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급·비축유·트레이더 대응이 상승폭 제한
호르무즈 장기 봉쇄 땐 100달러 가능성
3일(현지 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전문가들이 예상한 최악의 시나리오가 상당 부분 현실화됐다"며 "그러나 원유 가격은 배럴당 100달러를 빠르게 돌파할 것이란 시장의 예측을 뒤엎고 있다"고 보도했다.
최근 이란의 보복 공격으로 주요 에너지 시설이 큰 타격을 입었다. 카타르는 세계 최대 액화천연가스(LNG) 공장 가동을 중단했고, 사우디아라비아는 최대 정유소 공장을 멈췄다. 호르무즈 해협도 사실상 봉쇄되면서 유조선 150척 이상이 해협 밖에서 대기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유가는 이번 전쟁 발발 이후 약 30% 이상 올랐고, 국제 기준물 브렌트유 가격은 이날 장중 배럴당 85달러를 기록했다. 이는 2024년 7월 이후 최고 수준이다.
그러나 이번 전쟁으로 브렌트유 가격 배럴당 100달러를 빠르게 돌파할 것이라는 전망과 달리, 석유 시장에서 공황 조짐은 아직 나타나지 않고 있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당시 유가는 한때 128달러까지 치솟았고, 1979년 이란 혁명과 1990년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 당시 유가가 각각 160%, 180% 급등한 것과 비교하면 상승폭은 제한적이라는 평가다.
에너지 데이터업체 웰리전스의 애널리스트 카를로스 벨로린은 "투자자들은 전쟁이 얼마나 지속될지 지켜보며, 신중하게 반응하고 있다"며 "아직 긴장이 완화되는 신호는 없고 오히려 이란이 상황을 악화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대체 수단 있고 전쟁 이전부터 유가 상승에 베팅
유가 상승폭이 제한적인 이유는 현재 글로벌 경제 구조가 과거와 달라졌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선진국의 석유 의존도가 낮아진 데다 미국이 세계 최대 원유 생산국으로 부상했고 가이아나·브라질·캐나다 등에서도 공급이 늘고 있다.
여기에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인플레이션 억제를 위해 전략비축유 방출 등에 나설 가능성도 유가 상승을 제한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아울러 코로나19 팬데믹과 러·우 전쟁을 겪으면서, 원유 트레이더들이 유조선 항로를 빠르게 조정하는 등 석유 산업이 위기 대응 능력을 강화한 것도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트레이더들은 현재 상황에 충분히 대비해 왔다는 평가다. 한 선임 트레이더는 "이번 전쟁은 지난해 6월 이스라엘·이란의 '12일 전쟁'보다 훨씬 분명한 예고 신호가 있었다"며 "많은 시장 참여자들이 전쟁 전부터 유가 상승에 베팅하는 포지션을 취했다"고 말했다.
각국 정부가 비축한 원유가 시장의 완충 장치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도 이번 유가 상승폭을 제한한 요인으로 꼽힌다. 보텍사 분석가들에 따르면 중국은 현재 추가 공급 없이도 124일 동안 사용할 충분한 원유를 비축하고 있으며, 전 세계 원유 재고는 역사적 기준에 비하면 낮지만, 여전히 20억 배럴에 달하는 규모다.
◆유가, 호르무즈 해협 봉쇄 기간·심각 정도에 따라 달라져
다만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설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 유가 향방은 공급 차질이 얼마나 오래, 심각하게 이어지느냐에 따라 크게 달라질 전망이다.
MST파이낸셜 애널리스트 사울 카보닉은 "호르무즈 해협이 2주간 봉쇄되면 2억5000만 배럴 이상의 원유가 발이 묶인다"며 "일부 걸프 국가는 저장 용량이 부족해져 원유 생산을 중단해야 하고, 이 경우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가 넘어설 수 있다"고 내다봤다.
S&P글로벌 에너지의 왕주웨이도 "해협 봉쇄가 장기간 지속되면 100달러를 넘어설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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