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당 땐 공개, 총리 되니 은폐?" 앱스타인 후폭풍에 英총리 사면초가

기사등록 2026/02/25 10:45:52 최종수정 2026/02/25 11:12:23
[런던=AP/뉴시스]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가 9일(현지 시간) 런던 다우닝가 10번지 총리 관저에서 나와 차량에 올라타고 있다. 2026.02.10.
[서울=뉴시스] 박영환 기자 =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가 과거 야당 시절 정부 기밀을 강제 공개하기 위해 스스로 초석을 놓았던 ‘의회 강제 공개(겸허한 청원)’ 절차에 발목이 잡히며 정치적 위기를 맞았다.

24일(현지시간) 영국의 텔레그래프에 따르면 영국 정부는 엡스타인 연루 의혹을 받는 만델슨 전 주미대사의 임명 과정과 행적을 담은 문서를 내달 중 공개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만델슨이 공직 비위 혐의로 전격 체포되면서, 런던 경찰청은 수사에 지장을 줄 수 있는 민감한 이메일 등 일부 자료의 공개 유예를 강력히 요청하고 나섰다.

문제는 영국 의회가 이미 지난 2월 야당인 보수당이 주도한 '겸허한 청원(Humble Address)' 절차를 통해 해당 문서의 전면 공개를 의결했다는 점이다. 린제이 호일 하원의장은 "경찰은 의회의 결정에 관여할 권한이 없다"며 의회 주권이 수사권보다 우선함을 명확히 했다.

‘겸허한 청원’은 국왕을 통해 정부의 기밀 문서를 제출받는 영국 의회만의 독특한 법적 절차다. 일반 결의안과 달리 강력한 법적 구속력을 지녀, 정부가 감춘 민감한 자료를 끌어내는 야당의 강력한 무기로 통한다.

스타머 총리에게 이번 사안은 더욱 뼈아픈 실책이 될 전망이다. 과거 야당 시절 민감한 정부 문서 확보를 위해 본인이 즐겨 사용했던 '겸허한 청원' 방식이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기 때문이다. 자료 공개를 늦추면 '은폐 의혹'에, 전면 공개하면 '수사 방해' 비판에 직면하게 되는 진퇴양난의 형국이다.

정치 전문가들은 이번 갈등이 단순한 서류 공개 문제를 넘어 스타머 총리에 대한 사실상의 불신임 투표로 번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특히 선거 패배 전망과 당내 반발까지 겹치면서, 본인이 고안한 정치적 무기에 본인이 다치는 '자업자득'의 상황이 총리의 리더십을 최대 고비로 몰아넣고 있다고 텔레그래프는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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