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반지 하나로 되돌아간 1999년 빈…문지혁 '나이트 트레인'

기사등록 2026/02/24 08:00:00 최종수정 2026/02/24 09:36:25

20대 나, 40대 나, 여행중 소설이 3중 교차하는 액자 구조

[서울=뉴시스] '나이트 트레인' (사진=현대문학 제공) 2026.02.24.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조기용 기자 = "이것은 여행에 관한 기록이다. 하지만 인생에 여행 아닌 것이 존재할 수 있나"

작가 문지혁은 '나이트 트레인'(현대문학)을 이 질문으로 시작한다. 작품은 1999년 유럽으로 3주 간 배낭여행을 떠난 20대 청년, 그가 여행 중 쓴 소설, 그리고 2024년 40대가 되어 자신의 20대를 돌아보는 현재의 '나'가 교차하는 액자 구조다. 세겹의 시간과 자아가 겹쳐지며 하나의 서사를 이룬다.

이번 작품 역시 작가가 천착해온 '오토픽션'(자전적 이야기에 허구적 내용을 더한 소설)이다. 자전적 경험 위에 허구를 덧입힌 형식이다. 소설은 'DAY 9200 서울'로 시작해  'DAY 1 런던'으로 되돌아가고, 다시 'DAY 9286 서울'로 닻을 내린다. 20대의 출발점과 40대의 현재가 마주서는 순간이다.

문지혁은 "소설을 쓰는 동안, 세기의 끝과 내 20대의 시작이 교차하던 1999년으로 돌아가, 흐릿한 기억과 선명함 사이에 적힌 이야기를 찾아 헤맨 밤이 많았다"고 고백한다.

여전히 고단한 밤이면 그는 유럽을 떠돌던 '20대의 문지혁'을 떠올린다. 20년이 흘렀지만, 과거의 자신과의 대화는 끝나지 않았다.

소설의 출발점은 2024년 9월 6일. 첫 문장을 쓴 뒤 한 달 여가 지난 10월 26일 두 번째 문장을 이어간다. 집필을 재촉한 것은 아버지가 보낸 택배 상자였다. 대학시절 즐겨 쓰던 소니 CD플레이어, 빛 바랜 군복, 다이어리와 대학 교재, 사진 시집…20대를 환기하는 사물들 ㅍ속에서 한때의 감정이 되살아난다.

그 중에서도 결정적 계기는 은반지다. 고등학교 시절 잠시 만났던 'O'가 오스트리아 빈 여행 중 사서 건넨 작별선물이다. 작가는 자신이 은반지를 좋아한다고 말했던 기억조차 흐릿하지만,  'O'는 그것을 기억했다. 인연은 오래가지 못했다.

"학교 안 극장에 갔다가 새 남자친구와 팔짱을 끼고 나타난 O를 보았다. 나는 그 순간 유럽에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목적은 하나였다. 빈에 가기 위해서." ('DAY 9200 서울' 중)

사소한 사물이 한 사람을 다시 길 위로 부른다. 유럽 여행에서 버리고 온 줄 알았던 은반지는, 우연히 패딩 주머니에서 발견되며 또 한번 시간을 흔든다. 그리고 그는 마침내 결심한다.

"나는 동그란 가로등 불빛을 벗어나 그림자 속으로 멀어지는 E, 아니 은혜의 뒷모습을 지켜보다가 뒤돌아 한 번 더 수거장으로 향한다. 반지를 버리고, 이 여행을 끝내기 위해." ('DAY 9286 서울' 중)

이 소설에서 여행은 유람이 아니라 회상의 장치다. 실패와 미숙함을 통과하며 비로소 현재의 자신에 도달한 과정이다. 사랑을 경험한 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지나왔을 법한 감정을, '여행'이라는 서사와 '소설'이라는 구조 속에서 겹쳐 놓는다.

'나이트 트레인'은 지난해 1월호 '현대문학'에 발표된 작품을 퇴고한 것으로, '핀 시리즈' 57번째 권으로 출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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