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진타오 전 주석, 간쑤성에서 중앙으로 발탁한 것으로 유명
후 전 주석에 상무위원 자리도 인계, 국가주석 등극 기반 닦아줘
[서울=뉴시스] 구자룡 기자 =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4일 쑹핑 전 정치국 상무위원이 별세했다고 보도했다.
통신은 쑹 전 상무위원이 이날 오후 3시 36분(현지 시각) 베이징에서 향년 109세로 병환으로 숨졌다고 보도했다.
통신은 “중국 공산당의 뛰어난 당원이자 오랜 기간 충성을 다한 공산주의 투사, 탁월한 프롤레타리아 혁명가이자 정치가, 당과 국가의 뛰어난 지도자”라고 쑹 전 상무위원을 소개했다.
1917년 4월 산둥성 주현에서 태어난 그는 19세에 혁명 활동을 시작했고 1937년 20세에 공산당에 입당했다.
그는 다른 혁명 원로 1세들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았다고 중국 언론은 전했다.
입당하기 전인 1934년부터 1937년까지 베이징대학 농과대학, 칭화대학, 그리고 서남연합대학에서 공부했다.
항일 전쟁 발발 후 쑹핑은 혁명의 성지인 옌안으로 가서 그는 1938년부터 1947년까지 중앙당교 간부로 근무했으며 옌안 마르크스-레닌주의 학원에서 조직부 부장과 교육부 부장을 역임했다.
1989년 6월부터 1989년 12월까지 공산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상무위원과 중앙위원회 조직부 부장 등을 역임했다.
1990년부터 1998년까지는 중국가족계획협회 회장 등도 맡았다.
쑹 전 상무위원은 후진타오 전 국가주석을 발탁해 후에 국가주석까지 오르게 한 것으로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자신도 9년간 간쑤성에서 근무한 쑹 전 위원은 1979년 어느 날 간쑤성 당위원회 제1서기 시절 성 건설위원회 설계관리부 부부장이던 후진타오의 업무 보고를 보고 깊은 인상을 받았다.
쑹의 후견으로 후진타오는 간쑤성에서 베이징 중앙 정치 무대로 발탁됐고, 공산당 최고지도부인 정치국 상무위원 자리도 후 전 주석에게 물려줬다.
쑹핑의 후진타오 발굴을 두고 당시 중국 언론은 “중국 정치계 최고의 인재 발굴가”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고 전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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