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계엄 해제 후에도 "계엄 두번, 세번 하면 되니 계속 하라"

기사등록 2026/02/23 10:38:09

윤석열 내란우두머리 1심 판결문서 인정

"4명이서 1명씩 들쳐 업고 나와라" 지시

尹 "총 쏴서라도 문을 부수고 들어가라"

실패하자 병력 탓…"1000명 보냈어야지"

[서울=뉴시스] 사진공동취재단 =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해 9월26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특수공무집행방해,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등 혐의 사건 첫 공판에 출석해 있다. 2026.02.23.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장한지 기자 = 윤석열 전 대통령이 국회의 비상계엄 해제 요구 의결 전후로 군 지휘부에 극단적인 무력행사를 직접 지시한 구체적인 정황이 판결문을 통해 드러났다. 특히 국회 의결로 계엄이 해제된 직후에도 "계엄을 두세 번 더 하면 된다"며 작전 지속을 명령한 것으로 파악됐다.

23일 윤 전 대통령의 내란 우두머리 혐의 사건 판결문에 따르면 윤 전 대통령은 비상계엄 선포 다음날인 지난해 12월 4일 0시 32분경부터 이진우 전 수도방위사령관에게 수차례 비화폰으로 전화를 걸어 국회 진입을 압박했다.

병력이 시민들에 막혀 진입하지 못한다는 보고를 받자 윤 전 대통령은 "본회의장으로 가서 4명이서 1명씩 들쳐 업고 나오라고 해", "야, 4명이 1명씩 데리고 나올 수 있지 않냐"며 구체적인 연행 방식까지 지시했다.

당시 현장 지휘관인 이 전 사령관은 법정에서 "대통령이 혼잣말로 화를 내며 짜증을 냈고 언성이 높았다"며 "문 부수고 들어가라는 지시에 굉장히 실망했고, 세계 언론에 이상하게 나가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증언하기도 했다.

재판부는 국회가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가결한 4일 새벽 1시 3분 이후의 대응도 눈여겨봤다. 윤 전 대통령은 1시 6분경 다시 이 전 사령관에게 전화를 걸어 진입을 재촉했다.

이 전 사령관이 "사람이 너무 많아 문 부수기가 불가능하다"고 보고하자, 윤 전 대통령은 "총을 쏴서라도 문을 부수고 들어가서 끌어내라"고 지시했다.

당시 전화를 전달했던 부관은 "대통령이 서너 번 큰 소리로 '어? 어?' 하며 대답을 강요하듯 몰아붙였다"고 당시의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전했다.

국회 의결로 계엄의 효력이 상실돼야 하는 시점에도 윤 전 대통령의 지시는 계속됐다. 새벽 1시 13분경 통화에서 그는 "지금 190명이 들어와서 의결했다는데 실제로 그 인원인지 확인도 안 되니 계속하라"며 헌법적 절차를 부정했다.

특히 그는 "결의안이 통과됐다고 하더라도 내가 두 번, 세 번 계엄하면 되니까 너네는 계속해라"라며 추가 계엄 선포 가능성까지 언급하며 군 병력의 철수를 막으려 했다.

이후 합동참모본부 전투통제실을 방문한 윤 전 대통령은 김용현 당시 국방부 장관에게도 "거봐 (병력이) 부족하다니까. 1000명은 보냈어야지, 이제 어떡할 거야?"라며 국회 장악 실패의 책임을 병력 규모 탓으로 돌렸다.

또한 옆에 있던 관계자들은 윤 전 대통령이 김 전 장관에게 "그걸 핑계라고 대요? 그러게 사전에 (체포 인원) 잡으라고 했잖아요"라며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고 증언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부장판사 지귀연)는 지난 19일 오후 3시 형사대법정 417호에서 윤 전 대통령의 내란 우두머리 혐의 사건 1심 선고기일을 열고 윤 전 대통령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형법 제87조에 규정된 내란죄는 국토를 찬탈하거나 국헌을 문란하게 할 목적으로 폭동한 자를 처벌한다고 규정했다. ▲국헌문란의 목적 ▲폭동이 인정되면 내란죄가 성립하는 것이다.

재판부는 우선 '국헌문란의 목적'이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국회의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도 국헌문란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계엄군을 보내 국회의사당을 봉쇄하고 의원들의 출입을 막은 행위 등으로 국회의 의결권 행사를 불가능하게 한 실질적 마비 시도였다는 점은 내란죄 성립의 결정적 근거가 됐다.

특히 군 철수 시점을 정하지 않은 채 대통령의 결단에만 맡긴 점은 '상당 기간' 국회의 기능을 정지시키려 한 행위로 중형 선고의 핵심적 사유로 다뤄졌다.

아울러 내란죄의 실행 행위인 '폭동'에 대해 재판부는 '최광의(最廣義)의 폭행·협박'을 적용했다.

반드시 유혈 낭자한 전투가 벌어져야 하는 것이 아니라, 다수인이 결합해 '한 지방의 평온을 해칠 정도의 위력'을 행사했다면 폭동으로 인정된다는 것이 재판부의 판단이다.

무장 병력이 헬기를 타고 국회에 난입하고, 담장을 넘어 진입하며 관리자들과 몸싸움을 벌인 모든 행위가 폭동으로 포섭됐다.


◎공감언론 뉴시스 hanzy@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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