다.

"함평군민 기만하는 빈손 이전 결사반대", "정착사업 안 주면 절대 못 들어온다", "껍데기뿐인 토지보상, 우리 생업 다 끊긴다" 등 형형색색의 문구가 적힌 현수막들도 곳곳에 걸려있었다.

행정안전부와 재정경제부가 입주한 이곳 앞에서는 지난달 23일부터 전남 함평군 주민단체가 국립축산과학원 축산자원개발부 이전 문제와 관련해 예산 당국과 농림축산식품부를 상대로 17일째 항의 시위를 벌이고 있다.

정부는 충남 천안에 있는 국립축산과학원 축산자원개발부를 전남 함평으로 이전할 계획인데, 주민들은 지역 피해에 대한 지원 대책이 미흡하다며 반발하고 있다. 이들은 정부가 스마트팜 조성 등 각종 지역사업과 보상 방안을 먼저 확정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청사 앞은 오래 전부터 민원인과 시민단체들의 '단골 시위장소'로 꼽히는 곳이다. 부처들이 밀집해있어 정책 결정권자나 공무원에게 항의나 요구를 직접적으로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세종=뉴시스] 세종시 어진동 정부세종청사 중앙동 앞에서 전남 함평군 주민단체가 국립축산과학원 축산자원개발부 이전 문제와 관련해 항의 시위를 벌이고 있다.  *재판매 및 DB 금지
그 과정에서 장례식장에서나 들릴 법한 장송곡을 틀거나, 한 음악을 무한 반복하는 식의 자극적인 시위 방식도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과거 교육부 앞에서는 한 민원인이 마이클 잭슨의 'Beat It'을 확성기로 무한 반복하면서 장기간 시위를 벌인 적도 있었고, 기후에너지환경부 정문 앞에서는 한 시민단체가 향을 피우고 삼베 옷을 입는 등 장례 의식을 연상시키는 식의 집회를 이어간 사례도 있었다.

하지만 청사에서 근무하는 공무원들은 연일 이어지는 소음에 피로감을 호소하고 있다.

한 공무원은 "장관들은 대부분 서울에 있고, 실제로 이 소음을 견뎌야 하는 건 여기 근무하는 하위직 공무원들"이라며 "소음 때문에 노이로제에 걸릴 지경"이라고 말했다.

또다른 공무원은 "차라리 직접 시위를 하지, 소리만 틀어놓고 정작 당사자들은 보이지 않는다"며 "이명 증상이 생길 것 같다"고 했다.

시위 현장에는 “천안은 개발 잔칫집, 함평은 지역소멸 초상집”이라는 현수막이 걸려있는데 이에 맞춰 장송곡이 흘러나오기도 한다.

시위 현장에서 약 200m 떨어진 곳에는 어린이집도 위치해있어 영유아들까지 이 같은 소음에 그대로 노출되고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한 공무원은 "어린이집 아이들이 장송곡 선율을 흥얼거린다는 얘기가 있다"고 했다.

[서울=뉴시스] 김진아 기자 =  지난해 11월 26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로 공무원들이 출근하고 있다. 2025.11.26. bluesoda@newsis.com

이런 탓에 세종남부경찰서에는 집회 소음과 관련한 민원이 빗발치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지난달 23일부터 이달 6일까지 세종청사 중앙동 앞 시위와 관련해 접수된 민원은 20건이 넘는다. 국민신문고를 통해 접수된 민원도 2건가량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민원이 접수될 때마다 현장에 출동해 소음을 측정하고 있지만, 제재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고 한다.

현행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에 따라 주거지역이나 학교 주변은 주간 65㏈(데시벨)을 넘으면 경찰이 확성기 사용 중지 등의 조치를 취할 수 있지만, 정부청사와 같은 기타 지역은 낮 기준 80㏈까지 허용되기 때문이다.

또 초·중·고등학교 주변에서 벌이는 집회와 시위는 제한될 수 있지만, 어린이집은 법적으로 '보육시설'로 분류돼 이러한 보호 대상에서 제외돼있다.

경찰 관계자는 "집회 소음이 시끄럽다거나 철수시켜 달라는 민원이 들어오고 있지만, 집회는 허가제가 아니라 신고제라 신고가 접수되면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막을 수는 없다"며 "수시로 현장에서 소음을 측정하고 있지만, 현재까지 법정 기준을 넘은 적은 없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한 공무원은 "민원인들이 공무원은 괴롭혀도 되는 존재로 인식하는 것 같다"며 "아무도 감싸주지 않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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