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4년, '소련 대조국 전쟁'보다 길다"
'진지전' 3년차…러군, 천천히 전진 중
징집 난항…양국 후방타격 비중 커져
[서울=뉴시스] 김승민 기자 = 2022년 2월 러시아군 전면 침공으로 시작된 우크라이나 전쟁이 24일(현지 시간) 만 4년을 맞는다. 외교 전문지 포린어페어스는 "1941~1945년 '소련 대조국 전쟁'보다 긴 전쟁"이라고 했다. 소련 대조국 전쟁은 제2차 세계대전(1939~1945년) 가운데 소련이 1941년 6월 22일 나치 독일의 침공을 받은 뒤 1945년 5월 9일 전승일까지의 독-소 전쟁을 말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평화 협상을 중재하고는 있지만, 여전히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있는 양국은 협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한 영토 쟁탈전을 이어가고 있다.
전선이 사실상 돈바스(도네츠크·루한스크) 요새 지대에 교착된 상황에서 무의미한 소모전이 장기화되면서, 4년간 180만명에 이르는 양국 병력이 전사하거나 부상당한 것으로 파악된다.
앞서 러시아군은 침공 당일 9시간 만에 수도 키이우주 북부 경계에 도달하는 '초(超)전격전'을 펼치면서 우크라이나 조기 정복을 자신했다. 아예 전쟁이 아닌 '특별군사작전'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우크라이나군은 미국의 정보·군수 지원, 러시아군 보급 실패 등에 힘입어 총공세를 저지했다. 러시아가 키이우에서 철수하면서 전선은 동부 요새 지대와 남부 드니프로강을 기준으로 교착되기 시작했다.
결국 개전 후 약 1년이 경과한 2023년 초부터 전쟁 양상이 완전히 바뀌었다. 기갑 전력으로 방어선을 돌파하는 '기동전'에서 드론을 앞세우고 병력은 수m 단위의 일진일퇴를 반복하는 '진지전'이 됐다.
2024년 8월 우크라이나군이 러시아 본토 쿠르스크를 약 1300㎢ 점령하면서 전선이 일시적으로 변했지만, 러시아가 북한군까지 투입한 끝에 약 9개월 만인 지난해 4월 탈환에 성공하면서 원위치됐다.
◆동부 진지전 3년째…러, 1년간 우크라 영토 0.9% 점령
전선 상황을 일일 단위로 분석하는 미국 전쟁연구소(ISW)에 따르면, 러시아군 주력은 2026년 2월 현재도 돈바스 전선에 배치돼 있다.
평화 협정 본격화 전 돈바스 미점령 영토를 최대한 확보해 영토 협상력을 최고조로 끌어올리겠다는 구상이다.
러시아군은 돈바스 전선 병력을 크게 도네츠크, 하르키우, 그리고 두 지역 사이를 흐르는 오스킬 강의 세 갈래로 나눠 투입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포크로우스크·코스탼티니우카·슬로뱐스크 등 요새 축선을 뚫어 도네츠크 점령을 마무리하고, 오스킬 강을 넘어 하르키우에 교두보를 확보해 자국 영토 벨고로드 공격을 막을 '완충지대'를 구축한다는 것이다.
뉴욕타임스(NYT)는 10일 러시아군이 향후 수개월 내 동부 요새 지대의 포크로우스크·미르노흐라드와 남동부 자포리자 인근의 훌랴이폴레의 3개 거점을 점령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하기도 했다.
그러나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분석 결과 러시아군이 2024~2025년 돈바스 전선에서 하루 평균 70m 전진하는 데 그쳤다는 점을 고려하면, 연내 점령은 어렵다는 관측도 적지 않다.
ISW 분석에 따르면 2월 중순 기준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영토의 19.5%를 장악하고 있는데, 전년 동기(18.6%) 대비 0.9%포인트 확장에 그친 수치다.
우크라이나군도 영토 수복 성과를 내고 있다. AFP통신은 ISW를 인용해 우크라이나군이 지난 11~15일 5일간 자포리자 일대에서 영토 201km²를 탈환했다고 보도했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러시아군의 스타링크 통신망 사용을 차단하면서다.
결국 진지전 성격상 러시아군 진격 속도가 매우 느리다는 점, 미국 지원을 받으며 요새 지대를 지키는 우크라이나군의 전술적 이점 등을 고려하면 전선은 앞으로도 큰 변화 없이 유지될 가능성이 크다.
포린어페어스는 "러시아는 작은 영토를 점령하는 데도 상당한 시간과 막대한 비용을 투입하고 있고, 전장에서 유리한 위치에 있지만 이것이 결정적이지는 않다"며 "시간은 점점 모스크바에 불리하게 작용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러 120만-우크라 60만 사상 추정…징집 갈수록 난항
러시아·우크라이나는 상대국 병력을 100만명 이상 사살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별다른 근거 없는 선전일 가능성이 높아 신뢰할 수 있는 수치는 아니다.
중립 매체 등에 따르면 양국은 최소 수십만명 수준의 전사자를 낸 것으로 추정된다. 부상자를 포함한 사상자는 양국 합쳐 180만명 안팎으로 보인다.
가디언이 지난달 28일 CSIS를 인용한 보도에 따르면, 지난 4년간 러시아군 총 사상자는 약 120만명이며 이 중 사망자는 32만5000명으로 파악된다.
이는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러시아(소련)가 관여한 전쟁에서 발생한 사망자 전체 합산의 5배를 상회하는 수치다. 개별 전쟁과 비교하면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의 17배, 러시아-체첸 1·2차 전쟁 합산의 11배에 해당한다.
BBC는 러시아 매체의 부고 보도 추이를 분석한 결과 지난해 10~11월 일일 평균 322건이 게재돼 전년 동기 대비 2배에 달했다며 영토 협상이 시작된 후 러시아군 전사자가 유의미하게 증가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한편 우크라이나 사상자·실종자는 러시아의 절반 수준인 60만명 안팎으로 파악됐다. CSIS는 우크라이나군 사망자 숫자는 별도로 추계하지 않았으나, 러시아 독립 매체 메디아조나에 따르면 최대 14만명으로 추정된다.
다만 우크라이나 인구(약 4000만명)가 러시아(약 1억4400만명)의 4분의 1 수준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장기적으로는 우크라이나의 타격이 더 크다고 CSIS는 봤다.
양국은 대규모 징집을 통해 손실 병력을 보충하고 있으나 점차 한계에 봉착하고 있다.
러시아 정부는 종래 연 2회 이뤄지던 정례 징집을 연중 실시할 수 있도록 법령을 개정했다. 지난해 봄 16만명, 가을 13만5000명을 징집했으나 전선의 손실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다.
우크라이나 역시 징집 대상을 꾸준히 늘리고 있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입대 유예 대상을 줄여가며 징집 대상 확대를 추진해왔으며, 29세부터 해당되던 징집 대상 연령을 전쟁 발발 이후 25세로 낮춘 데 이어 22~23세로 추가 인하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미하일로 페도로우 국방장관은 지난달 14일 "전선 병력 중 20만명이 탈영에 준하는 근무지 무단 이탈로 행방이 묘연하며, 200만명이 병역기피로 수배 대상"이라고 토로하기도 했다.
◆5년차도 영토 쟁탈전 계속…후방 타격에도 방점
전선에서는 앞으로도 돈바스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소규모 영토 쟁탈전이 반복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전선 전투는 병력 희생이 수반되면서도 성과가 미미해 비효율적인 만큼, 양국은 점차 미사일·드론을 이용한 상대국 후방 타격에 힘을 기울이고 있다.
우크라이나군은 지난해 6월1일 러시아 후방 비행장 4곳을 드론으로 기습해 중폭격기 13~21대를 파괴한 '거미집(Spiderweb)' 작전을 성공시켰다. 러시아 자금줄을 끊기 위해 수출 인프라에도 화력을 집중하고 있다.
러시아도 우크라이나 에너지 시설을 집중 타격해 키이우·하르키우·오데사 등은 영하 20도 혹한에도 난방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키이우 드론 공습은 연중 지속하고 있으며, 러시아 (추정) 드론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 폴란드·독일·덴마크에서까지 포착되는 등 작전 반경도 넓히고 있다.
양국은 전쟁 5년차에도 미국 주도 평화 협상에서 최대한 유리한 조건을 이끌어내기 위해 전선의 영토 쟁탈전과 후방 타격을 병행해나갈 것으로 보인다.
포린어페어스는 "전쟁은 의지와 인내의 경쟁이다. 워싱턴은 조기 종전을 원하지만 인위적 일정은 강요될 수 없다"며 "협상은 전황에 따라 좌우될 것이며, 러시아 공세와 우크라이나 방어 중 어느 쪽이 더 지속 가능한가가 핵심일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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